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쟁이 아줌마
욕쟁이 아줌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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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다. 어느 시골에 할아버지가 살았다.

할아버지가 하는 일은 늘상 아침 일찍 일어나 논밭에 나가는 일이다. 논의 물꼬가 터졌는지 혹시 산에서 멧돼지가 내려와 밭을 갈아엎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점검하는 일이다.

오늘도 들로 가는 길에 어느 오두막집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욕쟁이 아줌마가 사투리로 아들에게 외친다. “고마 디비 자라. 일마! 날 샜다. 인자 깨라!”라고. 그 말은 다시 말하면 “그만 누워 자라. 이놈아! 해가 떴다. 이제 잠에서 깨어날 시간이다!”라는 뜻이다.

할아버지는 그 욕쟁이 아줌마가 외치는 인자 깨라! 라는 말에 순간, 마음의 동요를 크게 느낀 것이다. 그 길로 할아버지는 뒷산으로 올라가 버렸다. 한편 집에서 기다리고 있던 가족들은 할아버지가 오지 않자 백방으로 찾아 나선다. 마침 어느 삿갓 쓴 도인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저기요. 혹시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를 보시질 않았나요?” 그러자 조금 전 산중턱으로 올라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한다.

가족들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산으로 올라가 할아버지를 찾았다. 절간 법당에서 가부좌를 하고 있던 할아버지는 작심을 하고 말한다. “이제부터 너희들은 나를 찾지도 말고 기다리지도 말라!”고. 훗날 할아버지는 득도(得道)했다고 한다. 그 후 오두막을 지날 때마다 합장을 하면서 그 욕쟁이 아줌마에게 늘 고맙게 생각했다.

붓다가 25년 동안 인도 쉬라바스티의 기원정사에 있을 때의 일이다. 입적한 후 제자들끼리 큰 모임이 있었다. 40여 년간 바로 곁에서 스승님을 모시고 있던 수제자 아난다(阿難陀)는 졸지에 그 모임에서 배제되었다. 화가 나고 속이 상한 그는 밤새도록 깊은 고민에 빠졌다. 왜 내가 배제되었을까? 다음날 아침 그 이유를 순간 깨닫게 되는데 다름 아닌 자신의 에고 때문이라는 사실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아(自我)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그래도 오랫동안 곁에서 모신 수제자인데 누가 감히 나를 배제해?’ 라는 의미다.

세상은 에고이즘으로 꽉 찬 사람이 너무나 많다. 쉽게 비유하면 “나는 사장인데, 나는 국회의원인데, 나는 하버드 박사인데…”와 같이 “나는 무슨 장인데” “나는 이런 사람인데”라고 하는 ‘깨어있지 않은’ 자세다.

올해 필자가 모친상을 당한지 벌써 반년이 지났다. 그 당시 여러 사람으로부터 문상을 받고 우리 5형제는 보은의 마음으로 우선 전화를 드린 적이 있다. 덕담으로 하신 그분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자네들 5형제가 잘못했네! 4살만 채워 드렸으면 100수 하셨을 텐데.”라는 말…. 진짜 세상을 살아가는데 뭔가 깨어있는 분이고 사려 깊은 말씀이어서 존경심이 발로된다.

첨언하자. 걷기를 좋아하는 필자는 어제 집을 출발하여 태화강변을 따라 2시간여 걸었다. 자주 하는 나의 건강법이다. 도착지는 시내 중심가의 한 낙지집. 값싸고 에너지 충만용으로 제격이어서 점심으로 자주 하는 메뉴이기도 하다. 대학생 같은 종업원이 식사주문을 공손히 받는다.

그의 친절한 서비스가 유난히 눈에 띄어 나도 모르게 감동한다. 반찬이 떨어지기 무섭게 와서 추가로 보태주려고 하고 손님이 부르면 즉각 응대한다. 그것뿐인가 식사 후 자리를 떠나면서도 “맛있게 드셨는지요?”라고 밝게 인사하는 모습은 우리를 더욱 살맛나게 한다. 말 한마디에 천냥 빚도 갚는다는 말도 있듯이 정말 깨어 있는 젊은이가 아닌가?

인간의 두 가지 삶의 자세는 바로 깨어있는 것과 깨어있지 않은 것이다. 우리 인간이 지니고 있는 선한 삶의 자세는 고명 박식한 ‘지식’과 빛나는 ‘지위’와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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