교직의 전문성은 가르치는 기술에 있다
교직의 전문성은 가르치는 기술에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03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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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김상만 교육감을 만나서 이런저런 교육이야기를 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일선 학교에서 시행하는데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학습지도안 결재에 관한 것이었다. 옛날 군대식 말(?)로는 교안 작성을 해야 하느냐, 하지 않아도 되느냐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해야 하는 것이다. 형식에 매이지 않고 하는 것이다.

외국에서 영어만 쓰며 오래 살고 왔다고 해서 영어 선생님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인성교육(人性敎育)은 빼놓고라도 교직이 ‘전문직이다’는 것을 학부모에 인식시키기 위해서 ‘가르치는 기술’ 만큼은 선생님의 영역임을 학습지도안 작성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지금부터 45년 전, 필자가 초등학교 교사로 공립학교에 근무할 때 있었던, 웃지 못 할 이야기가 나왔다. 아침마다 교감 선생님 책상 위에는 ‘교안(학습지도안)’이라는 수업계획안이 교사 숫자만큼 쌓인다. 한 권의 두께는 대략 대학 노트 두 권쯤 된다. 하루에 한 페이지씩 시간표대로 과목 이름을 비롯한 가르쳐야 할 내용들을 간단한 메모형식으로 기록하게 되어 있다. 거의 전국이 비슷한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맨 위에는 교감의 결재란이 있어서 도장을 찍도록 되어있다. 같은 학년에 좀 똑똑하지만 ‘뺀질이’ 교사가 있었다. 그가 어느 날 교안을 제출하고 교감의 결재를 받고서 소리 안 나게 나에게 손짓하며 웃었다. 입이 두 주먹만큼 벌어지며 웃었다. 그리고 결재 받은 페이지를 보여주며 수업내용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가 애국가와 함께 적혀 있었다. 수업내용 쓰기가 귀찮아 거의 낙서하다시피 적어 놓은 것이었다. 이것을 교감이 보지도 않고 결재를 한 것이다.

교안, 지금의 학습지도안은 교육공학(敎育工學)의 원칙에 비추어보면 교사로서 가장 전문성을 발휘해야 할 부분이다. 어설픈 교사가 작년에 가르친 것을 금년에도 똑같이 가르쳐야 하는데 교안을 써야 하느냐고 불평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수업준비란 한 시간 학습활동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시킬 것인가 설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학교마다 다를 수 있고, 해마다 다를 수 있다. 그래서 매년 새롭게 작성하는 것이다. 무식한 공과계열의 교수가 자기들만 공학이 있지 교육에도 무슨 공학이 있느냐고 비웃지만 다리를 놓는 토목, 건축공학처럼 30~40명의 학생들에게 학습활동을 시키려고 할 때도 공학적 시스템접근법을 활용한다. 일컬어 수업설계를 하는 것이다. 수업설계 과정에 교사는 자기 교과연구를 통해 교육내용을 선정하고 재조직하는 것이다. 이것을 기록하여 연구하고 있음을 상사로부터 확인 받는 것이다. 수업에 들어가며 아무 것도 생각해보지도 않고 출석부만 갖고 들어가는 단순노동만도 못한 일을 하겠다는 교사의 나태함을 예방하는 것이 학습지도안의 결재이다. 획일적 형식에 맞추기 위한 획일적 결재는 당연히 개선되어야 하지만, 교직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고유한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학의 교육학 계열의 교수가 교육공학을 어떤 집단에 가르치며, 4~5명으로 조(組)를 짜고, 매주 1개조씩 배당된 장(章)을 발표하게 하고 서로 질문하고 서로 토론하게 한다. 교수이니까 목소리 높여 강의하지 않고 학습지도안이 없어도 되는가? 아니다. 16주를 이렇게 보낸다면 그는 직무유기, 직무태만을 한 것이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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