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솔기념관 관리, 한계에 왔나
외솔기념관 관리, 한계에 왔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30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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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은 울산서는 처음 열린 ‘2015 국어책임관·국어문화원 공동연수회’의 마지막 날이었다. 현대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은 전국 참가자의 삼분의 일, 40여명은 이날 오후 ‘외솔기념관 현장학습’의 기대에 부풀어 울산시가 주선해준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중구 병영길 12-15’의 1층 전시실, 외솔 최현배 선생의 밀랍인형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수도권의 한 여성 참가자가 일행에게 의미 있는 말 한마디를 건넸다. “외솔 선생은 온 나라의 어른이시죠.” ‘온 나라의 어른’이란 표현은 이들이 기념관을 떠난 뒤에 더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울산시 관광지도와 함께 ‘문화가 숨쉬는 울산 중구’의 ‘2015 주요업무계획’이 쥐어져 있었다. 아 참, 그걸 모르고 있었군. 기념관의 ‘관리’ 주체가 울산시가 아니라 중구라는 사실을.

뜻밖의 발견이었지만, 전국에서 온 국어책임관, 국어문화원 관계자들의 방문을 전후해 외솔기념관과 외솔생가 주변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꼬리를 물고 있었다. 방문손님들이 도착하기 직전 에어컨 바람 하나 시원한 2층 ‘다목적강당’ 입구통로에서는 나이 든 노인 몇 분이 의자에 걸터앉거나 드러누운 채 편안한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기념관 한 모퉁이가 노인들의 ‘쉼터’로 둔갑한 지 꽤 오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표정들은 하나같이 태연해 보였다. 누구 하나 거들떠보거나 간섭하는 이가 없었던 탓일까.

기념관의 한 관계자는 이분들을 ‘병영성 공사 인부들’일 거라 지래짐작했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말쑥한 제복 차림은 매일 오전과 오후 2교대로 청소 일에 나선다는 ‘희망근로’ 노인들일 거라는 짐작을 갖게 했다.

방문손님들이 막 도착한 시각, 외솔생가 옆마당에서는 중구청에서 ‘관장’으로 불러준다는 50대의 K여사가 비닐봉지에 무언가를 열심히 주워 담는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K여사라’면 중구청에서 2년 임기로 고용한 이른바 ‘기간제 근로자’다.

K여사가 허겁지겁 주워 담은 것은 수십 개비는 좋이 됨직한 담배꽁초였다. ‘희망근로’ 노인들이 서둘러 했어야 할 청소 일을, 그분들이 쉬는 사이에 K여사가 대신 감당하고 만 것이었다. 알고 보니, 외솔 생가 앞마당과 옆마당은 매일 밤 열대야를 피해서 나온 동네 주민들의 ’피서 쉼터‘로 변했고, 다음날 아침이면 으레 술병과 음료수병, 담배꽁초가 발길에 채이기 일쑤라는 것이었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학예사를 포함한 중구청 관계자들이 이런저런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한심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1층 체험관의 ‘OX문제 풀이’ 코너 즉 ‘터치스크린’ 방식의 한글놀이 공간이 고장 1년 반이 더 넘도록 전혀 고쳐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끊임없는 ‘고장 수리’ 건의를 중구청에서 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는지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흉물스러운 것은 또 더 있었다. 외솔생가 뒤뜰 ‘외솔내외무덤비’ 바로 옆 ‘창고’ 구실을 하는 화장실 공간이다. 작업복, 청소도구, 천막덮개로 어수선하기 짝이 없지만 가림 막 하나 없어 수년째 생가 분위기를 망쳐 놓고 있다. 기념관 2층과 1층 사이 계단에서 바로 보이는 건물 어귀의 무질서한 청소도구들도 이맛살을 찌푸리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시 그 말이 떠오른다. “외솔 선생님은 온 나라의 어른이시죠.” 바른 말씀이다. 외솔 선생은 울산만의 어른이 아니라 이 나라의 어른, 이 겨레의 스승이 아니시던가.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관리의 모양새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옳다. 외솔기념관을 ‘문화가 숨쉬는 종갓집 중구’의 거점으로 활용하고 싶다면 중구청은 당장 ‘리모컨 관리‘가 아닌 ‘현장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 영 자신이 없다면, 관리권한을 울산시로 넘기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김정주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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