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그림과의 대화
바위그림과의 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13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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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추수기에 접어들면서 암각화를 소재로 한 행사와 발언이 부쩍 늘고 있다. 그래도 아직 풍성한 수확은 기대하기 힘들다.

암각화를 소재로 한 가을 행사는 반구대포럼이 지난달 22일 울주군 반구대 집청정 일원에서 마련한 ‘반구대축제’가 처음이었다. 그 바통은 지난 9일 암각화박물관이 이어받았다. 포르투갈의 ‘코아 암각화’ 특별전 개막에 때맞추어 이틀 동안 국제학술대회를 연 것이다. 두 행사 모두 국보 285호 반구대암각화의 보존과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똑같이 겨냥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지난 11일, 울산시의회 제172회 임시회를 마치던 날 임현철 의원이 반구대암각화 보존 문제로 시정질문에 나선 것이다.

임 의원은 200자 원고지 22장 분량의 시정질문서를 통해 지금껏 아무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는 질문을 김기현 시장에게 던졌다. “‘백제역사유적지구’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잠정 등록된 2010년 1월 11일, 울산의 반구대암각화도 ‘대곡천 암각화군’으로 같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반구대암각화는 어떤 기로에 서 있습니까?” 그의 질문은 비장하기조차 했다. 또 그의 말대로 ‘발상의 전환’ 없이는 상상조차 못할 획기적 내용을 담고 있었다.

임 의원은 “반구대암각화가 풍화 5단계 중 4단계를 넘어 이제는 작은 충격으로도 무너질 정도의 ‘사멸 위기’에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이어 임시 물막이(일명 카이네틱댐)의 실효성이 입증되지 못할 경우 어떻게 대처할지를 김 시장에게 물었다. 그는 특히 ‘현대인의 조상’ 크로마뇽인이 약 1만7천년 전 사람과 동물 그림을 벽에 그린 프랑스 몽티냑의 ‘라스코 동굴’을 지난 7월 다녀온 이야기를 꺼냈다. 근처에 똑같은 모양으로 만든 ‘라스코 2’라는 복제동굴을 개방하는 대신 진짜 동굴은 전문가만 들여보낸다는 사실을 전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내뿜은 입김으로 동굴 전체가 많이 부식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라스코 동굴 벽화를 복원시키고 ‘라스코 2 동굴’을 만든 ‘라스코동굴복원연구소’를 찾아갔으며 다시 ‘오스트리아 국립고고학협회’의 고고학박사를 만났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프랑스에서는 반구대암각화를 따로 떼어내 박물관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라스코처럼 복제품을 만드는 것이 가능한지를 물었고, 오스트리아에서는 카이네틱 댐의 실효성과 암각화 보존 방안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양쪽 관계자 모두에게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점이라 했다.

즉 손상되었거나 훼손 위기에 있는 진품들은 박물관에 옮기고 그 자리에는 복제품을 놓아두는 것이 일반적인 보존방법이라는 것. 체코 프라하 ‘카를다리’의 석상 보존 방식도 다르지 않다는 말도 덧붙였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두 나라 관계자들 모두 반구대암각화 훼손의 주범으로 ‘무분별한 탁본 행위’를 지목한 점이었다. 시정질문을 마치고 의원연구실로 돌아온 임 의원이 다소 격앙된 어조로 말했다. “삼가야 하는 얘기인 줄 알지만, 사계의 전문가라는 분들, 그동안 ‘탁본 장사’ 얼마나 많이 한 줄 아십니까?”

다시 살펴본 임 의원의 시정질문서에는 절박함마저 묻어나 있었다. “지금 반구대암각화는 가까이 가지 않고서는 잘 보이지도 않습니다. 만약 반구대암각화가 이처럼 부서지고 떨어지면 그때 가서야 박물관에 옮길 것입니까?”

그의 주장에 김 시장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라스코2동굴과 같은 형태로 이전하여 보존하는 것 또한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집트 아부심벨 유적을 통째로 이전하여 보존하면서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사례가 좋은 참고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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