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 그 마지막 날
시월, 그 마지막 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01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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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에게 길일(吉日)이었다. 택일(擇日) 전문가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하늘은 끝을 모르는 듯했고 햇볕은 기분 좋게 따사로웠다. 애써 의미를 찾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시월의 마지막 날’에 대한 의미를….

울산종합운동장 보조경기장의 열기는 ‘제13회 종갓집 체육대회’로 수은주의 정점에 닿아 있었다. 중구 13개 동 주민들은 마을 경기가 펼쳐질 때마다 자존심을 걸고 목청을 아끼지 않았다. ‘화합과 소통’은 박성민 청장의 당부가 없어도 절로 이뤄지는 듯했다.

지난달 28일 끝난 병영 재선거 이야기도 간간이 섞여 나왔다. 여당소속 다선의 중진 A시의원이 물음에 답한다.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였습니다.” 무소속 B구의원과 보조경기장에서 마주친 여당소속 C시의원이 B구의원에게 가시 돋친 한 마디를 건넨다. “자네, 앞으로 밤길 조심해!” B구의원이 농담으로 받아넘기며 말을 받는다. “아이고 형님, 와 이러십니까?” 악의는 없다 해도 앙금은 가시지 않은 것 같았다. 선거 다음날 당선인 쪽 기자회견 때 전해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102대 8의 가당찮은 싸움이었지요. 그래도 우리가 이겼지 뭡니까.” 양 진영 선거운동원의 숫자를 비교한 말이었고, ‘힘든 싸움’을 강조한 언급이었다.

이번에는 울산대-울산과학대 이사장배 축구대회가 열리고 있던 울산과학대 동부캠퍼스로 발길을 옮겼다. 건족(健足)의 축구동호인들은 하나같이 밝은 표정들이었고 꼬마가족의 응원 소리에는 애교가 넘쳐나고 있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기 마련인가. 그늘 짙고 바람 세찬 교정은 양지바른 운동장과는 달리 냉기가 감돌고 있었다. 청소근로자 21명에 대한 법원의 ‘출입금지’ 공고가 더욱 그런 분위기를 자아냈던 것일까?

마지막 행선지는 동구 슬도와 성끝마을을 거쳐 그 동쪽으로 이어진 대왕암공원이었다. 지난달 시작된 대왕암다리 교체 공사가 어디까지 와 있는지 눈여겨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더 이상의 출입은 금지되고 있었다. 나무(木材)로 만들 것인지, 출렁다리 모양새로 할 것인지, 쇠붙이(剛材)로 만들 것인지를 두고 여러 차례 논의 끝에 내린 ‘최적의 대안’이 ‘쇠붙이다리’라니 할 말은 많아도 그저 따를 수밖에….

이날 해질 무렵 뜻밖에도 낚은 대어는 2012년에 첫선을 보인 이후 이번 가을로 여덟 번째 맞이한다는 ‘대왕암 달빛문화제’ 관람이었다. 이 지역 정치어른 안효대 국회의원과 권명호-이선자 동구청장 내외, 동구 출신 시의원·구의원도 자리를 같이한 가운데 열린 이날 달빛 문화제의 압권은, 순전히 개인적 생각이지만, ‘음유시인(吟遊詩人)’ 분위기의 여가수 박경하의 시노래.

그녀는 구광렬(울산대 교수)의 시에 박우진이 곡을 붙인 ‘들꽃’을 서정성 넘치는 표정과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읊조렸다. “주인 없어서 좋아라/ 바람을 만나면 바람의 꽃이 되고/ 비를 만나면 비의 꽃이 되어라/…(중략)…/ 들이 좋아 들에서 사노니/ 내버려 두어라/ 꽃이라 아니 불린들 어쩌랴/ 주인 없어 좋아라/ 이름 없어 좋아라” 박경하는 최양숙의 ‘가을 편지’(고은 작시, 김민기 작곡)도 노래했다. 그리고 또 한 곡을 더 소화해 냈다. 관람객 누군가가 느낌을 말했다. “대왕암 달빛 문화제의 품격, 저분이 더 높여주는 것 같네요.”

밤늦은 시각, 안방에서 채널을 돌렸다. 즐겨 보는 ‘콘서트 7080’에는 어김없이 ‘시월의 마지막 밤’의 가수 이 용이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억지 창법’이 문제를 만들었을까. 분위기는 대왕암 달빛문화제를 결코 뛰어넘지 못했다. 시월의 마지막 날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고 있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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