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에 대한 근거 없는 속설
까마귀에 대한 근거 없는 속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19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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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도 칠월칠석은 안 잊어버린다’는 속담은 까마귀는 기억력이 좋다는 말이다. ‘까마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와 같은 긍정적 인식의 표현이 있는가 하면,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 ‘까마귀 하루에 열두 마디를 울어도 송장 먹는 소리’ 등 생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부정적인 인문학적 표현이 사용되기도 한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있고 밤에 까마귀가 울면 대변(大變)이 있다’는 표현은 낮에 우는 까치의 울음과 밤에 우는 까마귀의 울음을 대비시켜 부정을 강조한 표현이다. 까치와 까마귀는 낮에 활동하는 주행성 새이므로 밤에는 울지 않는다. 운다면 놀랐거나 포식자의 공격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인문학적으로 검은 색은 북쪽을 상징한다. 죽음도 북쪽이다. 임종 직후 머리를 북쪽으로 돌리는 이유이다. 이들을 이해하려면 생물학자이자 인문학자라는 조건을 동시에 모두 지녀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이들은 잘못 알려지고 또한 잘 알려져 있지도 않다.

까마귀는 고대부터 잘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다. 까마귀를 통칭하는 ‘레이븐(raven)’이란 영어 단어에는 ‘까맣고 지혜로운 새’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까마귀는 반쯤 찬 병 속의 물을 돌을 넣어 수위가 올라오게 하여 먹는 지혜가 있는 새이다. 오해로 잘못 인식된 흉조(凶鳥)의 관념을 빨리 지워버려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까마귀는 ‘반포지효(反哺之孝)’와 같은 긍정적 길조와 오합지졸(烏合之卒)과 같은 부정적 흉조 등 두 가지 표현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다.

먼저 긍정적 길조의 사례이다. 까마귀는 보은(報恩)의 동물로서 사람과 친숙하다. 양산 ‘오의정(烏義亭)’이란 이름의 정자 설화에 까마귀 새끼를 살려준 밀양부사의 이야기가 전한다. 단서를 잡지 못해 자칫 미궁에 빠질 뻔했던 밀양성 살인사건의 단서를 부사가 살려준 두 마리 까마귀의 안내로 풀었다는 내용이다. 부사는 까마귀의 은혜에 보답하는 마음에서 한낱 이름 없는 정자의 이름을 ‘오의정’으로 부르게 했다.

<삼국유사> 사금갑 조에는 까마귀가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주는 역할자로 등장한다. 정월 대보름에 까마귀를 위해 찰밥을 지어 담벼락에 놓는 민속 ‘오기지일(烏忌之日)’이 생긴 것이다.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사람 혹은 출향인의 넋두리 중에 ‘까마귀도 고향 까마귀는 반갑다’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까마귀는 반가움의 대상이다.

“사십 일이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지은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창세기 8:6∼7)라는 구절에서 보듯 구약성서에서는 까마귀가 귀소성이 강한 조류로 나타난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삼국유사 射琴匣 條), “까마귀가 와서 울면서〔智通에게〕말하기를, 영축산에 가서 낭지(朗智)의 제자가 되라고 하였다”(삼국유사 朗智乘雲 普賢樹 條)라는 대목에서는 까마귀가 길을 안내하는 인도(引導)형 조류로 표현된다.

‘해변 까마귀 골수박 파듯’ 하는 속담은 지속성을 강조한 말이다. 입시공부 하는 수험생의 책상머리에 걸어두면 어떨까?

다음은 부정적 흉조의 사례이다. ‘초상이 나려면 까마귀가 깍깍 짖는다’라는 속담은 이미 까마귀를 흉조로 인식하는 선입견에서 생긴 것이다. 만약 까마귀가 울 때마다 초상이 난다고 가정하면 세상에 살아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까마귀는 동료를 부를 때, 먹이가 있을 때 등 언제든지 우는 새이다. 생물학은 과학이다. ‘양가문(兩家門) 집에는 까마귀도 앉지 말랬다’는 속담은 두 집 살림을 하는 어려움을 일러주는 말이다. ‘자주 꼴뚜기를 진장 발라 구은 듯하다’, ‘오동(烏銅) 숟가락에 가물치 국을 먹었나’와 같은 속담의 공통점은 ‘검은 것’을 말하고자 함에 있다. 건망증이 있어 잘 잊어버리는 사람을 놀리거나 혹은 기억력이 좋지 않을 때 흔히 사용하는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혹은 ‘까마귀 고기를 삶아먹었나’ 하는 속담은 아마도 까마귀에서 ‘까맣게 잊었다’는 표현을 연상시켰을 것이다. 이러한 연상은 참새에서도 나타난다. ‘참새를 볶아 먹었나, 재잘거리기도 잘 한다’라는 말에서 참새와 재잘거림을 연결시킨 것이다

그 외에도 검은 것은 다양하다. 강릉의 오죽헌은 검은 색의 대나무 ‘오죽(烏竹)’으로 유명하고, 지리산 ‘오시’는 검은 먹감으로 이름이 났다. 검은 상복, 가톨릭 신부의 수단, 악마의 옷, 검은 스타킹 등에서 알 수 있듯이 검정색은 비애, 슬픔, 후퇴, 침묵, 겸손, 엄숙 등을 상징하는 색이다. 검은색은 엄숙한 색상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것은 동·서양이 유사하다.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젊은 여인의 검은 드레스와 검은 숄 차림에서 죽음을 느낄 수 있다. 63년 넘게 영국 여왕으로 군림한 빅토리아는 남편 앨버트가 죽자 40여년이나 검은 드레스를 입었다고 한다.

까마귀는 다른 새와 마찬가지로 조류이다. 검은 깃과 ‘까악, 까악’ 하는 울음소리 그리고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는 이유에서 흉조로 인식되는 것은 무지의 소치이다. 민속학에서 젊음은 동쪽, 늙음은 서쪽에 비유한다. 동쪽의 젊은 처녀를 서쪽의 할머니와 대비한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이다. 아침 까치, 저녁 까마귀 역시 대비법이다. 죽은 망자는 남쪽 문을 통해 북쪽 문으로 가서 좌정한다. 무덤의 좌방향이 대개 남쪽인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모두가 사람들이 만든 관념의 소산이다. 까치와 까마귀를 대하는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까마귀에 대한 근거 없는 속설, 이제부터 떨쳐 없애버리자.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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