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제가 대신 사과드립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7.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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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병석에 누워 계시던 아버지는 그해 봄날, 문득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주 오래 전, 그 때 그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고.

“아버지, 무슨 일인데요?”

“내가 오래 전 옛날, 시장에 있는 노점상을 하나 단속했는데 말이다…”

“그게 그렇게도 마음에 남는다고요?”

“그렇재. 근데 야야, 그게 자꾸 맴에 남는 기…”

이야기는 아버지가 경찰 초임 순경이시던 때로 거슬러 오른다. 아버지는 경남 창녕에서 근무를 하셨는데, 그 때 같이 근무하던 지서장이 시장통의 노점상을 단속하라고 강력하게, 그리고 끈질기게 지시하는 것이었다.

60년대 말이면 다들 먹고 살기가 힘들고 배가 고팠던 시절이었다. 노점상이라도 해서 겨우 겨우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어찌 그리 쉽게 단속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버지는 늘 그런 생각을 품고 계셨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서장의 채근에 못 이겨 마지못해서라도 노점상 단속에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아이를 업고 앉아있는 아주머니 노점상이 단속에 걸리고 말았다. 평소에도 겨우 채소 몇 단, 나물 한두 접시 올려놓고 장사를 하다가, 저녁이면 약방에 들러 누가 아픈지 약을 지어서 돌아가던 아주머니였다.

장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등에는 아이를 업고 머리에는 광주리를 이고 한 손에는 아픈 사연이 숨어있을지도 모를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향하는 뒷모습을 아버지는 몇 번이나 보시곤 하셨다. 그런 연유로 아버지는 그 전날까지만 해도 지서장이 무슨 지시를 하든 선뜻 나서기가 싫었다.

그래도 그 날만은 정말 눈 딱 감고 단속 나가기로 굳게 마음을 먹었다고 하셨다. 이번에도 단속을 못하면 무서운 왕방울 눈을 들이대고 퍼부을 지서장의 질책을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서였다. 초롱초롱 눈망울을 굴리고 있을 돌도 안 지난 딸아이가 너무 보고 싶기도 하셨지만 말이다.

하지만 생업이 걸려 있는 노점상 아주머니의 저항은 생각보다 거세었고, 그렇게 서로 실랑이를 하다가 아버지는 그만 노점상 좌판을 엎어버리고 말았다. 정말 본의가 아닌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판자로 얼기설기 허술하게 만든 좌판은 금세 다리가 부서졌고, 좌판 위에 올려놓았던 나물들은 어디로 날아가 버렸는지 흔적조차 없었다.

그 서슬에 아주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는 겁에 질려 마구 울어댔고, 아주머니는 어렵사리 붙잡고 있던 줄을 놓친 듯 허망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쳐다보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신 아버지는 그 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 아이의 울음소리가, 아주머니의 그 원망어린 눈빛이, 아버지의 여린 가슴을 너무도 아프게 후벼든 것이었다. 딸아이도 그날따라 유난스레 칭얼대었으니 마음이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으리라.

아버지는 새벽이 밝아오기가 무섭게 아침식사도 거른 채 황급하게 시장으로 달려 나가셨다. 하지만 노점상 아주머니의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아주머니는 그 후로도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정말 그럴 마음은 아니었는데… 그날 장사하러 나오면, 정말 본의가 아니었다고 사과라도 하려고 했는데… “

이 말씀을 하신 며칠 후 아버지는 숨을 거두셨다. 아버지는 병석에서 꽤 오랫동안 앓으셨다. 퇴직 후에 바로 병원에 입원하셔서, 꼬박 3년이나 병원 신세를 지다가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그 동안 정말 말도 못할 정도의 고통에 시달리셨다.

돌아가실 때의 몸무게가 겨우 37kg이었으니, 마음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까.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 놀랍다는 생각이 든다. 병석에 누워 계시는 동안 아버지는 살아오신 지난 세월을 하나하나 곱씹으신 모양이었다. 막 병원에 입원하실 때만 해도 다시 회복될 수 있겠지 하는 희망에 부풀어 계시다가도 병세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은 순간부터는 점점 당신의 내면 속으로 빠져드신 것 같았다.

처음에는 세월의 굵직굵직한 에피소드를 말씀하시더니,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묻혀서 가려진 가느다란 기억까지도, 누에가 실을 토해내듯 말씀을 이어 가시곤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30년 전의 그 노점상 아주머니 이야기도 기억해 내시고는, 후회도 되고 사과도 하고 싶다고 혼잣말처럼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 과정은 아버지의 영혼이 정화되어 가는 시간들이 아니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어언 2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래도 너무 늦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디에 계시는지 모르는 그 분, 노점상 아주머니에게 이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아버지를 대신해서 제가 사과드립니다.”

<강윤석 울산지방경찰청 아동청소년계장, 울산수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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