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모삼천(孟母三遷)의 유감(遺憾)
맹모삼천(孟母三遷)의 유감(遺憾)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8.0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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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에 있어서 환경이란 실로 중요한 부분이라 여겨진다. 그렇기 때문에 옛날 중국의 맹자(孟子) 어머니(孟母)께서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고, 오늘날 우리들의 어머니들 중에도 자식의 교육을 위해 교육여건이 좋은 곳이면 세 번뿐만 아니라, 그 이상으로 여기저기 생활근거를 옮겨 다니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 주변에도 맹모와 같은 훌륭한 어머니가 있어야 하고 맹자와 같은 성인이 탄생했어야 하는데 결과적으로 그렇지 못하다. 왜 그런가? 맹모와 오늘의 우리들 열성 어머니들과 다른 점이 무엇이며,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맹모삼천’의 출처는 중국 한(漢)나라 때 유향(劉向)이 지은 열녀전(烈女傳)에 전하는 말로 맹자의 어머니(孟母)께서는 “맹자의 교육을 위해 세 번을 이사했다(孟母三遷)”는 고사에서 유래된 말이다. 맹자란 인물은 어머니의 훌륭한 교육에 의해 길러진 인물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모자간에 있었던 숱한 이야기들은 고금을 통해 전인교육의 표상이 되고 있다. 맹모께서 이사하는 과정을 맹자의 어머니 입장에서 이해해 보자.

첫 번째 이사한 곳은 공동묘지 근처였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이곳은 죽은 사람의 장례를 치르는 곳으로 어린 맹자가 커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수 없는 곳인데, 왜 이 같은 곳을 택했을까? 물론 생활이 어려워 궁여지책이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단거리 선수가 출발점에서 먼저 도달지점에 설치된 결승테이프를 노려보듯, 인생의 출발점에 선 어린 맹자로 하여금 삶의 끝을 먼저 보고, 장차 살아갈 목표를 생각해보고 삶의 가치를 느껴보라는 대승적인 의도였을 것이다.

그 후 맹자가 장례에서 상주들이 곡하는 흉내를 내자, 두 번째 이사를 간 곳이 시장 근처였다. 만약 맹자 어머니가 첫 번째 이사를 시행착오라 생각했다면 시장이란 맹자의 글공부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명백한 일인데 왜 이곳으로 이사해야만 했을까, 의문이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 맹모께서는 사람이 살아가는 현장을 보고 느끼면서 장차 살아가는 방법을 생각해 보라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맹자가 장사꾼이 물건 파는 흉내를 내자, 마침내 세 번째 이사한 곳이 학교 근처였다. 이곳은 인생의 끝을 보아왔고, 사람이 살아가는 복잡한 현장을 보아온 맹자가 장차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학문을 익히기에 최고로 적합한 곳이기에, 맹자로 하여금 글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같이 맹모의 세 번에 걸친 이사는 인생의 전 분야에 걸친 긴 안목에서 계산된 훌륭한 현장교육이란 점과 또한 맹자로 하여금 성인으로서의 인격을 구비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생각된다. 바로 이 같은 점이 오늘날 학교 교육만이 교육의 전부로 알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부하기 좋은 이른바 지식과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는 서울로, 외국으로 전전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열혈 어머니와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교육의 열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으나 사회의 질서를 지탱할 윤리 의식은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 반사회적 요소가 여기저기 독버섯처럼 불거져 황폐일로를 걷고 있다.

그러한 오늘날 우리 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볼 때 맹모의 훌륭한 교육방식은 현실적으로 바른 이해와 더불어 널리 본받아야 할 과제로 생각된다. 그러나 맹모의 세 번에 걸친 이사가 단순히 공부하기 좋은 환경만을 좇아 이사한 것으로 표현되고 이해되고 있는 것은 유감이 아닐 수 없다.

<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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