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노예’
‘99의 노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09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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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흥미로운 읽을거리 하나와 만났다. 우리의 사자성어 ‘안빈낙도(安貧樂道),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의미가 깔린, 왕과 요리사 사이에 일어나는 에피소드였는데, 의미 있는 교훈을 안겨주었던 그 스토리의 내용은 이렇다.

먼 옛날, 세상의 모든 것을 가진 왕이 있었다. 하지만 왕은 그다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어느 날, 왕은 주방 근처에서 한 요리사가 행복한 얼굴로 휘파람을 불며 채소를 다듬는 것을 보게 되었다. 왕이 그 요리사를 불러 행복의 비결을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폐하, 저는 말단 요리사에 지나지 않지만 제 아내와 아이를 먹여 살릴 수 있어서 기쁘고, 또 늘 즐겁게 해줄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그리 많지 않습니다.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방 한 칸과 배를 불릴 수 있는 따뜻한 음식만 있어도 충분하지요. 게다가 가족은 제게 세상을 살아갈 힘을 준답니다. 그러니 제가 행복할 수밖에요.”

왕은 요리사를 물러가게 하고는 현명하다고 알려진 한 재상을 불러 요리사에 관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자 재상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폐하, 저는 그 요리사가 아직 ‘99의 노예’가 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에 왕이 의아해 하며 “99의 노예, 그게 무엇인가?” 하니, 재상은 “폐하, 그것이 알고 싶으시다면 가죽 주머니에 금화 99개를 넣어 요리사의 집 앞에 가져다 두십시오.”라고 했다.

그날 저녁 왕은 재상의 말대로 금화 99개가 든 주머니를 요리사의 집 앞에 몰래 가져다 두게 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요리사는 그 주머니를 발견했다. 그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 금화를 세기 시작했다. 당연히 금화는 99개였다. 순간 요리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혹시나 한 닢을 어딘 가에 떨어뜨렸나 싶어 온 집안을 기어 다니며 금화를 찾았다. 그러나 금화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생각했다. ‘열심히 일해서 금화 100개를 채워야겠어.’

다음 날 아침, 요리사는 그 전날 온 집안을 헤집으며 금화를 찾느라 피곤했던 탓에 그만 늦잠을 자고 말았다. 늦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요리사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냈다. 자신을 깨우지 않아서 금화 한 닢을 벌어야 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게 만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는 아침식사도 거른 채 출근해서 미친 듯이 일에 몰두했다. 예전처럼 콧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을 불지도 않았다. 얼마나 일에 몰입했던지, 왕이 자신을 몰래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어제의 즐겁고 행복한 모습이 모두 사라진 그 요리사를 보면서 왕은 크게 놀랐다. ‘금화가 생겼는데, 더 행복해지기는커녕 오히려 불행해지다니!’ 왕이 재상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폐하, 그 요리사는 이제 ‘99의 노예’가 됐습니다. ‘99의 노예’란 가진 것이 아무리 많아도 만족하지 못하고, 부족한 1을 채워 100을 만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일에 매달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스토리는 어찌 보면 그저 한 편의 짧은 동화 같아 보이지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는 현 시대에, 자칫 물욕에 빠지기 쉬운 우리에게 소중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물론 욕심을 버린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더 많은 물질을 소유한 사람을 승리자로 우대하는 우리 사회에서 혼자 마음을 비우는 일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날, 욕심이 자신을 짓누르고, 욕심 때문에 불행해지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우리는 과감히 욕심을 떨쳐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한다. 욕심의 실체를 응시하고, 얼마나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고 있었는지 깨닫는 순간, 욕심에 맞서 싸우는 일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런 용기를 잃지 않는 한 언젠가는 욕심을 버림으로써 풍요로워지는 ‘기적 같은 일’을 경험하는 행운의 날도 꼭 찾아 올 것이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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