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황금배의 실록을 새로 쓰는 사람들
울산황금배의 실록을 새로 쓰는 사람들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09.29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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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부터)황금배연구소 홍병식 총무, 황금배연구소 심재언 회장,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신기원 과장.

“울산황금배 역사 실록 쓰듯 새로 써내려갈 것”



추석연휴 끝 무렵 YTN이 이색적인 뉴스를 하나 전했다. ‘탁구공만한 사과… 과일도 소형화 바람’이란 제목의 뉴스였다. ‘좋은 과일’이라면 흔히 색이 진하고 알이 굵은 것을 떠올리지만 1인 가구가 늘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크기를 줄인 품종이 많이 개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담았다.

YTN 기자는 재배농민의 말을 빌려 ‘탁구공 크기의 잘 익은 사과’의 무게는 90g 정도로 보통 사과의 3분의1 수준이라 했다. 하지만 당도는 오히려 높고 병충해에도 강해 재배하기도 수월하다고 강조했다. 껍질째 한입에 쏙 넣을 수 있어 1인 가구는 물론 단체급식용이나 기내식으로도 인기를 끌 전망이라는 사족도 달았다.

YTN 기자는 또 이번 추석에 명절 제수용, 선물용 굵은 배가 아닌 조그만 크기의 배들이 선을 보였다고 신품종 개발 소식을 전했다. 당도가 높고 과즙이 풍부한 ‘황금배’를 비롯해 ‘한아름’, ‘스위트스킨’ 등 모두 7품종이 개발됐다고 전했다. 특히 황금배는 일부이지만 미국 등지의 수출 길에 올라 해외진출 가능성도 엿보인다는 소식도 곁들였다. 인터뷰에 응한 농촌진흥청 배연구소 신일섭 연구관은 농가 소득을 높이고 자유무역협정(FTA) 파고도 넘을 수 있게 중간 크기의 새 품종을 적극 보급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황금배=일본산 ‘신고’+한국산 ‘20세기’ 교배종



‘한입에 쏙 넣을 만한’ 탁구공 크기의 소과(小果)는 아니지만 한눈에도 늘씬해 보이는 중간 크기의 배가 요즘 울산에서 이름값을 하기 시작했다. 울산시농업기술센터(소장 정대화)가 의욕적으로 인기 만회에 나선 이른바 ‘울산황금배’다.

‘황금배’는 31년 전인 1984년 농촌진흥청이 일본산 ‘신고(新高, Niitaka)’와 국산 ‘20세기’를 교배해서 새로 개발한 국산 신품종이다. 울산의 일부 과수농가들이 그 해 곧바로 이 품종을 받아들여 ‘황금배’의 전성시대를 예고한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인기가 그렇게 오래 가진 못했다. ‘제수용 배는 굵어야 제사상에 올릴 수 있다’는 소비자들의 오래된 인식, 그리고 보완해야 할 저장성, 부족한 홍보가 황금배의 상품성, 시장성을 반으로 토막 냈기 때문이다. “맛과 품질은 신고보다 훨씬 좋은데도 신고의 위세에 눌린 데다 장점이 잘 안 알려진 탓이 컸지요.”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신기원 기술지도과장의 진단이다.

“인기가 떨어진 것은 약 10년에서 15년 전부터의 일로 기억됩니다.” ‘황금배연구회’의 젊은 농부 홍병식 총무(39)의 귀띔이다.

그러던 차에 변화가 나타났다.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던 황금배가 약 3년 전부터 젊은 층을 파고들면서 인기가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YTN 보도대로, 간편하게 먹을 수 있고 단맛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반론이야 물론 있지만, 황금배 인기 회복의 비결에 대해 울산시농업기술센터 윤주용 농업지원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칼로 연필 깎아본 적 없는 세대는 과일 껍질 깎기를 싫어하는 경향이 있을 겁니다.” 신세대들은 그대로 씹어 먹기를 더 좋아한다는 지론이다.

 

▲ 지난 25일 오후 울산시청 광장에 마련된 추석맞이 직매장의 ‘황금실록 ’ 번째)이 농업기술센터 신기원 과장(오른쪽 두번째)의 설명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



울산황금배, 껍질째 먹을 수 있어… 신세대 선호



사실 ‘황금배’는 껍질이 ‘신고’처럼 억세지 않고 연해서 일부러 깎아내지 않고도 씹어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 딱딱해서 잘 안 먹는 과일 안쪽의 씨방이 작아서 먹을 수 있는 부분(果肉)이 상대적으로 많다. 다만 껍질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잔류농약 성분’이 다소 꺼림칙하지만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다. 그 이유는 울산황금배의 재기를 위해 지난 3월 19일 창립총회를 가진 ‘황금배연구회’의 회원가입 조건에서 엿볼 수 있다.

연구회에 회원이 되려면 농업기술센터의 ‘주요 생산관리’ 지침을 따라야 한다. 즉 ▲수확 20일 전 시비-관수를 중단할 것 ▲7월 20일 이전에는 저농약 방제를, 7월 20일 이후에는 친환경 방제를 할 것 ▲크기(무게)는 577g~375g(26~40과/15kg)일 것 ▲출하는 당도(糖度)가 12.5°Bx(브릭스) 이상일 때부터 할 것 등이다.

이 지침에 어긋나면 ‘황금실록’이란 이름으로는 출하할 수 없다는 페널티가 주어진다. 처음에는 황금배를 재배하는 42개 농가 중 재배면적이 3ha 이상인 14개 농가가 회원가입에 동의했다.

창립총회 시점에는 2개 농가가 못 미더운 나머지 스스로 빠져나갔다. ‘중·소과’ 규정대로 하자면 크기가 작아 제값을 못 받을까 우려해서였다.

이날 새 임원진이 갖춰졌다. 회장에 심재언(울주군 삼남면 신화리 수정마을), 부회장에 박광웅(울주군 서생면), 총무에 홍병식(중구 성안동 명지농장), 감사에 박주용(울주군 청량면))씨가 각각 선출됐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제수용으로 쓰이는 배는 무게가 보통 700∼800g. 하지만 ‘황금실록’은 무게를 600g이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고 있다. 중·소과(中·小果)로 승부를 보겠다는 계산된 전략이 깔려있다. 같은 품종이 황금배라 해도 경북 군위나 상주 등지에선 제수 또는 수출용 대과(大果) 위주의 생산을 고집해 ‘작은 고추’ 울산황금배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대과 위주의 재배는 성장촉진제 주사가 필요해 자연친화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황금배연구회’의 출범을 적극 도운 농업기술센터는 울산황금배의 브랜드 이름을 ‘황금실록(黃金實錄)’으로 정하고 지난 8월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을 마쳤다. “황금실록이란 이름, 울산황금배의 역사를 왕조실록을 쓰듯이 새롭게 써내려가겠다는 재배농가들의 의지를 담아 지은 겁니다.” 농업기술센터 과수담당 김경상 지도사(지방농촌지도사)의 전언이다.

 

▲ 롯데광장에서 열린 '황금실록' 홍보판촉 행사에 몰려든 시민들.



3차례 홍보 행사서 ‘없어서 못 판’ 황금실록


농업기술센터는 ‘황금실록’의 홍보 및 판촉 작전을 위해 농촌진흥청으로부터 올해 예산(국비) 2억원을 미리 확보해 두었다. 이 예산으로 시기별 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진행해 오고 있다. 이달 들어 롯데백화점 광장의 홍보·판촉 행사(8일간)와 태화강 둔치에서의 ‘웰빙 라이프’ 행사(3일간), 울산시청 광장의 추석맞이 직거래 행사(2일)도 이 예산으로 진행했다. 그랬더니 예상 밖의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없어서 못 파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 현상에 대해 황금배연구회 심재언 회장이 신이 난 듯 증언한다. “하도 물량이 달리기에 흠집이 있어 보이는 등외품을 갖다 놔도 잘만 사가십디다.” 1개에 1천500원으로 싸고 맛있다 보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더라는 것. 사실 재배 과정에서 습기 따위로 배 껍질에 생기는 노란색 ‘동녹’은 병충해와는 무관하고 몸에 해롭지가 않다.

세 곳 행사에는 다양한 포장용기들이 ‘황금실록’이란 이름으로 첫선을 보였다. ‘잔류농약 불검출’이란 쪽지도 같이 붙여졌다. 여기서 ‘첫선’이라고 한 것은 울산지역 황금배 재배농가들이 홍보·판촉 행사를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공동으로 가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농업기술센터는 이들 행사를 앞두고 손쉽게 사갈 수 있도록 두서너 개만 담을 수 있는 비닐포장지를 전국 처음으로 개발해서 내놓았다. “배는 박스째로 판다”는 인식을 바꾸어 놓고 말겠다는 야무진 의도가 작용했다. 10과 안팎이 들어가는 선물용 포장상자도 처음으로 선을 보였다. 낱 개, 두서너 개짜리는 물론 선물용 포장상자의 배도 불티나게 팔렸다. 그야말로 없어서 팔지 못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였다.

“롯데백화점 행사 때는 특히 (과일에) 고급스러운 띠를 두른 2만 원짜리 선물세트(10개 들이)가 대박이 났지요. 없어서 다 못 팔았지만 1천300세트나 나갔으니 말입니다.” 황금실록의 출하와 유통을 책임지고 있는 황금배연구회 홍병식 총무의 귀띔이다.



최유경 의원 “유럽선 앙증맞은 과일이 인기”



추석을 이틀 앞둔 지난 25일 오후 시청 광장에 마련된 추석맞이 직거래장터에는 김기현 사장과 박명철 시의회 의장이 매장 곳곳을 둘러보는 과정에 황금실록 부스도 찾았다. 울산황금배를 직접 맛본 김 시장은 시식 후 ‘맛 리서치’의 ‘매우 좋음’ 난에 딱지를 붙여 호감을 표시했다.

광장 부스에는 시의회 최유경 의원도 시차를 두고 방문했다. 최 의원은 호리병 모양의 국산 ‘돌배’를 비롯해 나란히 진열된 ‘종자 배’들에 눈길을 주면서 신기원 과장과 사뭇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유럽에선 사과 , 딸기, 배 할 것 없이 작아서 앙증맞아 보이는 과일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한입에 베어 먹을 수 있어서 그런지. 우리도 크고 굵고 달아야 인정해 주는 과일 소비 패턴을 뒤집어야 할 것 같아요. 우린 크게 만들기 위해 너무 인위적으로 접근하고 소비자들의 기호도 덩달아 그렇게 굳어지고. 유럽처럼 영양소와 자연친화적인 것을 더 중시했으면 좋겠어요. 우리 울산황금배도 울산시가 나서서 시나 시의회 방문객 선물용으로 개발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 말에 신 과장도 공감을 표시했다.

황금배연구회 심재언 회장이 의미 있는 말을 던진다. “배는 제사상에나 오르는 과일이라는 선입견을 버릴 수 있도록 황금실록의 위상을 더 한층 높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맛있는 배를 손쉽게 구해서 먹기를 바라는 소비자의 기호를 만족시키다 보면 우리 황금배 재배 농가의 소득도 자연히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울산 배재배·중국 농업이민사 기록으로 남겨야



울산에서 배를 심고 재배하기 시작한 시기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이후로 알려져 있다. 농업기술센터 신기원 과장은 울산에서 배를 재배한 것으로 남구 여천동 일대로 꼽는다. 일본인들이 신고 등 일본산 종자를 들여와 심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 황금배연구회 홍병식 총무는 달리 이의를 달지 않는다. 다만 울주군 서생면 일원이라는 주장도 그쪽에서 나온다는 점을 상기시키면서 울산시의 행정구역 개편 전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이 점 학문적 고찰이 필요할 것 같다.

신 과장은 또 황금배는 일반 배처럼 접목이 쉬워 중국으로 유출된 적이 있다고 귀띔한다. 홍 총무도 울산에서 배를 재배하던 농가 17세대가 중국으로 이민 간 것은 사실이며 이들이 외국에 황금배를 수출할 때는 꼭 ‘울산배’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울산 어느 지역의 농가들이 중국으로 농업이민을 갔으며 그 시기가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른다고 덧붙인다. 이 점 역시 산업화 과정의 배 재배농가 집단이주 역사와 더불어 학문적 조사와 분석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이다.

울산시와 농업기술센터 집계에 따르면 현재 울산의 배 재배농가는 1천191 호이며 ‘신고’ 재배 농가가 절대적 우위를 차지한다. 황금배 재배농가 42호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농업기술센터는 ‘황금실록’ 상표 출원을 계기로 황금배를 고품질·고소득 전략재배 작물로 육성시켜 농가소득 증대에 도움을 주겠다는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글·사진=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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