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큼 작품세계도 아름다운 ‘하늬언니’
이름만큼 작품세계도 아름다운 ‘하늬언니’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06.2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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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늬 울산미술대전 대상
▲ 작품활동 중인 박하늬씨.

‘하늬’는 농부나 뱃사람들이 쓰던 순우리말로 ‘서쪽’이란 뜻이다. ‘하늬바람’ 하면 맑은 날 서쪽에서 부는 서늘하고 건조한 바람 즉 ‘서풍’을 말한다.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학과 졸업반인 화가 박하늬(48). 이름이 곱다는 말을 참 많이 듣는다. 이름 못지않게 작품세계도 아름답다는 말은 덤으로 듣는다. 올해 울산미술협회가 주최한 제19회 울산미술대전에서 ‘전체대상’을 받은 데 이어 울산문예회관이 주관한 ‘올해의 신예작가(2분기)’ 4인 중 1인으로 선정되는 영예를 잇달아 안았다. 주위에선 ‘상복이 터졌다’고 야단법석이다.

양산 배냇골서 전깃불 모르고 자라

얼핏 보기에 동화 속 주인공 ‘알프스 소녀 하이디’를 연상시킨다. 찬찬히 눈여겨보면 시골티도 묻어 있다. 사실 그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양산시 원동면 대리, ‘양산 배냇골’이 그녀의 고향이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전깃불을 몰랐어요. 호롱불이나 촛불이 전부인 줄 알았죠.”

거짓말 같지만 외진 농촌 마을이었기에 사실이다. 전깃불의 존재는 그 무렵 일가족 전체가 울산으로 이사 오면서 비로소 알게 된다. 돌이켜보면 양산 배냇골 시절은 예술적 감성을 키우는 데 더없이 유익한 자양분이었다. 그녀의 초기 ‘구상’ 작품에는 그래서인지 시골스러운 것들이 적잖이 섞여 있다. 2013년 울산미술대전 우수상작 ‘이런 모습도 있었을까’는 장작불로 아궁이 위의 가마솥을 데우는 시골 농가의 부엌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고 있다.

 

▲ 울산미술대전 대상作 '유한의 본질'(Mixed media, 116.8x91.0, 2015)

서양화보다 먼저 눈뜬 장르는 사진

그림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배운 것은 사진이었다. 아직도 너무 부족함을 느끼지만 사진작품 활동은 경력만 쳐서 햇수로 10년을 넘겼다. 울산의 모 주간지에서 한동안 사진기자로 활약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자주 한계를 느끼곤 했다. 아니 느낄 수밖에 없었다. ‘찍히는 대상’ 피사체의 감정이나 작가 자신의 느낌을 담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한 느낌이 든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사진의 대안으로 그림을 생각해냈다.

“사진은 제가 원하는 주변 환경이나 배경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었죠. 하지만 그림은 붓끝으로 그런 것들을 넣을 수도 배제할 수도 있고 저의 생각이나 느낌을 주저 없이 가미할 수가 있어서 좋았죠.” 그래서 캔버스를 가까이했다. 하지만 그 시점은 불과 6년 전이다.

누구나 그러하듯 처음엔 ‘구상(具象)’에서 출발했다. 지역 선배작가 몇 분의 노하우와 작가정신을 하나하나 물려받으려고 애썼다. “그림도 중요하지만 자세를 낮추고 겸손해야 더 많은 지식이 내게 쌓인다는 선배님들의 가르침! 저에겐 두고두고 귀감이 되고 있죠.” 그런 선배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녀에겐 대단한 행운으로 다가왔다.

 

▲ 박하늬 2013년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作 '오늘과 내일'.

자극제가 된 ‘퇴짜’… ’스펙’ 중시에 비애도

교만일 수도 있지만 그림솜씨에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으면서 2013년부터는 전시와 출품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열정을 쏟기 시작했다. 남구 삼산동의 작업실 ‘하늬 아뜨리에’에서 밤을 새우는 일이 잦아졌다.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밤이 새는 줄도 계절이 바뀌는 줄도 모르고 정말 열심히 했죠. 출품을 앞둔 어느 날, 정신없이 작업을 하다 고개를 들어보니 창밖이 훤했어요. 이런 일이 자주 생기다 보니 밤낮이 바뀐 생활을 하게 되더군요.”

전시나 출품의 횟수도 갈수록 늘어났다. 2013년 한 해에만 국내외 전시회에 다섯 차례나 참여했고, 출품에 따른 수상 횟수도 여섯 차례를 헤아렸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아픔이 있었다.

그 해 봄,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아트페어에 작품 10여 점을 선보였다. “정부 기구인 미술은행에서 나온 분이 제 그림을 보고 참 좋다며 구입을 약속했어요. 나중에 와서는 출신 학교를 묻더니 끝내 난색을 표시하곤 돌아서더군요. 단지 ‘미대를 나오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어요.”

서운함과 비애감, 그리고 분노 같은 오기가 치밀었다. 바깥세상이 ‘스펙’을 그토록 중시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충격인 동시에 새로운 꿈의 원천이었다.

그 일이 동기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그녀는 스펙을 대학에서 쌓기로 결심을 굳힌다. 1년 동안 이를 악물고 준비했다. 대학교에 제출한 포트폴리오도 철저히 ‘울산대 미대 스타일’을 고집했다. 2014년 3월, 마침내 꿈은 이뤄진다. 울산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학과 3학년에 당당하게 편입한 것이다. 편입과 동시에 방향타도 돌렸다. 구상에서 ‘비구상(非具象)’으로. 대학 때의 전공 ‘상담심리학’은 그 순간부터 접어두기로 했다.

40대에 이룬 만학의 꿈, 호칭은 ‘하늬 언니’

서양화가 박 하늬는 대학 다니는 딸과 군에 가 있는 아들을 합쳐 자녀 둘을 두었다. 비록 만학의 꿈을 40대 후반에 이루긴 했지만 풀어야 할 또 다른 과제가 생겼다. 다른 지방 음대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맏딸이 자신과 같은 4학년이라는 점, 그리고 동급생인 울산대 서양화학과 졸업반 학생 21명이 유학하는 딸하고 같은 또래, 동갑내기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래도 그녀는 스스럼없이 다가가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때론 자상한 언니처럼, 때론 다정한 친구처럼…. “젊은 세대의 신선한 사고부터 시작해서 교정 안팎에서 부딪히는 모든 것들이 저에겐 힘찬 활력소가 되고 있어요.” 지난 학기 종강 파티 때 아낌없이 ‘한 턱을 쏜’ 뒤론 전보다 더 가까운 ‘절친’으로 변했다. 엄마 같아도 그녀에 대한 호칭은 하나같이 ‘하늬 언니’다. 학과의 김 섭 지도교수도 학생들을 따라 ‘하늬 언니’로 부르기를 즐긴다.

하지만 편입 초기부터 굳게 다진 결심이 있다. 젊은 동급생들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겠다는 결심이다. 끝장을 보는 지름길은 악착같이, 그리고 10배는 더 열심히 해내는 길밖에 아무것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전시나 출품을 준비할 때처럼 ‘하늬 아뜨리에’에서 졸음 청하는 일이 일상처럼 되풀이되곤 했다.

 

▲ 박하늬 2013년 울산미술대전 우수상作 '이런 모습도 있었을까'.

수상소감 “운 좋았을 뿐”…또 하나의 도전 ‘대학원’

박 하늬 작가는 미술계 입문 기간은 짧아도 수상 경력은 비교적 화려한 편이다. 소소한 것이나 올해 신예작가 선정은 제외하더라도 자신이 내세우고 싶은 것이 8편은 넘는다. 삼성미술대전 특선(2013), 신라미술대전 특선(2013), 한양예술대전 우수상(2013), 세계평화미술대전 우수상(2013), 울산미술대전 우수상(2013),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2013), 아트 울산 2014 ‘역동&Advance전’ 신인작가 우수상(2014), 그리고 울산미술대전 전체대상(‘유한의 본질’, 2015)이다. 올해의 수상으로 느끼는 감회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구상에서 비구상으로 전환한 뒤의 값진 상이어서 더욱 그랬다.

“2년 전 국전에서 특선에 뽑혔을 때보다 기분이 더 좋았어요. 전혀 기대 밖이어서 무척 놀랍기도 했구요. 하지만 기라성 같은 선배님들도 많이 계신데 하는 생각이 송구한 마음도 같이 들었어요.”

그녀는 수상의 영예를 굳이 ‘운’으로 돌리려고 했다. 자신의 말마따나 ‘기라성 같은’ 선배작가들을 떠올리면 운이 좋았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대학원 과정을 기어이 이수하고 싶다는 것이다.

후배들에 대한 당부도 빠뜨리지 않는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 주저하지 말라고 격려해 주고 싶어요. 자신을 과소평가하거나 결과에 너무 연연하다 보면 그런 시기는 쏜살같이 지나가 버릴 테니까요.” 그녀의 또 다른 취미는 클래식 음악 감상이다. 요즘도 하루 종일 음악을 들으면서 작업할 정도로 클래식 마니아다. 글·사진= 논설실장 김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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