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단상]한여름 텃밭의 가르침
[교육단상]한여름 텃밭의 가르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1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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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유례가 없는 폭염으로 모두가 지치고 힘들었던 혹서(酷暑)의 계절이 서서히 지나가고 있습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중에 텃밭에 올라가서 오이며 가지, 고추와 토마토를 수확하고 폭염으로 며칠을 건너뛰고 꽤 오랜만에 올라갔더니 텃밭의 작물들이 얼마나 목이 타고 힘들었는지 몰골이 말이 아닙니다. 어느새 잡풀들도 길게 자라 밭고랑을 덮고 있고, 색색으로 피어있던 봉선화는 잎이 오그라든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오이 잎도 쇳소리가 날 것처럼 바짝 말라 있고 몇몇 고추나무는 잎사귀와 열매가 부황 든 것처럼 누렇게 말라가고 있습니다. 가지란 놈은 물이 부족하여 열매가 아예 시들어 쭈글쭈글한 모양새를 하고 있고 싱싱하게 잘 자라던 여름상추도 힘없이 어깨가 축 처져 있습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물을 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햇살이 누그러지는 해거름까지 기다렸다 텃밭으로 올라갑니다. 며칠 동안을 돌보지 못한 미안한 마음에 고랑에 쭈그리고 앉아 풀포기도 뽑고 작물 한 포기 한 포기마다 물줄기를 갖다 대고 듬뿍 뿌려봅니다.

올봄 첫 삽을 뜨고 나서 한 달여 동안 공(功)을 들였더니 그 후 참으로 많은 수확을 주어 모두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볕이 따갑긴 해도 조금의 땀과 수고로움을 들이면 늘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었습니다.

땅과 자연의 당연한 이치이겠지만 늘 생각하게 되는 것은 텃밭은 노력에 비해 너무 많은 것을 돌려준다는 사실입니다. 땀이 흐르고 눈이 따갑고 살갗이 그을려도 수확해서 나누는 기쁨은 몇 배로 더 큰 보상입니다. 그런데 볕이 좀 따갑다고 며칠을 그냥 내버려두었으니 정말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이럴 때마다 농작물은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던 옛날 어른들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은 농사일의 요체(要諦)는 바로 작물들이 잘 자라게 하는 주인의 한결 같은 정성과 관심이라는 겁니다.

퇴비를 뿌리고 깊이 갈아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 잡초를 뽑아주고, 병충해를 막아 주는 일, 가뭄에 타지 않도록 하는 적절한 물주기, 비바람을 막기 위한 배수로 만들기와 대를 세우고 줄기를 매어주는 일 등등이 모두 주인의 부지런함이요, 관심과 정성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농사일이란 게 무관심하게 버려둬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욕심을 부려서도 안 되는 일이잖습니까.

물을 지나치게 많이 줘도 안 되고 비료를 많이 준다고 잘 자라는 게 아닙니다. 시기가 적절해야 하고 양도 적절해야 합니다. 과도한 물 주기나 웃거름 주기는 오히려 뿌리를 썩게 하거나 영양 과잉으로 고사하게 만듭니다.

그런 연유(緣由)로 예로부터 자식 기르는 일을 이 농사일에 빗대어 ‘자식농사’라 하였습니다. 자식 키우는 일이 농사일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태어나 어릴 적 귀여운 짓으로 얼마나 즐겁게 하고 기쁘게 해 주었던 자식입니까? 바라보는 것만으로 미소 짓게 하던 아이들이 아니었던가요? 흔히들 자식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은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합니다.

자식 농사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부모의 관심과 정성과 사랑임은 당연한 것이지요. 퇴비를 주고 땅을 비옥하게 하는 것처럼 스스로 자라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을 조성하고, 사랑을 베풀고 물을 주는 일처럼 아이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도록 격려하고, 벌레를 잡고 잡초를 뽑아내는 일과 같이 심신이 건강할 수 있도록 관심과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자식농사 또한 무관심하게 방치해서도 안 될 일이지만 지나친 욕심은 금물입니다. 자식의 마음을 멍들게 하고 시들어 죽게 하는 것입니다. 관심과 정성을 다하되 때로는 지켜보면서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삼천지교(三遷之敎)의 맹모(孟母)의 심정이 그러했을 것이고, 한호(석봉) 선생의 어머님의 마음도 또한 그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서울 강남 대치동 맹모(?)들의 마음은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자식 기르는 일이 농사가 아니라 공장에서 물건 만드는 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닌지 염려됩니다.

아이를 내 생각대로 키워야 한다며 아이의 스케줄을 철저하게 엄마가 관리하고 아이는 엄마의 의도에 따라 로봇처럼 공부만 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모든 공부와 스펙도 일류대학 진학을 위해 만들어간다는 말도 들립니다. 물론 아이의 장래를 위한 것이라 하겠지만 과연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의 현재나 미래의 삶을 행복하게 하거나 아이로 하여금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바람직한 인재로 자라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필자에게도 자식 키우는 일을 농사임을 알지 못하였던 지난날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이 남아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때는 아이를 위한답시고 한 일들이 그것이 진정 아이를 위한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얻어진 거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내 욕심을 위해 아이를 불편하게 하거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하는 미안한 마음에 지금에 와서 자책하게 됩니다.

오늘도 텃밭에 가면 한여름을 견뎌내고 있는 작물들이 말하는 듯합니다. “욕심을 버리세요. 허리를 굽히고 몸을 낮추세요. 그래야 잡초도 뽑을 수 있고, 상추 잎도 딸 수가 있고, 무성한 가지와 잎사귀 속에 숨은 토마토와 가지나 고추도 보인답니다.”

<김홍길 신언중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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