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습(世襲)
세습(世襲)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13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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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비가 하던 일을 자식에게 물려주는 일을 통틀어 가업(家業)의 계승이라고 한다.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지고 했던 일이라도 좀처럼 자식, 아들이 아니고 딸이라도 물려서 하게 하지는 않는다. 과거 가업의 계승은 대게 공장(工匠)신분에서 생겼다. 공장은 조선 팔천(八賤)의 하나로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양반계급에 속해 있었다. 노비, 기생, 광대, 백정, 공장(工匠), 무당, 승려, 상여꾼이 조선시대의 여덟 가지 천한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서 가업으로 계승되는 것은 공장을 포함하여 노비, 광대, 백정, 공장 등이었다. 일제강점기말까지도 상여꾼, 장의사는 인력거꾼처럼 계승되기도 했다. 공장의 상당수는 기술과 도구들을 자식에게 물려주었다. 가업치고는 참으로 억울한 인격모독이 아닐 수 없는 일이다. 누가 노비들의 자식으로 태어나 얼자( 子)가 되고 싶었겠는가? 조선시대까지 숨어 사는 역적이 아닌 바에야 팔천에 속하는 대부분은 모두 세습된 것이었다.

아마 인류 역사상, 약 5천년 전, 아마도 훨씬 그 전에도 때지어 살면서 힘으로만 세워진 서열이 있어서 ‘주먹치기, 발차기, 팔로 목조르기, 머리로 박치기 그리고 입으로 물어뜯기’로 강한 수컷들이 약한 사람들을 부려먹으며, 일 말고도 여러 가지(?)로 못 살게 굴었을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홍길동전에서 홍길동이 태어나게 된 배경에는 부려먹는 일 말고도 양반이 하녀를 못 살게 굴다가 생긴 결과물이 되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이런 일이야 현대, 4·50 년 전에도 돈의 힘으로 축첩하여 홍길녀(?)를 낳기도 하지만, 2년 전에도 특권층에서 잘 놀면서 국민세금으로 호의호식하던 사람이 술집 작부도 아닌 골프장봉사요원에게 성추행을 저지르고 합의(말로만?)한 일이 있다. 이러면서 애비가 하던 짓, 돈 모으기와 특권계급에 들어가기를 자식도 할 수 있게 한 것이, 즉 자식이 애비보다 못 났어도 고도의 전문성 기술로 세습의 형태를 변형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지금도 존재하는 추장(酋長)이 있다. 깡패짓하는 재벌은 바로 현대판 추장이다. 그러니까 추장 아들이 크면 또 추장이 되는 것이다. 아직 30대인 재벌의 아들이 유학 중에 부친이 사망하자 바로 재벌의 총수가 되는 모습이 현대판 추장이다. 하여간 ‘추장만들기’가 수 천 년을 지나면서까지 그대로 내려와 50여 년 전에도, 시골 벽지에 가면 조선시대 관습으로 양반과 상놈이 그대로 있었다. 가난의 세습을 깨고 소위 출세하면 ‘개천에서 용 났다’고 하였으나, 금 숟가락 물고 태어나서 깡패 짓과 마약질을 하여도 호랑이가 고양이를 낳았다고 하지 않는다. 본래 불공평한 세상이라고 체념할 것인가? 아니다!

지금은 고용승계(雇用承繼)라는 새로운 신분제도가 법(法)처럼 되어 가려고 한다. 수년 전에 지방의 어느 초등학교 5학년에서 담임선생님이 반 아이들에게 장래 희망하는 직업을 말하고, 그 희망을 이루기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 그 계획을 말해보라고 하였다. 대부분 어른들이 좋다는 직업을 말하는데 특별한 아이가 하나 있었다. 장차 전태일 같은 열사가 되겠다고 하였다. 분신(焚身)이 떠올라 더 이상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어 적당히 얼버무린 일이 있었다. 그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 단체의 대표자 격이었고, 어머니는 열성 후원자였다. 후일담으로 그 아이의 어머니는 대학에 갈 필요 없고, 애 아빠의 회사에 취직하여 아빠가 하던 일을 이어서 하면, 승계하면 중학교만 나와도 박사 학위를 갖고 있는 직원과 별 차이 없이 월급을 받는다고 하였다. 이건 분명히 ‘추장 만들기’가 아니어도 재수 없이 다른 직업을 가진 아버지 밑에 태어났으면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제도(制度)가 그렇게 되어서 부모 탓만 하면서 살아가게 된다. 이는 전태일도 반대할 것이다. 사회주의, 공산주의에도 없는 또 하나의 울타리치기이다. 원칙적으로 세습은 개인의 인권과 사회구성원의 삶의 평등기회를 박탈하는 ‘나쁜 버릇(惡習)’이다.

<박해룡 /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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