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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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27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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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 속에서 중년은 오랜 기간 동안 무시되었다고 한다. 탄생, 젊음, 노년, 죽음은 나름대로 대우를 받아왔지만 중년은 무시되었을 뿐 별개의 실체로 여겨지지도 않았다. 삶이 가혹하기도 하고 짧았으므로 중간에 할당할 여유가 없었기에 무시된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었다.

그리스인의 평균 기대수명이 서른 살이었는데 지금으로 치면 중년 나이가 되기도 전에 대부분 삶을 마감했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시대에는 50세까지 사는 사람도 많지 않았기에 50세가 되면 배심원이 될 수 있었고 노년의 원숙함을 인정받았다. 우리에겐 우리의 모습이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여 ‘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니냐’ 하는 편향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십상이기 때문에 타인의 시선으로 한 번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에서 10년을 보낸 프랑스 CEO가 자신의 경험을 담아 최근에 펴낸 <한국인은 미쳤다>라는 책에는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루 10~14시간 근무, 회사에 대한 맹목적인 헌신, 상부의 냉혹한 감시, 군사적이고 위계적인 서열문화, 온종일 컴퓨터와 전화기 앞에 매달린 직원들, 냉정하고 가차 없는 평가와 징계, 종교집회 같은 기업연수……. 다 인정할 수는 없어도 인간성을 도외시한 채 지나친 성과주의와 효율성에 빠진 한국기업의 문화가 프랑스인의 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한국인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저자에 따르면, 한국인들은 개인의 존재이유가 ‘회사’와 ‘일’에 있다. 남편이 회사에 모든 관심과 시간을 쏟는 동안 가정을 꾸려나가는 것은 오로지 부인의 몫이었다. 많은 아버지들은 가정에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진 빠지는 소모적인 일로 여기며, 사무실을 오히려 평안한 휴식처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조직 내에서 자아를 발견하고, 조직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여기에는 대량해고의 불안감이 늘 기다리고 있는 것에도 원인이 있다.

언제나 시간이 모자라는 ‘시간 기근’ 현상은 언제 어디서나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전화통화를 하면서도 ‘전화통화가 가능한 상태냐’를 먼저 묻는다. 또 ‘요즘도 많이 바쁘시죠?’라고 물어야 ‘상대방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여긴다. 이것이 바로 ‘집단 일 중독’이다.

일 중독은 사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이 그 바탕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자신의 관심사가 고정되고 집중되면 타인의 관심사와 그 밖의 다른 문제에 대해 둔감하게 되고 고립된다. 시간도 없지만 자신의 생계와 별 관계없는 사람들과 만나는 것은 이익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더더욱 고립된다.

TED 강연에서 <요한 하리>가 한 강의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심리학자가 쥐 실험을 통해서 우리에 쥐 한 마리를 넣고 물병 두 개, 즉 일반 물과 헤로인이 든 물을 주면 쥐들 대부분은 헤로인이 든 물을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천국 같은 놀이공간, 충분한 치즈, 많은 친구를 넣어주어 쥐들끼리 활발히 교류하고 즐거운 일들이 많은 집단에서는 일반 물과 헤로인이 든 물을 주어도 헤로인 물을 먹지 않은 비율이 높았다고 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군의 20%는 마약을 복용하고 있었는데 전쟁이 끝났을 때 어찌될까 무척이나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 중 95%는 마약을 그냥 끊었다.

삶의 무게에 억눌려 있을 때 사람과의 관계가 어려울 때, 안도감을 찾기 위해 어떤 것을 갈구하게 된다. 도박, 성인물, 코카인, 대마초, 게임 등 그게 우리 본능이 가진 DNA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비율이 높은 알코올 중독, 일 중독도 바로 이런 것의 일종이다.

2000년도의 포르투갈도 국민 1%가 헤로인 중독자인 유럽 최대의 마약문제 국가였다. 그들도 처음에는 미국식으로 처벌하고, 징계했으나 매년 문제는 악화되기만 했다.

정부는 근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고, 대마초에서 마약까지 모든 마약을 합법화하고 중독자를 사회와 격리시키기 위해 쓴 모든 예산을 사회와 재결합시키는 데 사용했다. 취업 알선과 소규모 창업을 위한 대출사업을 통해 일을 만들어 주었더니 15년이 지난 지금은 마약 사용이 현저히 줄었다고 한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관계를 더 트고 다른 생각을 서로 교류하는 것이다. 중독의 반대는 ‘활발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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