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예감
겨울 예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20 2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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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는 다르게 일찍 주막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낡은 평상 위의 누런 호박 한 덩이와 애호박 몇 개, 고춧잎이며 고구마를 담은 봉지가 눈에 들어온다. 누군가 갖다놓고 간 모양이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시골인 고향에 들어와 조그만 주막을 운영하면서 겪는 일이다. 철마다 파, 부추, 마늘, 오이, 가지, 고추 등 주막에서 흔히 쓰는 푸성귀가 대부분이지만 어떤 때는 감자, 고구마와 묵은 김치에다 쌀까지도 갖다놓는다. 모두 이웃 어른들이나 손님들이 애써 가꾼 농작물이다. 누가 갖다놓은 건지도 알 수 없다. 때로는 양이 너무 많아 손님들에게 도로 나누어 줄 때도 있다.

수년 간 주막을 운영했지만 한 번도 한 달 매출이 얼마인지, 또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해본 적이 없다. 이튿날 장 볼 돈만 있으면 만족이라는 게 나와 아내의 주막철학(?)이다. 처음부터 외상 장부도 만들었다. 안주도 만원 이내로 맞추었다. 누구든지 편하게 들르고 부담 없는 일종의 사랑방처럼 여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욕심 부릴 일도 아니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으며, 혹여 고향 인심에 누가 되지 않을까 조바심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새 단골손님이 늘어났고, 이젠 가족처럼 편하다. 때문에 개인의 가정사를 비롯한 사소한 이야기들을 주고받을 때가 많다.

어쨌거나 주막을 운영하면서 얻는 게 너무 많다. 배운 게 너무 많다. 모두 도회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하지 못한 것들이다. 무엇보다 큰 자산이고 소중한 공부다. 이것이 이런저런 사회와 제도권의 유혹과 제의에도 응하지 않고 떠나지 못하는 이유다.

수확을 향해 숨 가쁘게 내달리던 이곳의 가을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하다. 지난여름의 불볕더위가 뿌리와 잎을 가진 모든 것들을 벌겋게 태워버릴 것 같았던 우려는 기우였다. 잘 버텨냈고 대견스럽다. 알곡과 과일이며 열매, 채소 모두 대만족이다. 누렇게 익은 들을 바라보는 촌로의 이마에 여유가 있어 보인다. 밤이며 도토리를 한 짐 가득 지고 마을을 빠져 나가는 나그네의 발걸음도 가벼워 보인다.

주막은 마을의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부재중이거나 외따로 멀리 떨어진 집의 우편물은 모두 주막에 맡겨놓는다. 택배물도 마찬가지다. 집을 찾거나 길을 묻는 일도 거의 주막을 찾는다.

마을은 지금 추수에 눈코 뜰 새 없다. 벼 베기를 선두로 깨와 콩을 터느라 허리가 꾸부정한 촌로들까지 하루해가 짧기만 하다. 주말이면 도회지에 나가 사는 자식들까지 돌아와 일손을 거들어야 하는 탓에 마을은 꽉 찬다. 년 중 마을이 가장 깨어있을 때다. 더도 덜도 말고 늘 이랬으면 좋겠다.

그러나 추수가 끝남과 동시에 논밭이 텅 비고, 나무들마저 옷을 벗기 시작하면 마을은 다시 외로움과 쓸쓸함의 긴 터널을 지나야 한다. 그래서 겨울이 싫다.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던 굴뚝연기와 쇠죽 쑤고 군불 넣던 아궁이와 아랫목의 따뜻함에 대한 추억은 기억 저 편으로 밀려난 지 오래다. 마을 어귀부터 모퉁이마다 가로등이 환하게 불을 밝히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드물다. 하며 이 가을을 붙들고 싶지만 재간이 없다. 곧 추수가 끝나고 겨울이 다가오면 마을회관은 다시 노인들로 붐빌 테지만, 무겁게 흐르는 쓸쓸함을 해소시킬 방도가 선뜻 생각나지 않는다.

귀향 후 처음 맞은 늦가을에 쓴 졸시 ‘겨울 예감’을 꺼내며, 올 겨울은 지금처럼 시끌벅적하고 좀 더 풍요롭고 따뜻하길 기원해 본다.

‘풀벌레 떠나버린 고향의 겨울 초입 / 막차는 늘 그랬듯 텅 빈 채로 돌아가고 / 간간이 개 짖는 소리, 노인들 기침소리 // 비운다는 건 다른 무엇을 채우는 준비라지만 / 주저리 홍시감이 언 채로 겨울을 난다면 / 그것은 그리움 뒤에 숨은 두려움의 엄습이다 // 길들이 지워진 건 억새풀 탓이 아니다 / 바람도 자꾸 헷갈려 뒷걸음치는 요즘 / 길 잃은 귀뚜리 한 마리 벽 안에서 목이 쉰다.’

< 김종렬 시인 / ‘물시불 주막’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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