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저런 이야기 셋
그런저런 이야기 셋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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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하나, 산막리(山幕里)

양산시의 지명 중 ‘산막리(山幕里)’는 신라 원효스님과 요석공주의 인연으로 생긴 지명이다. 원효스님은 요석공주와의 사이에 설총을 얻었으면서도 도무지 가정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요석공주는 기다리기를 멈추고 소성거사를 찾아 나선다. 막상 찾고 보니 수행 중인지라 요석공주는 방해가 될까봐 수행처인 천성산 자락에 막을 치고 기다리게 된다. 요석공주가 산에 막을 치고 설총을 키우면서 소성거사를 기다린 곳이 ‘산막리’란 지명의 유래다.

일연은 <삼국유사> 원효불패 조에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성사(聖師)는 어느 날 상례에서 벗어나 거리에서 노래했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빌려주려나. 하늘을 떠받칠 기둥을 박으리.” 사람들은 아무도 그 노래의 뜻을 알지 못했지만 태종(무열왕)만이 이 노래의 의미를 알고 말했다. “아마도 이 스님은 귀부인을 얻어 훌륭한 아들을 낳고자 하는구나. 나라에 큰 현인이 있으면 그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당시 요석궁에는 과부 공주가 있었다. 왕은 궁리(宮吏)를 시켜 원효를 찾아 요석궁으로 맞아들이게 했다. 궁리가 명을 받아 찾고 있을 때 원효가 남산에서 내려와 문천교를 지나다가 만나게 되었다. 원효는 일부러 물에 빠져 옷을 적셨고, 궁리가 원효를 요석궁으로 데려가 옷을 말리게 하니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공주는 과연 아이를 배더니 설총(薛聰)을 낳았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의상대사와 선묘낭자, 사명대사와 현옥낭자…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큰일을 한 수행자란 점이다. 수행자에게 있어 여성은 최대의 강적(强敵)이자 최대의 은인일 수 있다. 수행자 중에는 간혹 좋은 인연을 맺어 새로운 삶을 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이야기 둘, 호안석(虎按石)

양산 통도사(通度寺)는 만법에 통하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통만법(通萬法)’ ‘도중생(度衆生)’의 머리글자를 따서 지은 이름이다. 통도사 응진전 옆에는 큰 돌덩이가 하나 놓여 있다. 주위를 아무리 살펴봐도 이유는 없어 보이는데 그 자리에 있는 것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큰 돌덩어리의 이름은 호랑이를 누르는 돌이라는 의미의 호안석(虎按石)이다.

통도사 불교전통강원 시절에 들은 이야기의 내용을 요약하면, 통도사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은 인물이 좋고 초성도 좋아 염불 소리가 듣기에 좋았다고 한다. 낭랑한 독경 소리에 영축산 호랑이가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영취산 호랑이 부부에게 과년한 딸이 있었다. 어느 날 딸은 밤늦도록 독경하는 스님의 초성에 반해 도량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감로당의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같은 또래의 스님이 초성도 좋지만 인물이 너무 좋아 보였다. 호랑이 아가씨는 그날로 상사병이 생겼다. 날로 여위어 가던 딸은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마침내 어미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딸자식 이기는 부모가 있던가. 엄마 호랑이는 딸을 위해 스님을 납치했다. 촛불을 켜고 혼자 독경하던 스님은 한자락 광풍과 함께 사라졌다. 다음날 대중은 반나절이나 걸려 영취산 ‘체이 등(일명 ‘키 등’)’에서 스님을 찾았다. 얼굴에 홍조를 띤 채 자는 듯 누워 있어 흔들어 깨웠으나 스님은 이미 숨져 있었다. 이리저리 옷을 풀어헤쳐 보니 아뿔싸! 아랫도리에 있어야 할 것이 고스란히 없어졌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통도사 도량에는 호환을 예방하기 위한 비법으로 큰 바위를 옮겨 놓았다고 한다. 신라 제38대 원성왕 때 창건된 호원사(虎願寺)에도 처녀 호랑이와 총각 김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영취산 수도승은 특별히 처녀 호랑이를 조심해야겠다.

-이야기 셋, ‘감기가 심해도 명태국은 먹지 말라’

양산 통도사 행자 시절 노스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어느 해 산내 암자의 동안거 결제 기간에 일어난 이야기로, 이름이 쟁쟁한 스님들이 함께 정진하고 있었다. 선승 중에는 아주 지혜로우면서도 피부가 백옥 같고 키가 훤칠한 젊은 스님도 섞여 있었다. 그는 스님들 사이에서도 보살들 사이에서도 언제나 화제와 선망의 대상이었다.

선방에서는 수행승의 정진을 돕는 공양주, 채공 등 소임자들의 수행도 함께 있기 마련이다. 공양주의 소임은 보통 나 어린 행자의 몫이지만 반찬 만드는 채공만은 경험 많고 불심 깊은 노(老)보살이 주로 맡는다. 한 채공보살에게 과년한 딸이 하나 있었는데 은근히 인기 있는 스님을 마음속에 점찍어 두었다. 어느 날 그 스님은 심한 감기가 들어 정진을 계속할 수가 없었다. 대중은 간병실보다 속가에서의 치료를 허락했고, 부처님 덕분인지 간호는 채공보살이 자청했다. 스님은 채공보살 속가의 훈훈한 방에서 따뜻한 명태국을 먹으며 며칠을 보냈다. 하루는 과년한 딸에게 대신 공양을 드리게 하고는 바깥에서 문을 걸어 잠가 버렸다. 아들이 태어났고, 그 아들은 훌륭한 사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런 일이 있은 후 함께 수행한 스님들 사이에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도 결코 명태국은 먹지 말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생겨났다. 남의 일에 흥미를 느끼고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가(好事家)들은 통도사의 터가 본래 ‘음터라다고 단정하기를 즐긴다. ‘그런저런 이야기 셋’의 공통점은 모두 양산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이다. 현대인의 힐링 중에 이야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말이 있다. 점차 길어지는 겨울밤에 ‘그런저런 이야기 셋’도 픽션, 논픽션을 떠나 한몫을 했으면 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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