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없이 부끄러운 독서열
한없이 부끄러운 독서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07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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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독서의 계절이라 하면 가을을 떠올리게 된다. 무더위도 한풀 꺾이고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니 책 읽기 좋은 시기인 것이다. 선인들 또한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는 표현으로 가을에 책 읽기를 적극 권장했다. 게다가 선인들은 난세일수록 책읽기를 더욱 즐겨하고 열심히 했다. 그분들이라고 해서 시간이 마냥 넘쳐나고 물질적으로 풍족하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시국이 어지러울수록, 삶이 고단할수록 선인들은 오로지 책 속에서 올바른 길을 찾고자 했기 때문이다.

조선후기 책벌레 백곡(栢谷) 김득신(金得臣)은 평생 1만 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이 될 만큼 대기만성형 인간이었다. 김득신은 별로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지만 ‘독서(讀書)’에 관한 한 단연코 조선 제일로 꼽힌다. 책이라면 일가견이 있었던 정약용도 “문자와 책이 존재한 이후 수천 년과 삼만 리를 뒤져 봐도 최고의 책벌레는 백곡”이라고 극찬했다. 그의 독서법은 이해될 때까지 반복해서 읽는 것이었다.

중국 역사서 백이전(伯夷傳)은 11만 3천 번이나 읽었고 1만 번 이상 읽은 책만 36권에 달했다. 백번 읽으면 뜻을 저절로 알게 된다는 ‘독서백편의자통(讀書百遍義自通)’의 대가였던 것이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덕무(李德懋)의 독서는 매우 광적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간서치(看書痴, 책 읽는 바보)’라 쓴 글에서 “오로지 책 보는 것만 즐거움으로 여겨, 춥거나 덥거나 주리거나 병들거나 전연 알지를 못했다. 어릴 때부터 스물한 살이 되도록 일찍이 하루도 손에서 옛 책을 놓아본 적이 없었다. 그 방은 몹시 작았지만, 동창과 남창과 서창이 있어 해의 방향에 따라 빛을 받으며 글을 읽었다”고 썼다. 가난한 서얼 출신인 그는 남의 책을 베껴주는 품을 팔면서 책을 읽었다.

책 읽기를 즐겼던 선인들의 경우, 독서는 일상 그 자체였다. 위나라 관리 상림(常林)은 밭을 갈면서도 책을 읽었다. 당나라 이밀(李密)은 쇠뿔에 ‘한서(漢書)’를 걸어놓고, 꼴을 먹이면서 잠시도 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후한의 고봉(高鳳)은 아내가 장을 보러 간 사이 마당에 널어놓은 겉보리가 소낙비에 떠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책만 읽었다.

율곡 선생은 《격몽요결(擊蒙要訣)》에서 ‘궁리는 독서보다 먼저 할 것이 없다. 왜냐하면 성현이 마음을 쓴 자취도 본받을 만한 선(善)도 경계해야 할 악(惡)도 모두 책에 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치열했던 선인들의 열정을 접할 때마다 갈수록 식어가는 현대인의 독서열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 서적 보급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하며 책을 펼쳐 읽는 모습은 이제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공원 벤치에 앉아 독서하는 모습이 마치 구시대의 유물인 양 퇴색해 버린 게 우리의 현주소가 되어버렸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NOP 월드’ 보고에 따르면, 세계 30개국 가운데 한국인이 책을 가장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의 활자매체 할애 시간이 주당 3.1시간인데, 1위인 인도 국민은 10.7시간이다. 21세기 IT 강국을 맞는 우리의 독서 실태가 이 지경이면 앞으로 콘텐츠는 어떻게 창조할 것인지 걱정이 앞선다. 인문학의 위기라고들 하지만 이는 기초독서 부족으로 고전을 읽어낼 능력이 없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개탄한다.

책의 판매량이 줄고 ‘활자이탈’, ‘문자이탈’ 현상이 급증하면 국민의 지적 역량이 퇴락하고 정서 불안을 초래, 국가 지식기반이 붕괴될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한때 국민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적이 있었다. 국가가 나서 독서진흥정책을 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국민 스스로가 ‘나’와 ‘가족’을 위해 책읽기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절실한 시기이다.

<김부조 시인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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