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1화 드디어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제41화 드디어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2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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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근만근 발걸음은 날개단 듯 가벼워
식구들 생사 확인하자 얼싸 안고 울어

‘이윽고 내 차례가 돌아왔다. 헌병 앞에 서자 심장이 사정없이 뛰었다. 다리가 휘청거렸다.

흔들리는 내 모습을 헌병이 잠시 이상한 눈초리로 훑어보면서 ‘어디서 오는 거요? 신분증 좀 봅시다.’ 당시에는 도민증이라는 것이 있었다. 학생이어서 도민증이 없었고, 인민군이 만들어준 전선군의국 군의관 신분증은 이미 없애버렸고, 임환철로부터 얻어 입은 양복 안주머니 깊숙한 곳에 보물처럼 간직해온 의과대학 학생증밖에 없었다.

떨리는 손으로 낡고 빛바랜 학생증을 보여주며 북쪽으로 끌려갔다가 겨우 탈출한 사연을 대충 말하자 예비의사인 점을 감안했는지 별다른 조치 없이 통과시켜 주었다.

얼마 만에 돌아온 서울인가! 정신없이 집을 향해 달렸다. 천근만근이던 발걸음은 날개를 단 듯 가벼웠다. 눈 깜짝할 사이 집 앞까지 달려온 내가 제일 먼저 마주친 사람은 우리 식구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이었다. 한참 만에 나를 알아본 후, 그는 살아있었다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내 손을 움켜잡았다.

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서자 아내가 맨발로 뛰어나와 내 손도 못 잡고 울기부터 하였다.

그 사이 많이 자란 딸아이는 놀란 눈으로 어미를 따라 울음보를 터트렸다. 그 때야 나 역시 눈물을 흘리며 가족들을 얼싸 안았다. 얼마나 그리웠던가! 식구들의 생사를 확인하자 온 몸의 기운이 빠지고 그동안의 긴장이 풀어지면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왔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꿈속의 나는 여전히 누군가로부터 쫓기며 포탄이 쏟아지는 전장을 맨발로 헤매고 있었다. 자욱한 연기가 하늘을 덮었고 부상자의 비명이 사방에서 울려 퍼졌다. 갈 길을 잃은 체 허공을 향해 고함을 지르다가 잠에서 깨어나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끔직한 악몽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며 따라다녔고 진저리나는 광경들을 수없이 목격했던 나는 한동안 악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학부시절에 배웠던 프로이드의 정신분석이론을 나 자신에게 적용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다.

며칠을 혼미한 정신으로 지내며 아내를 걱정시켰다. 내 건강이 회복되기를 기도하며 곁을 지키던 아내의 정성으로 정신을 차린 나는 그간의 집안 사정과 서울의 분위기를 물었다.

내가 북쪽으로 떠난 후 오랫동안 소식이 없자 고향의 부모님과 아내는 내가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고 딸아이의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아내는 떡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팔며 생활을 꾸려왔다고 했다. 장사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시장 바닥을 차지하고 앉아서 있었을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인민군이 북쪽으로 후퇴하고 국군이 서울을 수복한 후, 또 한 차례의 피바람이 불어 닥쳐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민군을 도와 준, 당시에는 ‘부역자’ ‘부역한 사람’이라고 재판도 없이 사람을 붙잡아 죽였다. 악질적인 부역으로 인심을 잃었던 일반인들, 속이 빨갱이인 사람들은 모두 처형되고, 나처럼 강제로 징집되어 인민군 병원에서 근무한 의과대학 교수나 학생들은 인민군의 강제성이 인정되어 다행히 숙청이라는 광풍을 피했다고 했다.

인민군이 우리 의과대학 학생들을 강제로 징집하여 일을 시켰듯이 국군 역시 우리 의료인들을 징집하여 군의 부족한 의료 인력을 보충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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