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후추(懺後追)’ 이야기
‘참후추(懺後追)’ 이야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30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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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팔오정 로터리 주변 식당은 선짓국이 유명하다. 특히 애주가들이 해장용으로 많이 찾는 선짓국은 반드시 후춧가루를 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한다. 후추는 향신료의 일종으로 인도가 원산지로 알려져 있으며 피부미용, 치아건강, 식욕자극 등 효능이 다양하다고 소개되고 있다. 선짓국의 후추는 요긴한 것으로 선지의 느끼한 잡내(잡냄새)를 완화시켜 입맛을 돋우어준다.

1960년대만 해도 환갑을 넘기면 스스로 젊잖아졌다. 걸음에 무게가 실리고 만사에 말수도 적었다. 찾아오는 후배나 제자들은 ‘멘토’로서 배려하는 미풍양속이 일반적이었다. 현재는 100세 시대라서 그런지 나이가 들수록 활동은 더 왕성해져 60대는 시쳇말로 ‘쨉’이 안 되고 끼어들 틈이 안 보인다.

연세가 들어도 배려보다는 독점, 실천보다는 말, 긍정적 접근보다는 부정적 접근 등 이익과 명예를 좇아 밤낮을 안 가리고 얼굴 내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종종 있다. 반면 앞으로 다가올 내 삶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도 해 준다. 이렇듯 삶의 활동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때론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못해 ‘뒷담화’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젊을 때는 이해의 대상이 될 수도 있지만 나이가 들면 작은 구설수도 치명적일 수가 있다. 늘어난 인생을 더욱 알차게 활용하려면 그동안의 고정관념과 주관적 사고에서 생긴 오해와 편견을 말끔히 씻어내고 시대적 흐름에 걸맞게 적절하게 처신하는 것이 좋은 삶의 대처 방법이 될 것이다. 새나 호랑이도 날갯짓이 잣거나 걸음이 가벼우면 그물에 걸리거나 사냥꾼의 표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앞서고 참견이 늘다 보면 알게 모르게 실수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를 옛 사람들은 이미 두루두루 지적한 바 있다.

62년을 산 송나라 구준(寇準, 961~ 1023)은 “관직에 있을 때 나쁜 짓 하면 물러나서 후회하고(官行私曲失時悔), 부자일 때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富不儉用貧時悔). 젊어 부지런히 안 배우면 때 넘겨서 후회하고(學不少勤過時悔), 일을 보고 안 배우면 필요할 때 후회한다(見事不學用時悔). 취한 뒤의 거친 말은 술 깬 뒤에 후회하고(醉後狂言醒時悔), 건강할 때 무리하면 병든 뒤에 후회한다(安不將息病時悔).”는 등 살면서 느낀 여섯 가지 후회스러움을 ‘육회명(六悔銘)’으로 남겼다.

70년을 산 중국 남송의 주자(朱子, 1130∼1200)는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 돌아가신 뒤에 뉘우치고(不孝父母死後悔), 가족에게 친하게 대하지 않으면 멀어진 뒤에 뉘우친다(不親家族疏後悔). 젊어서 부지런히 배우지 않으면 늙어서 뉘우치고(少不勤學老後悔), 편안할 때 어려움을 생각하지 않으면 실패한 뒤에 뉘우친다(安不思難敗後悔). 재산이 풍족할 때 아껴 쓰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에 뉘우치고(富不儉用貧後悔), 봄에 씨를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뉘우친다(春不耕種秋後悔). 담장을 제대로 고치지 않으면 도둑맞은 뒤에 뉘우치고(不治垣墻盜後悔), 색을 삼가지 않으면 병든 뒤에 뉘우친다(色不謹愼病後悔). 술에 취해 망령된 말을 하면 술 깬 뒤에 뉘우치고(醉中妄言醒後悔),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떠난 뒤에 뉘우친다(不接賓客去後悔).”는 등 열 가지 후회스러움을 말했다.

82년을 산 성호 이익(李瀷, 1681~1763)도 “행동이 때에 못 미치면 지난 뒤에 후회하고(行不及時後時悔), 이익 앞에서 의를 잊으면 깨달은 뒤 후회한다(見利忘義覺時悔). 등 뒤에서 남의 단점 말하면 마주해서 후회하고(背人論短面時悔), 애초에 일을 안 살피면 실패한 후 후회한다(事不始審?時悔). 분을 못 참아 몸을 잊으면 어려울 때 후회하고(因憤忘身難時悔), 농사에 부지런히 힘쓰지 않으면 추수할 때 후회한다(農不務勤穡時悔).”는 등 여섯 가지 후회를 피력했다.

고려시대 야운(野雲) 스님은 후회를 막기 위해 미리 경계해야할 내용을 남겼다. “좋은 옷과 맛있는 음식을 절대로 수용하지 말라. 내 것을 아끼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말라. 말을 적게 하고 행동을 가볍게 하지 말라. 좋은 벗과 친하고 나쁜 벗을 사귀지 말라. 삼경(三更) 외에는 잠을 자지 말라. 자신을 높이고 남을 업신여기지 말라.

재물과 여자를 대하거든 바른 생각으로 대하라. 세속 사람과 사귀어 같은 대중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하지 말라.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지 말라. 대중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평등하게 하라”고 했다.

구준, 주자, 이익 3인의 글의 공통점은 ‘회(悔)’에 있다. 뉘우칠 ‘회(悔)’를 파자하면 매일 마음을 챙기는 ‘매심(每心)’이 된다. 후회는 늘그막에 찾아온다. 경계를 통해 건강한 젊음을 만끽하기를 권하고 싶다. ‘참후추’는 참회(懺悔), 후회(後悔), 추회(追悔)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말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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