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를 위한 교과서문제의 핵심 이해(2)
학부모를 위한 교과서문제의 핵심 이해(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28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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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렇게 엄청나게 복잡하게 되는 철학적 근거를 버트란트 러셀(1872∼1970)의 유명한 말에서 찾는다.

‘교육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해 무엇을 가르쳐야할지의 질문으로 끝난다’에서처럼 인간은 당연히 교육을 해야 하는데, 무엇부터 어떻게 가르쳐야 할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아 망설이게 된다는 뜻이다. 익혀야 할 다른 것도 많은데 왜 그것부터, 왜 그렇게 가르쳐야 하는지 물어보면 대답하기가 어렵다는 말이다. 이때 쉬운 대답이 옛날부터 그것을 그렇게 가르쳐 왔으니까로 얼버무려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닌 점이 교육의 태생적 보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꼼수 부리는 것을 초등학교 1학년부터 가르칠 것인가? 가르쳐야 한다는 입장이 되면, 착한 학생이 사회에 나가면 꼼수, 특히 정치판의 꼼수에 넘어가 손해를 보니까 예방차원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항변할 수 있다.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는 1학년 수준에 맞는 고누두기에서 시작하고 학년이 올라가면서 장기로, 바둑으로 계열(系列, sequence)을 잡을 수 있다. 이와는 대비되게 꼼수보다는 정도(正道)를 지키는 태도를 가르쳐야 한다. 당연히 교내에서 우측통행, 등굣길에 자모회의 교통안내를 받아가며, 고학년이 되면 아우들 보살피기 봉사활동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참고로 영국의 저학년(?) 교과서에는 공원의 잔디밭에 공이 들어간 것을 중절모를 쓴 신사어른이 지팡이 손잡이로 꺼내주는 삽화가 나온다. 여기서 중점은 어린이도 어른도 잔디를 보호하기 위해 잔디밭에 들어가지 않고 지팡이로 공을 꺼내고 있는 점에 주목해 지도하도록 되어 있다. 이 내용이 수 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가르쳐지고 있다는 데에 교육의 보수성을 엿볼 수 있다. 가르치는 내용과 더불어 가르치는 방법의 보수성이 더 오래된 예는 교과서와 칠판에서 볼 수 있다. 사자소학(四字小學)은 수 백 년을 가르쳐왔으며, 서당에서 무릎을 꿇고 배웠다. 이것이 교실과 칠판으로 바뀐 지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서 교육의 본질을 엿볼 수 있다. 학습자 입장에서 교육은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가르치는 사람입장에서는 학습자가 하기 싫어해도 시켜야 하는 것이 교육이라는 보수성이다. 사실 어른을 공경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도 어려서부터 연습해야 하는 보수성이 잘 말해주고 있다. 태도는 연습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대략 70여 년 전부터 미국에서 시작된 아동 흥미위주의 학습지도 방식이 그럴듯하다고 여겨져 지나치게 확장, 일반화 시킨 것이 초기에 ‘청소년들의 일탈행동’을 조장한 것이 되었다. 자연계열 학습에서조차 무조건적 반대, 비판하는 행동이 창의성을 기르는 첩경이고 진화이고 진보라는 오해에서 비롯되어 지금의 역사인식까지 전염시켜버렸다. 가까운 예로 중국의 홍위병(紅衛兵)은 공자사상(孔子思想) 까지 폐기시키려고 하였다가 다시 정신 차리고 지금은 연구를 계속한다. 록 뮤직의 비틀즈는 적어도 1만 시간을 독일 함부르크에서 배고픔을 견디며 연주연습만 하였다(아웃라이어. 2009). 이들은 스스로에게 흥미위주, 반대를 위한 반대의 연습은 하지 않았다.

‘교육은 당연히 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하여, 무엇을 가르쳐야할지의 질문으로 끝난다’가 오늘 우리나라 국사교육, 그 중에서도 근현대사교육에 적용될 말이다. 이 논의에는 교육과정의 내용선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관한 여러 접근 방법이 검토되어야 한다. 첫째가 국사를 담을 그릇의 크기(교과서의 페이지)를 결정하고 안배하는 문제이다.

찬란한 우리 문화사에 관한 고려가 거의 안 되어있어서 하는 말이다. 막연한 시대구분으로 짜여서는 안 된다. 여기에 생략되어서는 안 될 분야가 언론기관, 특히 신문에서 연구하는 ‘내용분석 방법’이 동원되어 원고분량부터 사진자료까지 객관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더구나 이들 자료는 1차사료(史料)를 중심으로 검증받아야 함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

<박해룡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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