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는 헤엄칠 수 없잖아요”
“바위는 헤엄칠 수 없잖아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23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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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양읍 대곡마을을 수년 만에 다시 찾았다. 처서를 하루 앞둔 22일 오후, 만원이 넘는 택시비를 내고 대곡마을 반구대를 찾은 것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전화로만 의견을 주고받던 이상목 암각화박물관장을 직접 만나보기 위해서였다.

경북대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이상목 관장은 비교적 좁은 관장실에서 ‘전시회 도록(圖錄)’ 편집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준비 중인 것은 가칭 ‘포르투갈 코아 계곡의 암각화’라는 특별기획전. 9월 9일 개막전을 갖는다니 남은 날짜가 겨우 보름 남짓. 한눈 팔 겨를이 없다.

코아(Coa) 계곡이 있는 ‘포즈코아(Vila Nova de Foz Coa)’ 시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자동차로 한나절을 꼬박 달려야 만날 수 있다는 포르투갈 북동부의 접경도시다. 이 도시가 세계의 주목을 받은 것은 순전히 바위그림(암각화) 덕분이었다.

1994년 겨울, 전례 없는 가뭄으로 도루(Douro) 강 지류인 코아(Coa) 강 계곡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말과 들소와 같은 동물들이 새겨진 암각화가 무더기로 발견된다. 코아 계곡의 암각화는 대부분 코아 강을 따라 20여㎞나 이어져 있다. 이곳의 암각화는 기원전 2만5천년~1만2천년 전(그라베티앙기~막달레니앙기) 구석기시대의 것이 주류를 이룬다고 한다.

이 무렵 포르투갈 정부는 국토를 가로지르는 도루 강과 코아 강이 만나는 두물머리(合水域)에 대규모 다목적댐을 건설키로 하고 이 대역사에 국운(國運)을 걸고 있었다. ‘코아 댐’은 전력 생산과 농업용수 공급을 책임지는 ‘경제발전의 엔진’과도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상목 관장은 댐 건설에 투입된 자금이 지금 우리 돈으로 5천억 원에 가깝다고 귀띔한다.

그러나 코아 댐 건설 사업은 발굴조사 과정에 고고학적 가치가 엄청난 암각화 유적이 무더기로 발견되면서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된다. 포르투갈 문화재연구소(IPP)가 전력공사(EDP)에다 코아 댐 공사의 중단을 요청한 것이다. 이때부터 암각화 보존 문제를 둘러싸고 힘겨운 줄다리기가 1년이나 계속된다. 이 지역 초·중학교 학생과 교사들까지 가세한 ‘건설 중단’의 목소리는 전국으로, 전세계로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이때 심금을 울린 목소리가 바로 “바위는 헤엄칠 수 없다”는 초등학생들의 눈물 어린 호소였다. 선사시대 인류 문화유산이 댐 건설로 수장(水葬)되는 것을 한사코 막아 달라는 동심의 절규였던 것이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마침내 ‘문화 승리’의 팡파르로 이어진다. 1995년 11월 신임 국무총리는 코아 댐 공사의 즉시 중단과 그 일대의 유적공원 조성 사업을 대국민 담화로 발표한다. 자신의 선거공약을 그대로 지킨 것이었다. 1998년, 코아 계곡의 암각화는 수천 년 내려온 코아 계곡의 포도밭 지대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다. 다시 2010년 7월, 코아 언덕에서는 암각화를 주제로 한 국립 코아 박물관이 드디어 문을 연다. 세계 유수의 언론매체들은 수몰 위기에 놓인 코아 암각화에 대한 포르투갈 국민들의 보존 노력과 정부의 결정에 대해 ‘전세계를 감동시킨 기적’이라고 보도한다. 코아 계곡은 이제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포르투갈 국가발전의 새로운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르투갈의 코아는 우리 울산과 ‘처음’의 인연이 깊다. 코아 박물관이 문을 열던 바로 그 시점 포즈코아 시 관계자는 그곳을 찾은 울산신문의 강정원-김정규 기자더러 ‘한국에서 처음 찾은 취재진’이라고 밝혔다. 이 관장과 친분이 두터 안토니오 마르티노 밥티스타 코아 박물관장은 최근 “해외에서 암각화를 소개하는 것은 울산 암각화박물관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이상목 관장은 “9월 9일 특별기획전을 앞두고 코아 박물관과 우리 암각화박물관이 코아 암각화 5점을 ‘3D 프린팅’ 방식으로 복제하는 것은 두 나라 박물관학계에서는 처음으로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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