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동행
책임 있는 동행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23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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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해있다. 앞 베란다로 나서면 멀리는 천성산이 보이고 조금 가깝게는 문수산과 남암산도 보인다. 그리고 더 가깝게는 대공원 주변 산과 주위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아파트 바로 아래는 예쁜 초등학교와 남쪽으로 돌아앉은 주택가의 뒷모습이 정겹다.

집집마다의 옥상에 앉혀진 저수조들은 언제 봐도 이채롭고 텃밭을 가꾸는 사람, 아침마다 맨손체조를 하는 사람, 빨래를 너는 사람 등 우리들이 사는 모습을 매일 다른 풍경을 보듯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다.

진초록이었던 먼 산빛이 시나브로 옅어지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다. 올여름은 연이어지는 폭염 때문에 유난히 더웠다는 기억이다. 그런데 올여름 들면서 주택 사이에 들어서있는 3층짜리 상가건물의 옥상에 무언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헉헉거리며 돌아다니는 성견 두 마리였다. 처음엔 왜 옥상에서 개를 키울까, 용도는 뭘까, 혹 투견은 아닐까 싶기도 했다.

언젠가 TV에서 투견을 본 적이 있었다. 인간의 잔인한 욕심 때문에 투견대회에서 큰 상처를 입고 고통 받는 개의 처절한 모습을 보는 순간 화가 치밀었었다.

밖을 볼 때마다 의아한 마음에 자꾸 그쪽으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질주본능을 삭이며 몸이 묶인 채 뜨거운 콘크리트 옥상 바닥에서 불이 붙는 발바닥을 이리저리 옮기며 지옥 같은 한여름을 살아냈을 것이다.

더러 늦은 밤 시간 컹컹거리며 짖는 소리도 자주 들렸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개가 내는 소리가 달라졌다. 짓는 소리가 아니라 우는 소리처럼 전과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 울음소리이거나 깊은 한숨소리라고 생각했다.

밤이 되면 더 깊은 슬픔의 심연에 빠지는 인간의 감정처럼. 그 소리에 한밤을 넘어 새벽녘으로 들어설 때 깊은 잠에서 깬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밖으로 나와 살펴봐도 어둡기만 할 뿐 작은 움직임의 그림자도 없었다. 그러다 다시 낮이 되면 소음에 섞여 조용한 듯했다. 운명처럼 떠날 수도 없는 좁은 곳에서 개는 밤마다 몸부림을 치는 듯했다.

간혹 사람들 중 심심풀이 놀이갯감으로 책임감 없이 동물을 소유하고서는 자신의 달라진 처지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장난감 버리듯 유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그러나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있듯이 대개의 경우 사람들 삶의 긴 부분을 함께하고 사람에게서 받지 못한 위안을 동물에게서도 받게 된다. 그럼으로써 관계는 더 밀접해져서 인간과 동물 사이의 기본적인 개념조차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요즘 시대, 절친한 사람 사이에서도 예의가 필요하듯 인간과 동물에게도 적당한 거리와 넘치지 않는 배려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팔순노인이신 친정엄마는 갈수록 혼자만의 시간을 힘들어하신다. 그래서 강아지 한 마리를 보내드리면 어떨까 한때 생각했지만 섣부른 생각임을 알았다. 당신 혼자 몸도 힘든데 매일 해야 하는 동물의 뒤치다꺼리는 일을 더 만드는 것이기에 한번 선택하면 책임도 따르는 일임을 간과했던 것이다.

아파트마다 고양이들의 개체수가 늘어 밤이면 길을 걸을 때 부딪칠 정도라고 야단들이다.

급기야 지자체나 동물보호단체에서 중성화수술(TNR)을 실시하기도 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동물과 인간은 오래전부터 숙명적 관계로 이어져오지만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분명 적정한 거리와 소유에 대한 책임 또한 필요할 것이다.

<이정미 수필가 / 나래문학 동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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