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해안
버려진 해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12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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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구 강동의 산하해안을 찾은 것은 지난 토요일 오후. 1년 사이 몽돌해변이 어떤 모습으로 분장을 다듬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발길을 재촉하게 만들었다. 따지고 보면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12일로 개관 세 돌을 맞는 ‘인문학서재 몽돌’의 이기철 관장을 하루 앞당겨 만나면 면피라도 되겠지 하는 싸구려 유혹 때문이기도 했다. 문이 열린 서재에는 문경 산다는 어느 명인의 ‘솟대’ 작품 수십 점과 몽 관장 말고는 쉬파리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메르스 여파 탓이라는 게 ‘몽 관장’의 그럴싸한 해명이다.

장맛비가 그쳤는데도 해변에 진을 친 텐트꾼들은 의외로 적다. 해가 구름에 가려서일까. 이유는 그것만도 아닌 성싶다. 산더미파도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간 적도 있다는 보트 계류시설을 뭍으로 옮기는 인부들의 몸놀림이 그물 끌어올리는 어부들을 닮아 있다. 태풍(‘찬홈’)을 서둘러 피해보려는 자구책인 모양이다. 가까운 바다에는 세월호사태 이후 할 일이 줄어든 해경대원 몇이 순찰용 수상보트의 속도감에 몸을 내맡기고 있다.

내친김에 ‘몽돌해변 답사’로 쪽으로 방향을 틀기로 했다. 서쪽 정자마을의 ‘기차바위’에서 동쪽 신명마을의 ‘꽃바위’까지 장장 1.4Km에 이르는 몽돌해변은 1년 사이 과연 어떤 ‘변검’의 재주를 부렸을까. 결과는 보나마나였다. 해마다 뭐 줄듯 줄기만 하는 산하해안의 몽돌. 흥미로운 것은 이 ‘귀하신 몸’들이 산하해안이 아닌 기차바위와 꽃바위 쪽으로 몰리는 기현상이 벌어진다는 사실이었다.

북구 어물동에서 왔다는 40대 남정네가 나름의 이유를 쑥스러운 듯 말한다. ‘개발’ 때문일 거라는 것. 가리키는 꽃바위(일명 花岩) 쪽을 보니 일백 개는 되어 보임직한 테트라포트 더미와 꾸준히 돌아가는 크레인이 시야를 어지럽게 한다. 한 달 가까이 계속되는 ‘화암마을 방파제 공사’가 주범일까. 아니면 기차바위 너머 정자마을 앞바다의 테트라포트 방파제가 주범일까. 바닷물의 흐름에 변화를 가져와 몽돌의 가감(加減)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양쪽 모두 다’라는 귀띔이 소라 고동처럼 귓전을 간질인다.

여기서 잠시. ‘화암’이라면 울산시 지정문화재요 살아있는 화산활동의 흔적 ‘주상절리(柱狀節理)’의 현장이 아닌가. 하지만 ‘환경’이 ‘개발’을 눌러 이긴 적이 있던가.

무심하게도 테트라포트는 똑같은 화산활동으로 솟아난 섬 자락까지 무게로 마구 짓누르고 만다. 하긴 매미 태풍 때의 쑥대밭 마을 기억이 아직도 눈에 선한 이 마을 70대 할머니에겐 ‘개발’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니 누구의 손을 들어주어야 할지 고민거리가 또 하나 생긴다.

다시 신명 쪽 꽃바위에 맞붙은 몽돌해변. 야영과 취사, 쓰레기는 북구청장의 ‘경고문’쯤 별 것 아니라는 식으로 넘쳐난다. 엄포만 있을 뿐 지도·단속과 안내는 없는 자유방임의 해방구, 바로 그런 별천지가 예 말고 어디에 또 있던가. “사정은 신명해안, 산하해안 다들 똑 같아요.” 현지인의 꾸밈없는 증언이다. 날씨 좋은 날 주말이면 꽃바위를 사이에 두고 이쪽저쪽 2Km가 넘는 몽돌해변에는 1천 개도 더 넘는 텐트가 빽빽이 들어차 난민촌을 방불케 한다.

새로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이면 몽돌해변에는 또 하나의 장관이 펼쳐진다. 마구 버리고 간 음식찌꺼기를 좇아 꾸역꾸역 몰려드는 검은 까마귀 떼들의 신나는 뒤풀이가 시작되는 것이다. “시민의식의 실종을 보는 것이니 참 기도 안 차지요.” 50대 아주머니가 혀를 찬다.

관계당국의 무관심 탓인가. 주민자치위원회에서 끈질기게 요구해 왔지만 어느 하나 속 시원히 해결된 일은 없다. 텐트 설치 유료화와 주민들의 자치적 관리 요구도 그렇고, 해수욕장 지정 문제도 그렇다. 몽돌 덕분에 동구의 주전해안과 더불어 울산 12경의 하나로 이름을 올린 강동의 몽돌해변은 찬밥신세를 언제쯤 면하고 전국의 명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지…. <김정주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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