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조형물을 보며 30
신라조형물을 보며 30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8.24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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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경주박물관 정문을 들어서면 그 서편에 거대하고도 완전한 이상미를 지닌 AD. 771년에 완성된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鍾)을 만나게 된다.

신라 34대 경덕왕이 부왕 성덕왕의 은덕을 기리고자 조성을 시작했으나 완성하지를 못했다. 종소리가 바람직하지 않았고, 종의 성형자체도 실패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증손자 35대 혜공왕 때의 여러 풍문에는 사람을 넣어 합금을 하면 종소리가 맑아지고 멀리서도 들린다는 소문도 떠돌았다. 그래서 가난한 집의 아기를 강제로 시주받아 펄펄 끓는 용광로에 던져 넣었다.

여러 사연 끝에 83년 만에야 완성된 신종의 종소리는 맑고도 널리 퍼졌으나 ‘에밀레-에미이-어머니’이라고 여운을 남긴다는 구전전설이 삼국유사에 기록되었다. 이 전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합금의 어려움을 암시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석기시대가 지나고 청동기문명은 산업, 군사적으로 급진 발전했다. 이에 따르는 주조기술은 국가, 민족별로 다르지만 기본원리는 같다.

점토조형의 원형을 액체석고로 감싸 바르면 원형그대로 찍힌 외부용 거푸집이 제작된다. 이 거푸집에 구리, 납, 규소 아연 등의 비율을 사용목적에 준하여 합금된 쇳물을 주입하면 전체가 채워진 청동이나 황동의 물(物)이 된다.

그런데 그 물의 내부(內部)가 빈 공간이어야만 하는 종(鍾)이나 동상(銅像)등의 주조는 그리 간단하지가 않다. 종의 내부공간과 동일모양의 내부 거푸집도 제작해서 외, 내부 거푸집을 종 두께 만큼 분리된 상태로 고정한다. 그 분리공간이 곧 종이나 동상의 주조 두께가 된다.

주물 주입도 쉽지가 아니한데 작고 좁은 주입구로 펄펄 끓는 도가니-용광로-의 쇳물을 내, 외부 거푸집의 분리공간에 소량(少量)으로 계속해서 한꺼번에 채우지 못하면 시차주입에 의하여 주물에 균열의 층이 생길 가능성이 높아서 타종하면 소리는 고사하고 종이 동강나기 때문이다, 20년 전쯤 석굴암 매표광장에 조성된 대종(大鐘)이 깨진 소리를 낸다고 방영한 모 TV사 시청을 거부하던 종용현수막이 그 예이다.

이렇듯 종의 조성에 제반사항이 어려운 성덕대왕 신종 제작은 국가적인 사업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발상과 구상, 조형과 성형, 조성과 결과의 기간은 100년 이상이 소요되었던 것이다 신라, 고려시대 무게 단위로 구리 12만근을 현 25톤으로 알고 있었는데, 최근 조사결과는 19톤으로 측정되었고, 조성 당시의 3.75m 높이는 그대로이다.

봉덕사에서 1460년에 영묘사로 옮겼으나 후에 소멸돼 그 절터에 덩그렇게 남겨진 신종(神)을 일제강점기 1915년 조선 관청의 동헌(東軒)건물이었던 구 박물관에 설치했다.

1975년 현 박물관으로 이설(移設)하기 위한 현대식 장비운반 구경꾼이 인산인해를 이뤘었다. 신라나 조선시대에서는 신종의 운반설치 자체도 대공사이어서 그야말로 구경거리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한편 성덕대왕 신종을 종각 내의 설치에도 궁금증이 남는다. 왜냐하면 근 20톤에 달하는 신종을 공중에 매말아도 지탱할 수 있는 건물과 대들보도 그러하지만 대종을 매다는 용뉴 고리를 관통해서 대들보 양편에 드리워진 쇠고리에 끼워지는 지름12cm 강철 봉(棒)은 신종전체의 수평중심과 무게를 감당해야만 한다.

1300년 전에는 그러만한 특수강철이 없었을 것인데도 아직 신라 당시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 의문을 풀고자 포항제철에서 감마선으로 조사했더니 제련한 철을 종잇장처럼 연마하여 돌돌 말아 표면장력을 이용한 강철환봉으로 밝혀졌다.

성덕대왕신종을 현 박물관으로 이설한 후부터 소규모로 시작된 ‘제야의 종’ 행사에 점차 울산, 포항과 대구, 부산은 물론 멀리 서울에서도 많은 인파가 몰려와서 지난해의 세진을 종소리로 정화시킨다, 맑고도 넓은 진폭이 멀리 퍼져나가는 여운에 새로운 한해의 소망을 실어본다. 지금은 종의 보호차원에서 직접타종 대신 녹음된 종소리를 듣는다. 그리고는 통 트기 전, 토함산 석굴암 주차장에서 떠오르는 동해 태양을 희망으로 받아 드리는 행사도 더불어졌다.

이제는 과부화 상태여서 재빠른 행보가 필요해졌지만 부처님의 햇살은 한(恨)의 중생을 골고루 맞이한다. <계속>

/ 이동호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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