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16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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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3남5녀 중 장남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지난 14일 오전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로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었다. 한때 삼성그룹 회장대행 역할을 맡기도 했던 그는 권력 운(運)이 다한 탓인지 ‘삼성家 비운의 황태자’라는 별명을 멍에처럼 지고 살았다.

고인의 개인적 흥망성쇠는 울산과도 인연이 깊다. 1966년에 일어난 사카린 밀수사건 탓이다. CBC뉴스는 지난 14일 “이맹희 별세 소식에 그의 운명을 가른 사카린 밀수사건이 재조명되고 있다. 이맹희 별세로 삼성과 끝내 인연을 다시 맺지 못하면서 단초가 됐던 사카린 밀수사건의 내막도 관심을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사카린 밀수사건’은 1966년 5월 24일로 거슬러 오른다. 삼성그룹이 계열사인 울산의 한국비료공업(일명 ‘한비’) 명의로 저질렀다가 의혹을 사기 시작한 시점이다. 당시 울산에서 공장을 짓고 있던 한비는 사카린 2천259포대(약 55t)를 ‘건설자재’라고 속이고 들여와 판매하려다 덜미를 잡힌다. 뒤늦게 이를 적발한 부산세관은 그 해 6월 1천59포대를 압수하고 벌금 2천여만 원을 부과한다. 삼성은 한비 공장을 짓기 위해 정부의 지급보증 아래 일본 ‘미쓰이社’로부터 상업차관 4천여만 달러를 들여오고, 미쓰이사는 그 대가(리베이트)로 100만 달러를 삼성 측에 건넸다. 결국 이 돈이 사카린 밀수자금으로 둔갑하고 마는 것이다.

이 사건이 만천하에 알려진 것은 당시 경향신문 주재기자였던 울산 출신 한종오 기자(전 한울신문 대표)의 특종보도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로언론인 최종두 시인은 ‘울주신문’ 기고(2013. 5)에서 한씨에 대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사카린 밀수사건을 파헤쳐 한국비료 공장을 국가에 헌납하게 만든 한종오 기자”라고 소개한다.

당시 경향신문 정치부장이었던 김경래 장로는 지난해 1월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이렇게 증언한다. “어느 날 부산 주재기자로부터 첩보가 올라왔다. 삼성 계열의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밀수하려다 벌금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국내 최대 재벌이 연관된 밀수사건을 소홀히 할 수는 없었다. 경제부 기자를 파견해 추가 취재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을 ‘정경유착으로 인한 재벌비호’로 규정하고 “삼성 이병철 회장은 이 사건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말한다. 최초의 폭로 기사는 1966년 9월 15일자 경향신문에 실린다. 이병철 당시 회장은 일주일 후인 9월 22일 기자회견에서 사과 성명과 함께 한국비료의 국가 헌납을 발표한다.

한편 사카린 밀수를 현장 지휘했다고 밝힌 이맹희씨는 1993년에 펴낸 ‘회상록-묻어둔 이야기’에서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은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이병철 회장의 공모 아래 정부기관들이 적극 감싸고돌았던 엄청난 규모의 조직적인 밀수였다”고 주장한다.

여하간 이 사건의 여파는 일파만파로 번진다. 한국비료의 사카린 밀수사건에 관한 대정부 질의가 진행 중이던 1966년 9월 2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질의에 나선 무소속 김두한 의원(김을동 국회의원의 부친)이 갑자기 국무위원과 장관들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오물(똥물)을 집어던진다. 그 유명한 ‘국회 오물투척사건’이다. 이후 그는 모진 고초를 겪어야 했고 의원직도 반납하고 만다. 안상수 현 창원시장은 서울대 법대 재학 중이던 1966년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 성토대회’에서 사회를 보다가 주모자로 낙인찍혀 유기정학을 받는다. 또 독립운동가인 장준하 선생은 그 해 사카린 밀수사건과 관련, 박정희 대통령을 ‘밀수왕초’라고 규탄하다가 투옥되기도 한다. 故 이맹희씨는 저승에서 어떤 회고록을 집필할 것인지….

<김정주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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