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의 종교를 말한다
한명숙의 종교를 말한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0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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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에 무식한 어느 대학 교수가 동료들과의 잡담 중에 불교 얘기가 나오자 갑자기 심각해지며 불교는 종교가 아니라 철학이라고 핏대를 올렸다. 이런 무식한 교수와는 어디서부터 종교와 철학의 관계에 대하여 논의를 시작할 지 난감한 경우가 더러 있다. 교수(敎授)라는 격에 맞지 않은 대화의 소재 때문에 난감할 기회조차 많지는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단일 가치관에 스스로를 가두어 놓고, 그 안에서 안주하고 있기 때문이며, 가치관을 벗어난 소재조차 어디에 가면 콩나물 값이 더 싸다는 것이어서 그렇다. 더구나 그의 전공이 교육학 일반이며 구체적으로는 교육심리학인데, 너무나 상식적인 것을 자기가 믿고 있는 특정종교의 ‘종교’라는 범주에 넣고 거룩하고, 우아한 행세를 다 해서 그렇다. 그의 종교논리에 따르면, 종교에는 신(神)이 있어야 하는데 불교에는 우상숭배(偶像崇拜)만 있지 신이 없다는 것이다. ‘어떤 것이 신이냐?’고 되물었을 때,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응답해주는 존재가 신이다’며 기복사상(祈福思想)으로 무장(武裝)되어 있다. 기도(祈禱)만 하면 다 이루어진다며 비공식적 징계를 받았을 때도 열심히 기도를 했더니 다 해결되었다고 하는 사람이다. 징계의 사연조차 치사한 짓거리 때문이었다. 자신이 지도하는 대학원생 석사 논문지도에서 자신의 국내박사논문 16페이지를 표절시킨 일이 발각되어 비공식적 징계가 이루어진 일이다. 당시의 총장은 연임(連任)에 골몰하여 이런 표절사건이 공식화되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면 재단으로부터 달갑잖은 조치를 받을 것 같아 쉬쉬한 것이다. 코브라 눈을 가진 그 교수의 종교관에 따르면, 총장의 이런 조치(措置)도 기도의 덕분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한명숙은 기독교 신자이다. 그가 위의 무식한 대학교수와 같이 위선적(僞善的) 기독교 신자가 아니라면 십계명(十誡命)에 나와 있는 ‘거짓증언을 하지 말라’는 생활규범(生活規範)을 누구보다 더 잘 따랐어야 했다. 이것은 그의 가장 무거운 책임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목적으로 십계명이 들어있는 성경책을 이용하였다. 검찰청에서 조사를 받으며 검사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하였다. 이때 성경책을 들고 앉아있었다. 무언의 반항이었다. ‘검사, 당신은 사탄에 휩싸여 진실을 못 보고 있고, 나는 하나님, 야훼의 은혜로 양심에 비추어 티끌만큼의 거짓이 없으니 더는 질문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어 기소(起訴)를 취소하시오. 내 손의 성경이 보이지 않소?’의 항변(抗辯)이었다.

대법원에서 한명숙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대법관(정원 14명 중 현재는 13명) 중에는 기독교 신자도 있고, 불교신자도 있을 것이다. 법(法)은 가장 현실성(현실성, reality)이 살아있는 이념(理念)의 구체화(具體化) 수단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종교는 현실성이 결여(缺如)된, 이념이 추상화된 생활지침이다. 우리나라 철학계의 원로 김태길, 안병욱 교수들과 친분이 깊었던 김형석 교수(96세)는 기독교 신자이이지만 특정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 선생님께서 기독교 신자들에게 당부하신 말이 있다. ‘같은 기독교 신자, 같은 교회에 다니는데 그것 좀 봐주지 그러느냐? 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위의 코브라 눈의 위선자 교수는 ‘같은 신자끼리’를 입에 달고 산다. 이 말에는 법도 없고, 진짜 양심(한명숙의 양심은 아니다)도 없는 이기심만 있는 사기꾼 속셈이 들어있습니다.

한명숙이 수감생활 중에 정말 반성하고 회개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서적만 읽을 것이 아니라 ‘격동기에 겪은 사상들(정범모, 2014)’과 ‘삶이란 무엇인가, 삶과 그 보람(김태길, 2010)’도 읽어보기 바란다. 인생의 노른자위는 65세에서 70세라고 김형석, 김태길, 안병욱 교수가 가르쳐주었다.

<박해룡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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