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담(閑談)- 요두출수(搖頭出手)를 어이하리오!
한담(閑談)- 요두출수(搖頭出手)를 어이하리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1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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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적으로 어릴 때 술을 접하게 되는 경우는 세시풍속에서의 ‘귀밝이술’ 혹은 제사를 마친 후의 ‘음복’이 처음이다. 그 후로는 관례(冠禮)나 계례(?禮)에서 공식 인정을 받는다. 술이라면 누구 할 것 없이 인심이 넉넉하다. ‘반잔 술에 눈물 나고 한잔 술에 웃음 난다’라는 속담도 있지 않은가.

술이라는 것이 유혹성과 중독성이 강한 것이라 아예 분위기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함께한 술자리에서 안주만 먹겠다는 고집은 막상 자리에 눌러앉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옆에서 입잔은 해야지 하고 부추기면 놀란 듯이 손사래를 치지만 자꾸 권하는 인정에야 어쩔 수 없이 ‘딱 한잔만’을 강조하면서 받게 된다. 그러나 그 한잔은 결코 한잔으로 멈추지 않는다. 알코올의 묘한 미각이 혀끝에서 채 느껴지기도 전에 목젖은 식도 핑계를 대면서 마시기를 애원한다. 미끄러지듯 내려오는 알코올의 그 짜릿함에 식도는 ‘카∼아’ 탄성을 지른다. 술이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술술 잘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설, ‘유시(酉時)에 먹어서’라는 설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사람은 술의 유혹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한다. 때마침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도 되어 핑계로 ‘에라, 오늘 한번 깨져나 볼까’로 분위기가 급반전되면 며칠은 속쓰림을 각오해야 한다.

‘한잔 한잔 또 한잔(一杯一杯復一杯)’을 거치다 보면 ‘무정한 세월 가는 것이 마치 흐르는 물 같다’는 ‘무정세월약류파(無情歲月若流波)’로 발전된다. 이어 ‘노세 노세 젊어서 놀아, 늙어지면 못 노나니,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月滿則虧)’라는 흥겨운 노랫가락을 거칠 때쯤이면 누군가가 말려야만 한다. 때를 놓쳐 ‘죽어서 상다리 부러지듯 차려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나. 그저 살아생전에 한잔 술이 최고지(死後萬飯珍羞不如生前一杯酒)’로 발전하면 대책이 없다. 끝으로 ‘이산 저산’ 사철가까지로 확장되면 다음날 아침에는 틀림없이 죽을 지경의 고통이 기다릴 것이다.

술은 ‘외상’이 적이다. 외상은 소도 잡는다는 말이 있듯이 외상 인심이 특히 후한 것은 자고로 술이었다. 술값 갚으러 갔다가 오히려 더 많은 술값을 치부책에 적어 놓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겠는가. 술집 주인의 지능적인 경영 전략에서 빠져나오기란 ‘여우가 살구씨 기름 맛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다.

한두 잔의 반주나 축하주이면 약주라 하겠지만 ‘일생을 보내는 데는 오직 술뿐이다(斷送一生惟有酒)’ 정도가 되고 보면 주사(酒肆)로 패가망신하기 딱 알맞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가 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이겠지만 실은 드문 일이고, 대부분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면서 시 한 수는커녕 지나쳐서 구토물과 고성과 방뇨를 생산해 놓고 마지막엔 필름이 끊어지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 다반사이다.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 ‘시장에서의 술주정’, ‘거리에서의 술주정’을 단속해야 한다고 했다. 술은 때와 장소를 가려서 마실 때 운치가 있고, 분위기에 따라 의미를 달리한다. 화촉동방의 합환주(合歡酒)가 있는가 하면, 백년을 장수한다는 백세주도 있다. 식사 때 곁들여 마시는 반주(飯酒)가 있는가 하면 어른이 자시는 약주(藥酒)와 결자해지하겠다는 화해주(和解酒)도 있다.

‘남의 술에 삼십 리 간다’, ‘얼굴이 말고기 자반 같다’, ‘술에 장사 없다’, ‘말을 타고 가는 궁인도 술주정꾼은 피한다(騎馬宮人避醉漢)’, ‘술 샘 나는 주전자’, ‘지고는 못가도 먹고는 간다’, 청탁불문(淸濁不問), 두주불사(斗酒不辭), 후래삼배(後來三杯), 반취반성(半醉半醒)과 같은 말은 모두 술과 관련이 있는 말들이다.

때를 모르고 먹는 술에 대한 경고는 섬뜩한 느낌이 든다. ‘낮에 먹는 술은 부모도 모른다’는 속담이 그러한 경고다. 주자는 일찍이 취중의 망언을 후회했다(醉中妄言醒後悔). 해동 사문 목우자도 ‘계초심학인문(誡初心學人文)’에서 ‘때도 아닌데 술과 음식 먹는 것(非時酒食)’을 경계했다. 불교 수행자는 재색지화가 독사보다 더하다 했지만 그 다음으로 술의 화도 이에 못지않다고 경계한다. 비록 ‘곡차(穀茶)’라 하지만 ‘중 술 취한 것’이라는 속담에서 보듯이 수행자에게 술은 마땅히 경계의 음식이다.

‘채근담’에서는 꽃은 반만 피는 것이 좋고, 술도 반만 취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안자(晏子)’는 술이 머리에 미치기 이전까지만 마셔라 했다. 머리에 미치면 자신도 모르게 허세가 밀려 나오기 때문이다.

주색우학(酒色友學)이란 말도 있다. 인생 사는 데 술 마시는 법이 제일 어렵고, 다음이 색을 접하는 것이며, 그 다음이 친구를 사귐이고, 제일 쉬운 것이 학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턱대고 마실 수도 없고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이 어렵고 중요한 주법(酒法)을 제대로 가르쳐주는 스승도 가르쳐주는 곳도 없으니 한번쯤 음미하며 마시는 것도 밑지는 장사는 아닐 성싶다. 외모는 거울로 보고 마음은 술로 본다 하지 않았던가.

‘요두출수(搖頭出手)’. 머리를 흔들면서 손을 내민다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왼손은 사양하면서 오른손은 내미는 ‘좌회우출(左回右出)’이라는 말도 있다. 둘 다 술을 사양하면서도 끌리는 행동을 표현한 사자성어다. 권하는 술을 ‘어허 이거 과한데’ 하며 머리를 흔들거나 손사래를 치면서 사양하면서도 ‘잔은 차야지’하며 술 받을 손을 어느새 내밀어 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표현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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