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가지 오해
네 가지 오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9.01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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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새 대가리’와 ‘쇠 대가리’

어떤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빗대어 흔히 쓰는 말에 ‘새 대가리’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머리에 해당하는 ‘대가리’는 닭 대가리, 뱀 대가리에서 보듯이 동물의 머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때로는 새와 결부시켜 ‘새 대가리’처럼 사람의 머리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도 사용된다. ‘새 대가리’라는 표현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나타낸다. 하나는 ‘보편적으로 아는 사실을 혼자 모를 경우’, 다른 하나는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반복해도 습득이 잘 되지 않을 경우’에 어른이 나무라는 언어이다. 젊잖게 조두(鳥頭)로 표현할 수 있는데 조두 역시 사전적 의미는 ‘우둔한 사람을 빗대어 이르는 말’로 정의하고 있다. 쇠제비갈매기의 암놈은 번식기가 되면 100회 정도의 교미를 한다. 이때 수놈은 구애를 할 때마다 먹이를 선사해야 한다. 먹이를 받아먹은 암놈은 구애에 응해주기 때문에 그만큼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으며 튼튼하고 건강한 알을 산란할 수 있게 된다. 꼬마물떼새, 흰빰검둥오리 등은 어미뿐 아니라 새끼도 다친 척하여 포식자를 자기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의태행동(擬態行動)을 한다. 사람들이 우둔하다고 생각할 만큼 새의 머리가 정말 둔할 것일까. 정작 새들의 진화된 행동을 알고 보면 폄하의 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전자는 새[鳥]의 머리를 의미하는 조두이며 후자의 쇠[鐵]로 만든 머리인 철두(鐵頭)를 빗댄 말임을 알 수 있다. ‘이랴 쯔쯔, 아이구 이놈의 쇠대가리…’

둘째, 학(鶴)과 학(?)

우리나라 민요에 ‘춤 잘 추는 학두루미’라는 말이 있다. 소매가 길면 춤추기 좋다는 장삼선무(長衫善舞)와 일맥상통하는 표현이다. 학은 날개를 펴면 3m정도 된다. 춤으로 표현하면 너울너울 시원하게 보이는 사내의 춤이다. 우리나라에 궁중학무, 민속학춤, 사찰학춤작법 등 특히 학춤문화가 발달한 이유이기도 하다.

학은 세계적으로 15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관찰되는 것은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3종이며 간혹 시베리아흰두루미가 길 잃은 새[迷鳥]로 관찰된다.

더운 여름에 어쩌다 다가앉으려고 하면 손사래를 치며 ‘염소같이 붙지 말고 좀 떨어져 앉아라’ 한다. 그렇다. 염소는 추운 겨울에는 각각 멀리 떨어져 쉬고 불볕더위라도 여름이면 갯바위에 담치 붙듯 따닥따닥 붙어있다. 무논에 찰거머리처럼 바짝 붙어있을 때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좀 떨어져라. 더워서 학 떼겠다’. ‘학을 뗀다’라는 말은 두루미인 학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이때의 학은 학질모기가 옮기는 전염병으로 말라리아(Malaria) 즉 학질(?疾)을 말한다. ‘학을 뗀다’고 할 때는 학질을 물리친다는 의미이다.

셋째, 지전(紙錢)과 지전(紙奠)

지전(紙錢)은 종이돈을 말한다. 무당의 굿이나 사찰의 재에는 실제적 돈이 아닌 가짜 종이돈을 사용하는데 이를 지전이라 한다. 황금색의 금전과 은색의 은전을 각각 걸어둔다. 상거래에서는 돈은 수단으로 활용되며 창호지인 종이를 재료로 하기 때문에 지전(紙錢)이라 부른다.

지전(紙奠)은 ‘혼령’을 의미한다. 정확한 본관이나 이름이 불분명할 때 상징적으로 사용되는 망자의 혼을 의미한다.

굿당에서 ‘전 오려라’, ‘전은 반드시 3개를 만든다’ 등의 대화나 지시에서 알 수 있으며 재에서 괘전(掛奠), 괘전대(掛奠臺), 전시식(奠施食)이라는 용어에서 알 수 있다.

지전은 사람모양을 오려서 만드는데 경우에 따라 눈, 코, 입이 있거나 없기도 한다. 굿에서는 제상 머리맡에 붙여두거나 걸며 사찰의 재 의식에서는 영단(靈壇)의 괘전대에 걸어 모신다. 우리는 조화(弔花)에 근조(謹弔)를 쓰지만 중국은 전(奠)을 쓴다. 종이돈을 의미할 때는 지전(紙錢)이며 종이로 오려붙인 죽은 사람을 상징하는 혼령은 지전(紙奠)이라 해야 옳다. 혼돈하지 말아야겠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전춤’은 그 전거와 의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채 그저 계면조에 맞추어 흐느끼듯 추는 행위의 답습은 식자들의 입가에 씁쓰레한 미소를 번지게 하는 빌미만 될 뿐이다.

넷째, 영산전(靈山殿)과 영산재(靈山齋)

영산전의 영산은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의 어떤 산의 정상에서 법화경을 설했을 때의 일과 연관이 있다. 그 산의 모양이 마치 독수리가 두 날개를 활짝 편 것과 같다고 하여 붙여진 한자식 이름이 영취산(靈鷲山)이다. 여기서 ‘취(鷲)’자 한 자를 빼어버리면 영산이 된다. 이를 다른 표현으로 영산회상(靈山會上) 혹은 영산회상(靈山會相)이라 부른다. 글자는 달라도 의미는 같다. 법화경을 설하는 여덟 장면으로 묘사한 것을 ‘팔상’이라 부르는데 영산전의 다른 이름이다. ‘전(殿)’은 ‘각(閣)’보다 큰 집을 의미한다. 팔상은 팔상(八相) 혹은 팔상(捌相)으로 같이 쓴다. ‘팔(八)’과 ‘팔(捌)’도 같은 여덟이라는 의미이다.

영산재에서 ‘재(齋)’자를 빼어버리면 영산이 된다. 영산은 죽은 사람을 지칭한다. 혹자는 법화경을 설한 영산회상을 의식으로 표현한 것을 영산재라 말하기도 하지만 학문적으로 설득력이 없으며 구전으로 답습되는 현상일 뿐이다. 법화경과 죽은 사람의 의식과는 관계가 없다.

영산회상과 영산재는 같은 영산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의미는 각각 독자적이다. 결국 영산재는 죽은 사람을 위해 재를 지내는 의식을 말한다. 법화경을 배경으로 호가호위(狐假虎威)할 필요가 없다.

이상 나열한 4가지의 사례는 모두 한자든 한글이든 같은 글자이지만 의미는 다르다. 이를 동자이의(同字異義)라 말한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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