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수박
어머니와 수박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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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야, 수박 맛있나?

웅~~웅!!!

아직 말도 못하는 애가 수박만 주면 작은 입으로 오물거리며 아기작아기작 씹는다.

그럴 때마다 침과 수박물이 뚝뚝 떨어지는데도, 뭐가 그리 맛있는지 계속 오물거린다.

이제 갓 돌이 지난 애가 무슨 수박을 저렇게 좋아하누!

하긴 어머니 말씀을 들어보면 나도 어릴 때, 무지 수박을 좋아했나 보다.

정말 수박을 못 먹어서 억울한 일이라도 있는 듯 수박을 보기만 하면 환장하듯이 좋아라 했다고 하셨다.

어머니가 나를 낳으시기 직전인 1971년 여름, 그 해도 올해 여름처럼 정말 말도 못할 정도로 더웠다고 했다.

에어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풍기를 살 형편도 안 되어서 그냥 신혼 사글세방에 있다가 두 돌 된 누나를 업고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그늘을 찾아다니는 정도였다.

그런데 그 뜨겁던 어느 날, 어머니는 왜 그렇게 수박이 먹고 싶으셨던지, 정말 그날은 수박을 입에 대지 않고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으셨다.

박봉의 공무원 남편을 둔 탓에 가뜩이나 쪼들린 살림살이인지라 수박 한 통이면 반찬값이 휑하니 날아가는데…. 하지만, 그래도 그날만큼은 정말 수박이 먹고 싶으셨다고 했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 수박 하나 아낀다고 어디 살림살이가 나아지기라도 하랴 싶어, 동네 어귀 가게에서 큼지막한 수박 하나를 사셨다.

두드리면 퉁퉁하는 달달하고 물이 꽉~ 찬 수박을 노끈 같은 나일론 줄에 매달고 돌아오면서 어서 수박을 빨간 다라이 속 찬물에 담갔다가 시원해지면 쪼개어 입에 넣고 싶다는 생각만 하셨다.

반에 반만 먹고, 저녁에 아버지가 오면 같이 먹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으셨다. 이미 수박을 먹은 듯, 입안에는 그득 침도 고였고, 같이 수박을 먹고 싶은 듯, 뱃속의 나도 기운차게 발길질을 해댔다.

그런데, 걸어오면서 그 나일론 줄이 손가락 사이를 계속 파고드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손을 바꿔서 든다는 게 그만 수박을 놓치시고 말았다.

물을 그득 머금은 그 육중하게 큰 수박은 새마을운동의 상징인 신작로 시멘트 바닥에 떨어지면서 그만 박살이 나고 말았다.

뻘건 속을 드러낸 수박은 두 동강 세 동강이 나면서, 마치 사람 속을 뒤집어놓기라도 하는 듯 흙먼지 속을 마구 구르고 헤집고 다녔다.

조금만 더 가면 먹을 수 있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어머니는 그렇게 박살난 수박의 잔해를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는데, 갑자기 너무너무 서럽게 눈물이 났다고 하셨다.

그 뜨거운 여름, 작렬하는 햇살 아래 시멘트 바닥에 박살난 수박을 앞에 두고 배가 남산만큼 불러온 새댁이 서럽게 엉엉 우는 모습이란.

그리고 얼마 후 내가 태어났는데, 내가 이빨이 나자말자 수박만 보면 그렇게 좋아서 달려들었다고 하셨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어머니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고 하셨다. “그래 너도 그 때 그 수박이 어지간히 먹고 싶긴 했나 보네.”

그래서 그런지 어머니는 우리 삼남매가 어릴 때부터 과일값만은 안 아끼셨다.

심지어 40년 전 국제시장에서 500원이나 하는 바나나도 정말 ‘쪼매만’ 고민하시고 바로 사주기도 하셨다.

그 때 어찌나 좋았던지 입에 조금씩 조금씩 아껴먹던 그 바나나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까지 하다.

그런 세월이 미끄러지듯이 지나고 지나, 그 곱던 새댁의 우리 어머니는 어느새 쭈글쭈글 할머니가 되셨고, 그리고 나는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올해는 예년보다 더 더워서인지, 수박 맛이 더 달다.

내 품에서 아이가 갓 오른 이빨을 가지고 그 달디 단 수박을 아삭거리며 마치 갈듯이 씹어 먹는 모습을 보면, “그래 너도 수박이 먹고 싶은 거로구나”하며 그 모습이 하도 귀여워서 더 안아주곤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 뜨겁던 햇살 아래 깨어진 수박을 앞에 놓고 울던 새댁의 모습이 그냥 짠하게 겹쳐지는 것은 또 왜일까?

<강윤석 울산지방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 울산수필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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