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발이 자유로운 인간
손발이 자유로운 인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0.0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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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도 책을 가장 많이 읽은 사람으로 알려진 일본의 석학 다찌바나 씨는 42세 때 어느 잡지사로부터 의뢰를 받는다. 일주일간 무인도에 가서 체험한 것을 글로 써달라는 부탁이었다. 현대문명은 어떤 중독이라도 하나라도 가지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들게 한다. 알코올 중독, 니코틴 중독, 활자 중독, 일 중독, 정보 중독 등 중독의 복합증상까지 보이는 이 사내를 무인도에 보내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가 잡지사 기획이었다. 그에게 주어지는 것은 캠프용품에 먹을 것과 물뿐이었다.

술과 담배, 시계, 뉴스미디어 일체를 끊고 비상용으로 무전기를 주지만 사회와의 소통을 금지할 것, 노트와 필기구를 주지만 당장 필요한 것만 메모하고 자신의 일인 글 쓰는 일에 열중하지 말 것이라는 것이 잡지사의 주문이었다. 무인도에 가게 된다면 무엇이 가장 즐거운 일이 될까?

아무 할 일이 없어 지루할 것이라는 이야기, 바다 근처에 살아가는 생물들을 그저 관찰하기만 해도 즐거울 것이라는 이야기, 섬을 구석구석 탐험해서 지도를 만들어 보라는 이야기 등등 무인도 들어가는 다찌바나 씨에게 지인들이 다양한 제안을 한다.

그는 낚시로 물고기를 많이 잡아 맛있는 회와 생선구이를 먹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미끼가 없는 상황에서 바닷게 미끼로는 물고기 한 마리 잡는 일이 쉽지 않음을 곧 깨닫게 된다.

청소, 빨래 같은 것은 빠지더라도 전혀 지(知)적이지 않은 먹을거리를 장만하고 먹는 일만으로도 바쁜 생활이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계획하고 준비를 하고 조리를 해서 먹고 나면 정리를 해야 하고 이런 일을 하루 세 번 반복한다. 그것만으로도 하루 5시간 가량, 깨어있는 있는 시간의 1/3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었다. 식재료는 조달되었기에 망정이지 만일 식재료마저 스스로 마련하는 일이었다면 하루 내내 먹는 일에만 매달려야 할 것이었다.

사회에서 먹을 것을 사회시스템의 공동작업으로 마련하고 있기 때문에 그 대단함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 시스템에서 떨어져 나와 한 개인으로 존재하면, 그 힘든 일을 전부 혼자 짊어져야 하므로 그는 오직 먹는 일에만 쫓기는 초라한 존재가 되고 만다.

우리는 너무도 편리한 먹을거리 유통구조를 가지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그 먹는 문제가 해결이 되고 나면 인간에게는 생활개선 욕구가 일어난다고 한다. 식욕과 성욕이 인간이 가진 2대 욕망이지만 생활개선 욕구가 그 다음 가는 본능이라고까지 한다. 앉을자리가 없어 섬 주변에 떠내려 온 전봇대 크기의 나무를 의자로 삼고, 나무 궤짝을 수납장으로 삼아 물품을 정리하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주변의 생활조건을 편리하게 만들려는 인간의 욕구는 점차 커져서 거대한 아파트 군집생활을 이상적인 주거조건으로 여기게 만들었고 그 편리함 대신 여러 문제점도 생기게 되었다. 획일화된 주거공간에서 자라는 아이들로서는 자연과 접촉이 끊어진 공간에서는 창조성이 생기기가 어렵다. 닭장처럼 모여 살기에 개인의 사생활과 개인의 공간을 서로 침해받지 않기 위해 서로는 더욱 이웃과 멀어지고 무관심하려는 분위기로 간다.

아파트는 편의시설 및 공원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금지한다. 열린 공간은 없어지고 안전을 위주로 한 폐쇄적인 공간으로 스스로 옥죄어 간다. 생활이 이뤄지는 삶터는 안정되고 평온한 곳이 아니라 투자를 위한 임시 거처이고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전락하고 만다.

미국역사상 가장 앞서간 여성들은 대부분 정원을 가꾸고 자급자족 생활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이다. 미국인 ‘타샤 투더’가 그 대표적인 여성이다. 30세에 시골생활을 시작하여 90세가 넘도록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30만 평의 정원을 가꾸고 가축을 키우고, 18세기 풍으로 된 옷을 손수 지어 입고 전기가 없는 생활을 한 여인이다. 밤에는 자신의 생활을 그림으로 담아 100여권의 동화책으로 펴내어 ‘위인전’만 읽고 있었던 미국 어린이들에게 실제로 우리 삶도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심어준 여인이다. 직립보행으로 손이 자유롭게 된 인간이 누릴 행복은 바로 그 손끝에 달려있다는 것을 ‘타샤 투더’는 알았던 것이다.

신령스러워서 신불산이라 불린 산. 이제 산도 제 발로 걸어서 올라가지 않고 쇠말뚝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려는, 자꾸만 좀비처럼 되어가는 인간들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영역이다. 환경영향성평가, 경제성 논란을 떠나서도 케이블카를 타면 몇 분 안에 올라가게 될 신불산에서 우리가 잃게 될 것은 무엇인지를 곰곰이 잘 생각해봐야 한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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