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 지킴이와의 대화
외솔 지킴이와의 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11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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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문화예술제’가 열린 8일∼11일 나흘 내내 그는 잔치마당을 떠나지 않았다. 외솔기념관과 생가, 울산동헌과 중구 젊음의 거리에도 그는 발자취를 남겼다. 울산동중과 약사고, 애니원고에서 잇따라 열린 ‘외솔 최현배 선생 탄생 121돌 기념 학술강연회’에서도 그는 주인의식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 덕분에 10일 오후 갑자기 찾아간 외솔기념관에서는 선약 없이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오랫동안 외솔회 울산회장을 맡아 왔고, 정년퇴임 후로는 ‘경성대 외래교수’ 직함도 갖게 된 이성태 남목초등학교 직전 교장이 바로 그 주인공.

‘외솔 지킴이’ 이 회장은 행사 첫날 울산동중 학술강연회에서 특강을 베푼 최기호 전 외솔회 회장(전 몽골 울란바토르대학교 총장)과 다시 만난 이야기로 말문을 연다. “몽골에서 한글날 행사를 하는데 무려 3천 명이나 다녀갔다고 합디다.” 최기호 선생 이야기를 전하는 말투에서 그가 애써 흥분을 가누려는 낌새가 감지된다.

이성태 회장은 다른 두 곳의 학술강연회장에서 만난 리대로 국어문화운동실천협의회 회장과 김슬옹 워싱턴 글로벌대학교 한국어교육학과 주임교수에 대한 소개도 빠뜨리지 않는다. 아쉬운 느낌이 참 많은 것 같다. “한글학계의 저명한 분들이 멀리서부터 찾아와 주셨는데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 주인의 자세가 이건 아닌데 하는 부끄러운 생각이 여러 번 들었습니다.” 이야기인즉, 울산의 국어교사가 300명은 족히 될 것인데도 강연회 자리를 채운 국어교사는 열 손가락을 겨우 헤아릴 정도라는 것. ‘참석 독려’ 공문을 시교육청이 행사 하루 전에야 보낸 것도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말머리를 ‘순우리말’ 쪽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 분야에서도 그의 지식의 곳간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군대용어만 해도 차렷, 열중 쉬어, 뒤로 갓, 앞으로 갓, 가늠쇠, 노리쇠뭉치… 할 것 없이 외솔 선생이 손수 지은 낱말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이번에는 궁금증 많은 ‘날틀’ 이야기도 먼저 꺼낸다. “외솔 선생께서 비행기를 ‘날틀’이라 부르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외솔 선생을 곱지 않게 보았던 이숭녕, 이희승 같은 분들이 잘못 알고 한 비방이라고 들었습니다. 실은 이극로란 분의 제안이었지요. 당시 중국에서는 비행기를 ‘비기(飛機)’라 했는데 이를 순우리말인 ‘날틀=날+틀’로 바꾸자고 주장한 거지요.” (‘이극로’씨라면 경남 의령 출신으로 1927년 독일 베를린대에서 유학하고 귀국, ‘조선어학회’ 주간을 맡아 ‘조선어사전’을 펴낸 한글학자다. 1948년 북으로 건너갔다가 그대로 주저앉았고, 북한에서 ‘문화어운동’을 이끌었다.) 이성태 회장은 ‘이화여대(梨花女大)’를 ‘배꽃나무·계집아이·배움집’으로 하자는 것도 이극로씨의 제안이라고 귀띔한다.

이야기는 다시 울산의 교량 이름, 행사 이름을 순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운동을 ‘한글도시 울산’에서 먼저 시작해 보자는 쪽으로 가닥을 잡는다. 태화강 길목을 따라 가로놓인 여러 개의 교량 이름 뒤끝의 ‘-橋’를 순우리말 ‘-다리’로 바꾸어 쓰자는 제안이다. 다시 말해 외솔 최현배 선생의 이름을 따서 지은 ‘외솔橋’를 ‘외솔다리’로, ‘태화橋’를 ‘태화다리’로 바꾸면 부드러운 느낌을 주면서 순우리말의 긍지도 느낄 수 있어 일석이조(一石二鳥)가 아니겠느냐는 것. 아울러 일본의 마을제사 ‘마츠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진 ‘際’ 대신 순우리말 ‘잔치’ 또는 ‘큰잔치’로 바꾸어 쓰되 당장 ‘際’가 들어가 있는 ‘한극문화예술제’부터 ‘한글문화큰잔치’로 바꾸어 부른다면 얼마나 좋겠느냐는 것이다. 전국, 나아가 우리 한글에 애정이 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모두 부러워하고 박수 칠 것이기 때문에….

올곧기로 이름난 이성태 회장이 작심한 듯 마무리 말씀을 건넨다. “지금까지 순우리말로 바꾸지 못해 온 것, 학자든 공직자든 권위의식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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