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가 본 세상
물고기가 본 세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22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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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틈만 나면 걷기 운동을 한다. 걷기가 최고의 운동이라 하니 어디에라도 찾아서 걷는 습관이 생겼다.

매번 걷는 데가 있다. 작은 개천이고 그런대로 깨끗한 산책로. 이 개천은 필자의 집 가까이에 있는데 이름을 무거천이라 한다. 지금 이때는 백로들이 가끔 천으로 올라와 먹이사냥을 한다. 사냥 모습이 참 재미난다. 물속을 뚫어지게 내려다보고 있다가 먹잇감이 나타나지 않으면, 영리한 원숭이마냥 긴 다리로 물속의 작은 돌멩이를 살살 흔들어 댄다. 혹시 그 밑에 웅크리고 있는 미꾸라지가 나올까 해서다.

앞쪽을 보니 어미오리가 새끼 8마리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거다. 어미오리 행동에 새끼들이 흉내 내면서 졸졸 따라다니기 바쁘다. 정말 평화롭게 보인다. 개천을 끝까지 걸어가다 보면 태화강 뚝방이 훤히 펼쳐진다. 강 수면에는 팔뚝만한 은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 오르고 있으니 정말 기운이 솟는 듯하다. 넓은 강물 속이 좁아서인지 아니면 바깥세상 모습이 궁금한지 분명 구경해 보려는 심산이다. 태화강 물고기가 바라본 멋진 세상이 파노라마같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짧은 촌음이지만 이 물고기는 오랜 시간 바깥세상을 머물다 가는 듯하다.

코스모스 꽃길을 엄마와 딸 둘이서 다정히 걸어간다. 걸어가는 모습은 행복하기 그지없다. 뭐가 그렇게 재미가 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말이다. 뒤에는 이웃에 사는 아저씨 아주머니들인 듯 안녕하세요! 라고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저 멀리 다리 밑에서 색소폰 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캐주얼 차림의 색소폰 아저씨가 나무기둥에 기댄 채 대니 보이를 열심히 불고 있다. 세상이 뭐가 그렇게 사연이 많은지 애절하게 들리기만 한다. 그것뿐인가. 주변의 초록빛 나무와 알록달록한 들꽃을 보니 낙원 같다. 아마도 인간들을 위해 활짝 핀 것이리라. 휘트먼이 그렇게 말했지 않았나! 풀잎은 신의 손수건일지도 모른다고….

이곳 십리 대나무 숲은 빽빽이 뻗어 있다. 게다가 숲 위에 앉아 있는 백로들은 제각기 잘났다고 고개를 내밀면서 끼억끼억 소리 내고 있다.

맞은 편 둔치의 잔디축구장에는 자못 열기가 넘친다. 젊은 아줌마들로 짜인 여성 축구팀과 건장한 노인들로 이루어진 남성 팀 간의 시합이다. 아줌마 팀이 2대 0으로 이기고 있는 게 아닌가! 패스 솜씨야말로 국가대표팀의 지소연 선수급이다.

비 온 후 잔디가 있는 곳이라면 까마귀 판이다. 사람이 스쳐가도 아랑곳하지 않는 건방진 태도는 가관이다. 부리로 연신 쪼면서 머리를 흔들어대기 바쁘다. 또한 저기 뚝방 아래에 서부극 영화의 역마차마냥 네 발 자전거가 의젓이 지나간다. 아이 둘, 엄마, 아빠, 네 명 승차 정원의 안락한 산책용 자전거인 셈이다.

울산시가(市歌)의 함성이 가로등 스피커에서 우렁차게 흐르고 있다. 마치 서울 올림픽 주제가 ‘손에 손 잡고’를 부른 코리아나가 여기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들판 군데군데 원형 파라솔은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그 위를 바라보니 한여름의 파란 하늘이 왠지 청명하게 보인다. 태화강 물고기는 혼자 생각한다.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인가!라고. 저 멀리 높은 곳에 울산의 지킴이 태화루가 점잖게 자리 잡고 있다. 옛날과 현재가 그대로 공존하는 영남의 3대 누각(?閣)이다. 저기 네온사인이 달려있는 십리대밭교는 밤이 깊을수록 알록달록 청초로이 느껴진다.

이제 곧 태화강 물은, 자동차 야적장과 온산공단 사이로 지나 넓은 바다로 빠져나갈 것이다. 태화강 물고기는 또 생각한다. 그래도 넓은 동해 앞바다보다 태화강에 사는 것이 백번 나을 것 같다고. 왜냐하면 바다보다 먹이가 풍부하고 구경거리도 많고 무서운 상어나 고래 따위는 없으니 말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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