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遺憾)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상)
유감(遺憾)의 뜻도 모르는 사람들(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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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한글 전용으로 우리 국어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는 그들이 불쾌해 강원도 양구 휴전선의 을지전망대를 다녀왔다. 이곳을 찾은 또 다른 이유는 필자가 군복무시절(1962년)에 남방한계선의 철조망 치는 작업에 자원하여 들어간 곳이기 때문이다. 5·16 후, 휴전선 전체의 철조망 강화 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필자는 전투사단 포병(155미리 곡사포)이어도 휴전선에서는 한참 떨어진 곳이어서 북한과 대치하고 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아 전방 경험을 해보고 싶고, 포병부대 생활이 지루하기도 해서 밖으로 나간 것이다. 약 열흘간 힘든 일을 해보았다. 밤에는 지뢰 터지는 소리도 들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되는 순간은, 어느 고지의 8부 능선쯤에서 철조망을 걸쳐놓아가며 철봉을 박고 있을 때, 천둥번개가 치는 폭우 속에서 온 몸이 비에 흠뻑 젖은 채 작업을 하는데, 갑자기 사방이 환해지면서 ‘짝’하고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철조망을 잡고 있던 손으로 찌르르 전기가 흘렀던 일이다. 수 십 미터를 풀어가고 있던 철조망 다발을 떨어트리며 반쯤은 넘어졌던 일이다. 다른 병사들은 멀쩡했다. 아마 나만 철조망 철사를 잡고 있었던 것 같다. 과거에 내가 벼락 맞을 짓을 해서 하느님이 벌을 주셨나 보다. 아마 부대 식당에서 두부 훔쳐 먹은 일로 벌을 내렸던 같다. 제 배만 채우려 했으니 벼락을 맞을 만한 죄(?)를 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있는 것은 벼락의 전기가 바로 땅으로 흡수되는, 접지(接地, earth)의 가장 끝에서, 온 몸이 비에 젖어있어 전기가 바로 흘러가는 상태라서 요행(僥倖)으로 살아남은 것 같다. 사실, 이렇게 벼락을 설맞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다. 그때 내 몸의 잡균들이 다 청소되어서 지금까지 잔병이 없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을지전망대가 있는 남방한계선은 휴전 당시 보다 약 1 킬로미터 북진(北進)한 것이어서 필자가 쳐놓았던 철조망은 흔적도 없고 인삼 밭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다. 지금의 북방한계선이 휴전 때보다 1 킬로미터 허락도 없이 남쪽으로 내려와 우리도 1 킬로미터 북진한 것이 지금의 남방한계선이다. 휴전선 폭이 좁아진 것이다. 전망대의 망원경에 5 백 원 동전을 넣고 북한의 북방한계선을 더듬었다. 괴뢰군(傀儡軍)은 한명도 보이지 않았다. 보였다면 들리지도 않았겠지만 목청을 돋워 ‘북진통일(北進統一)!’이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좁아진 휴전선을 아예 없애버리자는 뜻에서다. 필자의 대학시절까지는 북진통일이었다.

소위 진보적이라는 정치꾼들이 질색할 ‘북진통일’을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 북한 사람들이 한자(漢字)를 병기(倂記)하지 않아서 유감(遺憾)과 유감(有感)을 교묘히 혼란시키며 우리를 화나게 하고 있어서다. 문맥(文脈)을 무시하고, 遺憾을 有感으로 고집피우는 북한 특유의 억지를 부리기 때문이다. 遺憾은, ‘내 진심은 그게 아닌데 일이 그렇게 되어서 나 자신도 불만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미안하게 됐다는 뜻이다. 有感은 한자풀이로 ‘느낌이 있다’는 말이다. 한국이 낳은 천재 수채화가 김건배 화백의 전시회에 대해 펜화의 대가 김영택 화백이 투명 수채화라고 했는데, 발레 무용수의 치마 일부분에 화이트(white)를 썼으며, 작가가 ‘색채의 순수함을 지켜내기 위하여 빠랫트에서 색을 혼합하지 않고, 투명한 원색물감을 차례로 겹쳐 바르는 기법을 사용, 인체의 오묘한 색의 변화를 조화롭게 표현했다.’에 크게 느낀바가 있을 때, ‘有感했다’고 쓴다.

한백교회(한명숙의 남편 박성준과 안병무가 세운 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왜, 어떻게 한반도가 통일된 하나의 국가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밝힌 바 없다. 필자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왜 통일되어야 하는가?’에 관해, 설득해주었으면 좋겠다.

박해룡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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