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모를 위한 교과서문제의 핵심 이해(1)
학부모를 위한 교과서문제의 핵심 이해(1)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27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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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이십 여 일 동안 여러 언론 매체들이 교과서를 놓고 한마디씩 했다. 이제 필자가 총정리를 해야 할 차례가 됐다. 전공분야가 크게는 교육학, 세분하면 교육심리학이어서 세워주지도 않는 조그만 권위(?)를 갖고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의견을 밝힌다.

국정교과서가 그렇게 심각한 문제인가? 우선 교과서 자체가 무엇인가? 아니 더 근본적으로 교육이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해야 교과서문제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된다.

논의를 시작하기 위해, 교육은 ‘인간의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작용하는 여러 가지 일(정범모. ‘교육과 교육학’ 1965)’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행동’은 팔다리를 움직이는 근육운동은 물론 우리들이 생각하는 모든 지적인 활동과 정의적 영역의 가치관 수립, 준법정신, 효도하는 태도 기르기 등을 포함한다. 그 다음 인간의 어떤 행동을 ‘계획적’으로 변화시킨다는 것은, 행동의 선택에서부터 변화시키려는 작용까지 이성적으로, 즉 과학적으로 결정하고, 선택된 행동으로 변화하도록 교육자, 주로 일선 교사가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달리 표현하면 가장 높은 국가적 수준의 교육이념부터 가장 구체적인 한 시간의 학습활동 목표까지 즉흥적 기분과 권력쟁취의 탐욕으로 결정하거나, 주먹구구로 작용(교사의 말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작용, 일에는 당연히 전문가적 수준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나 문재인 대표에게 잘 짜여진 교안(敎案)이 주어져도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사회과수업 어느 수준에서도 교실에 들어가, 한 시간의 수업을 그 사람들은 할 수 없다. 따라서 보이지 않는 어떤 사상주체가 투명인간이 돼 교육이념부터 한 시간의 수업목표까지를 왜곡하여 작용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여기서 작용은 가르치는 사람의 전문가 수준의 지식과 지혜는 물론 억양부터 화를 내는 표정과 인격까지를 구성요소로 한다. 즉 전문가로서의 ‘교사는 모름지기 예술가와 같은 꿈을 그리며, 종교가적인 심정을 가지고, 과학자와 같은 방법론에 익숙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는 교사를 존경하고, 학생은 씩씩하고, 올바르게 자랄 것이다(김종서. ‘현장연구의 방법’. 1965).

학교에서 한 시간의 수업목표는, 최고 수준, 국가수준의 교육과정이 개발되고, 이를 하위개념으로 세분하여 ‘이 시간 수업을 마치면 학습자들이 이런 이런 변화를 가져올 수 있게 될 것이다.’의 위계적 관계(hieratical relationship) 속에서 설정된다. 다만 문제되는 것은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자연과학 계열은 어느 것을 먼저 학습해야 하는지의 위계관계가 조금은 분명한데, 국어(문학), 역사, 정치, 경제, 도덕, 철학 등의 인문, 사회 분야는 그렇지 못하다.

부연하면 일위수(一位數)의 덧셈을 끝내고 이위수(二位數)의 덧셈을 학습하는 위계관계는,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을 자아실현보다 어느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지 논리적으로 분석하기가 수월하다. 충성과 효도의 두 덕목은 어느 것을 먼저 가르쳐야 하는지 위계적으로 분석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니체의 ‘신은 죽었다’는 명제를 놓고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의 교수들에게까지 해석에서 어려운 문제가 되곤 한다. 이래서 ‘역사는 죽었다(이훈범의 생각지도 칼럼)’는 말까지 나온다. 이렇게 어려워도 교육은 당대에서 최대한 과학적인 절차를 따라 결정은 해야 한다고 필자는 주장한다. 이 시간에도 지구는 계속 돌고 있으니까 그렇다. 과학적이어야 한다는 말은 우선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여 논리적, 합리적 사고과정(思考過程)을 거쳐야 한다는 말로 쓴다. 그러나 이 과정이 엄청나게 복잡하고, 더구나 어떤 절차는 전공자에게 갑질하는 관료들이 묵살해버리고, 넘어가기 일 수이어서 지금 이 자리에서도 손댈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당연히 학부모들은 그 절차의 대부분을 알 수도 없게 되어서 더 큰 문제가 된다.

<박해룡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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