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과 베짜기
추석과 베짜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2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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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과 추석은 한 해의 시작과 마무리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설날이 시작의 의미라면 추석은 수확의 마감으로 인식한다. 현재의 추석은 한해 농사의 풍성한 수확물이 조상의 덕분으로 인식하고 햇곡식과 햇과일로 차례를 지내고 있다. 오늘날 추석 명절은 신라의 길쌈 짜기 경쟁과 연관된 ‘가배(嘉俳)’가 기원이다.

“왕이 이미 6부를 정한 다음에 가운데를 둘로 나누고서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각기 부 내의 여자를 거느리고 편을 지어 가을 7월 기망부터 매일 대부의 뜰에 모여 길쌈을 하고 한밤중에 파하되, 8월 15일에 이르러 그 공의 다소를 고사하여 진 편이 주식을 장만하고 이긴 편에게 사례하도록 하니 이에 노래와 춤 온갖 놀이가 벌어졌는데 이것을 가배(嘉俳)라 하였다.” (삼국사기 유리이사금 9년 조)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음력 8월 15일은 길쌈 경쟁에서 이긴 쪽을 칭찬하고 장려하는 포상일이며, 현재의 추석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의복은 삶에서 반드시 필요한 물건이다. 오곡(五穀-쌀. 보리. 조. 콩. 기장)에 상(桑)과 마(麻)를 보태어 칠부(七賦)라 부르는 것에서도 사람의 삶에 식(食)만큼이나 입는 옷(衣)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특히 겨울의 따뜻한 의복은 생명의 지속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생명줄과도 같은 물건이다. 신라시대 가배 행사는 의복의 중요성과 미리 챙기는 준비성을 확인시켜주고 있다. 7월 16일부터 한 달 동안 밤늦게까지 길쌈을 하여 수량이 많은 편에게 상을 주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방편일 것이다. 오디, 뽕나무, 누에, 베틀가, 삼, 모시, 갈베 등은 모두 의복과 연관된 단어이다. ‘길쌈 잘하는 첩(妾)’이라는 속담에서도 길쌈의 중요성을 새삼 알 수 있다. 베 짜기는 주로 여성이 담당한 것으로 ‘견우와 직녀’가 등장하는 칠석의 설화, 해와 달로 등장하는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와 ‘뻬 짜는 두루미’의 동화에서도 발견된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설화는 등장인물에서 직감할 수 있다. 베 짜는 여인 직녀라는 인물의 설정에서 의복의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중국에는 우랑(牛郞)과 직녀(織女)의 전설이 우리나라에서 견우(牽牛)와 직녀(織女)의 이야기로 자리 잡았다.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는 <삼국유사>에는 157년, 신라 동해 영일(迎日) 빈(濱)에서 해와 달이 광채를 잃게 된 이야기로 전한다. 연오랑과 세오녀는 부부로 살았는데, 하루는 연오가 해조(海藻)를 채취하는데 갑자기 바위가 움직여 일본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왕이 되었다. 남편을 찾아 나선 아내 또한 일본으로 갔다. 그러자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게 되었는데 일관에게 물은즉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이라 했다. 신라 제8대 아달라왕은 사자를 보내 찾았으나 부부는 귀국하기를 거절하고 방편으로 왕비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기를 권했다. 그렇게 하니 신라의 해와 달은 전과 같이 그 빛을 되찾았다는 설화이다. 내용을 자세히 들어다보면 세(細), 비단(緋緞) 등 의복과 연관이 있는 키워드가 등장한다.

이를 확대시키면 세오녀의 이름인 ‘세(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오(烏)’가 고대 신라인의 이름에 붙던 접미어의 한자 차용 표기로 볼 경우, ‘세(細)’는 ‘가늘다’로 접근할 수 있다. 세는 세모시와 같이 길쌈의 가는 실올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오녀는 왕비의 신분임에도 베 짜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왕비가 된 세오녀가 짠 비단을 건네주는 장면에서 기능의 지속성을 확인할 수 있다. 결국 의복을 책임지는 여자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베 짜는 두루미 이야기는 ‘가난한 청년이 화살을 맞고 쓰러진 두루미 한 마리를 구해 주었어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두루미는 아리따운 아가씨로 변해 청년의 아내가 됩니다. 아내는 아름다운 베를 짜겠다고 말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베를 다 짤 때까지 베틀방을 들여다보아서는 안 된다는 언약을 하였습니다. 남편은 궁금해 참다못해 손가락으로 작은 구멍을 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남편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속에는 아내가 아닌 한 마리 두루미가 자기의 깃을 하나씩 뽑아서 세상에서 볼 수 없었던 귀한 베를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초등학교 때 교과서에서 읽었던 기억을 재구성)

베 짜기의 중요성은 베틀가를 통해서도 충분히 이해된다. ‘베틀 노세 베틀 노세 사랑방에 베틀 노세’, ‘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밤에 짜면 월광단이라 일광단 월광단 다 짜 가지고 어느 댁 시부모 뒤 걷어 보나’, ‘이 베를 짜서 정든 님 주적삼 맨들어 백년기한을 살아보세’, ‘주야장천 베만 짜면 어는 시절에 시집을 가나’, ‘모든 시름 다 잊어버리고 이 밤이 가도록 베만 짜자’, ‘베틀을 노세 베틀을 노세 옥난간에 베틀을 노세’, ‘닭아 닭아 우지를 마라 이 베 짜기가 다 늦어 간다’(베틀가)

현재 추석은 8월의 보름과 가을의 풍성한 추수가 시대적 필요에 의해서 첨가되었지만 추석의 본질 ‘가배(嘉俳)’에서 보듯이 진정한 의미는 곧 닥쳐올 겨울을 대비한 직조의 장려와 권장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올해는 추석의 변천과 본질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시길.......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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