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맺은 관계의 올바른 결실을 기대한다
우리가 맺은 관계의 올바른 결실을 기대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0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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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서 산다. 일상이 그런 부대낌 속에서 성장하기도 하고 좌초되기도 할 것이다.

이른바 ‘관계의 힘’이라 말할 수 있겠는데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상존하는 이유다.

흔히들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게 우정의 목적이든 사랑의 결실이든 아님 또 다른 목적이든 간에 이러한 만남은 우리 일생의 운명일 것이다. 작가 레이먼드 조는 ‘상처받지 않고 행복해지는 관계의 힘’이란 그의 책에서 ‘우리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바로 관계’라고 말했다.

작가 레이먼드 조는 이 책에서 먼저 쌍둥이 ‘카이리와 잭슨 자매 이야기’를 꺼내 보인다. 이 쌍둥이는 예정일보다 12주나 빠르게 미숙아로 태어났다. 동생은 게다가 심장에 결함이 있었다는 안타까운 사연.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되기는커녕 점점 쇠약해지는 동생 잭슨을 지켜보던 간호사가 인큐베이터에 함께 있게 해주기를 제안하지만 의사들은 규정에 어긋난다며 반대했다. 겨우 부모의 동의를 얻어 언니 카이리를 아픈 동생의 인큐베이터에 눕히자 동생을 껴안고, 놀랍게도 포옹을 하는 사이 위험 수위에 있던 동생 잭슨의 각종 수치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작 작은 포옹’이라는 제목으로 SNS에 소개되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린 바 있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이러한 만남 속에서 자칫 잘못되기라도 한다는 그 관계는 ‘원수’가 되기도 한다.

세상이 어려워질수록 사람들은 ‘위로’에 기대려 하는 습성이 있다. 힘든 일상을 치유받기 위해선 꼭 필요한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그 ‘관계의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일방통행 식의 관계는 부적절하다. 결국 관계를 이끌어가는 힘은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자가당착’은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나는 잘하고 있는데 남이 문제’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흔히들 ‘살다보면 개도 보고 소도 보고 한다’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자신이 당한. 혹은 다른 이가 당한 일들에 대한 위로의 말쯤 되겠는데 이 정도론 치유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관계의 힘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는 일이다.

수없이 만나고 헤어지는 사회라는 공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묻고 싶다.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단면만 보려는 경향이 삶을 왜곡되게 만든다.

만남은 선(線)이 아니라 면(面)이다. 상대의 면면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상처는 주는 것만이 아니라 받기도 한다. 결국 우리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일이 아니가?

살기 힘들다고 아우성치는 요즈음이다. 뉴스도 밝은 뉴스는 찾기 어렵다. 마치 건조한 사막을 건너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시절, 감동이 필요하다. 감동은 동감하고 공감하는 데서 나온다. 좀 더 우리는 우리의 관계를 풍성하게 만들 방안들을 강구해야 할 처지다.

가을이라 창밖은 맑다 못해 눈이 시리다. 이 계절은 결실의 시간이기도 하다. 이제 나부터라도 흐트러진 관계를 복원하는 데 힘쓸 일이다. 마음의 병을 키울 일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할 일이라는 말이다. 오늘 저녁은 그간 섭섭했던 마음을 나눌 친구에게 기별을 넣어야겠다.

<이기철 인문학서재 몽돌 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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