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탈(逸脫)-칠월칠석
일탈(逸脫)-칠월칠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2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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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日常)의 반대개념인 일탈(逸脫)은 일정하게 정해진 영역 또는 본래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나는 것을 말한다. 오뉴월 복더위가 한 풀 꺾이는 음력 7월은 두 번의 민속적 일탈이 있다. 하나는 청춘남녀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일탈 칠월칠석이요, 다른 하나는 일꾼의 상징 머슴의 릴렉스(relax) 일탈 백중이다.

칠월칠석은 삼월삼질, 구월구일같이 같은 수가 겹치는 좋은 날로 인식한다. 좋은 날 청춘남여의 풋풋한 사랑 이야기가 전한다. 견우(牽牛)와 직녀(織女)가 의미하는 ‘소 치는 목동’과 ‘베 짜는 아가씨’ 이야기다. 이날은 견우와 직녀가 은하수 한가운데에서 세상이 다 알게 공개적으로 만나는 날이다. 베틀을 마주하고 베를 짜는 직녀가 집안에서 생활하는 내유(內柔)의 상징이라면 초원에서 소를 치는 목동 견우는 집밖에서 활동하는 외강(外强)의 상징으로 볼 수 있다.

일년에 한번밖에 못 만나는 청춘남녀의 사랑은 평탄치 않고 험하다. 은하수라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물을 건너야 하기 때문이다. 험한 은하수의 물길을 선조들은 지혜롭게 해결했다. 생활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텃새 까막까치(까마귀와 까치, 烏鵲)를 내세워 도강(渡江)의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견우와 직녀를 만나게 해주는 오작교(烏鵲橋)는 단순히 까막까치가 무리지어 놓은 다리는 아닐 것이다. 청춘남녀가 만나 즐거움을 나누는 다리는, 재미삼아 하는 말장난(語戱)일지라도, 분명 묘무성(猫撫聲)이 곁들여진 오작교(娛作橋) 혹은 오작교(娛作? )일 것이다. 오작교의 어희적 접근과 재해석이 사뭇 흥미롭지 않은가.

칠석의 의미는 겉과 속이 다르다. 겉으로는 청춘남녀의 만남으로 나타나지만 안으로는 농경사회의 중요한 재화인 소치기와 베짜기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견우는 곧 소(牛)다. 농경사회에서 소의 역할은 노동력, 퇴비생산, 고기, 환금성(換金性) 등 다양한 가치를 지녔기에 가가호호 집집마다 길렀고, 도둑도 ‘절도대상 영순위’로 여겼다. 소는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이 말해주듯 소도둑은 도둑 중에서도 매우 큰 도둑임을 알 수 있다. ‘소도둑같이 생긴 놈’ 혹은 ‘소도둑 같은 놈’이라고 상대방을 욕하는 속담이 있다. ‘소도둑은 호랑이도 겁낸다’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는지 모른다.

소도둑은 어떻게 생겼을까. 옛 사람들은 소도둑이 이마에 뿔이 돋고 코가 없고 다리를 절룩거린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옛날에는 소도둑을 잡으면 피해를 본 동네에서 이마에 먹물을 들이는 자형(刺刑), 코를 베어버리는 의형(?刑), 발꿈치를 베어버리는 월형(?刑) 등 동리형(洞里刑)을 가할 수 있는 관습법이 있었다고 한다. 소도둑에 대한 형벌이 보통도둑보다 심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직녀는 곧 의복이다. 직조(織造)라 부르는 길쌈[積麻]은 신라 유리이사금 재위(284∼298) 때 ‘가배(嘉俳)’에서 전거(典據)된다. 또한 우리나라 여인의 직조 기술은 신라시대의 용견(龍絹), 조로주(朝露紬), 어아주(魚牙紬)에서 확인된다. 칠석날 밤에 행하던 걸교제(乞巧祭) 또한 직녀들의 행사였다.

‘주야장천 베만 짜면 어느 시절에 시집을 가나’, ‘낮에 짜면 일광단이요 밤에 짜면 월광단이라, 일광단 월광단 다 짜가지고 어느 댁 시부모 뒤 걷어 보나’라는 ‘베틀가’ 내용에서 과년한 처녀의 나이는 숙련된 길쌈 솜씨와 정비례했음을 알 수 있다. 요즘도 젊은 여성이 예쁘게 보이는 것 중 하나는 이동식 베틀로 뜨개질하는 모습일 것이다.

소는 농본(農本)사회에서 남성이며 힘이며 부의 상징이다. 베 짜기는 여성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일이다. 씨름과 그네가 과거 남녀 중심운동의 두 기둥이라면 소치기와 베짜기는 의(衣)·식(食) 해결의 버팀목이었다.

농경사회의 또 다른 민속절의 하나는 7월 15일 백중이다. 백중은 백중(伯仲), 백종(白踵) 등 별리(別異)의 명칭이 있으나 한마디로 일꾼을 하루 쉬게 한 ‘머슴의 날’이었다. 백중날에 행해지는 다양하고 풍부한 일탈의 놀이를 옛 사람들은 ‘백중놀이’라 불렀다.

백중을 지나면 논농사는 이전보다 훨씬 수월해진다. 허리를 굽혀 잡초와 피를 제거하는 필요성이 줄어 일손이 한결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앞으로 물 관리만 잘하면 한 달 뒤 추석에는 수확물로 조상께 제사를 지낼 수 있다. 백중날에는 일 잘하기로 소문난 머슴을 뽑아 삿갓을 거꾸로 씌우고 소를 타고 동네를 한 바퀴 돌게 하는 풍습이 있었다. 이때 소를 탄 머슴을 최고의 일꾼이라는 뜻에서 ‘장원(壯元)’이라고 불렀다. ‘장원’은 여성들이 그네뛰기에서 받았던 ‘장사(壯士)’, ‘장녀(壯女)’라는 명칭과 유사하다.

칠월칠석날 견우와 직녀의 미팅, 백중날 일꾼의 릴렉스는 농경사회에서 생성된 스토리텔링이자 문화 콘텐츠(contents)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칠월칠석의 현대적 의미는 문화 창조와 융성의 차원에서 재해석할 수가 있다. 초점을 단순한 남녀의 만남에서 벗어나 ‘결혼하는 날’, ‘소고기 먹는 날’, ‘옷 사 입는 날’에 맞추어 활용한다면 지역경제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화이트데이’, ‘발렌타인데이’와 다를 게 무엇인가. 문화는 시의적 창조가 생명이기 때문이다.

칠석 지난 까막까치는 머리털 빠진 흔적이 없고, 처서 지난 백중은 남은 더위는 있으되 입 비뚤어진 모기마냥 있으나마나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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