폼페이도 덮친 메르스
폼페이도 덮친 메르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14 2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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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할 메르스 공포가 폼페이도 덮쳤다. 폼페이라면 약 2천 년 전 베수비우스(베수비오) 화산의 폭발과 더불어 화산재에 파묻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고대 로마제국의 유족한 해변도시였다. 로마제국 번영의 편린이나마 엿볼 수 있는 그 도시가 약 2천년 후 코레아를 강타하고 있는 메르스 공포로 다시 한 번 땅속으로 가라앉을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관람객이 한참 몰릴 때는 하루에 2천명도 더 넘었지요. 그러던 것이 메르스 파도가 해일처럼 넘쳐나기 시작된 뒤로는 하루 40∼50명이 고작이니…” 울산박물관 관계자는 뒷말을 차마 잇지 못했다. 순간 신광섭 박물관장의 얼굴에도 검은 구름이 살짝 스쳐지나가는 듯했다. 그럴 만도 하겠다 싶었다. 울산박물관 집계에 의하면 지난 어린이날(5월 5일) 하루 울산박물관을 찾은 관람객 수는 무려 4천624명을 헤아렸다. 울산박물관에서는 이날도 ‘로마제국의 도시문화와 폼페이’란 이름의 특별전을 열고 있었다. 국내에서 폼페이 유물을 전시하는 행사는 서울 중앙박물관에 이어 울산박물관이 전국 두 번째다. 4월 21일 막을 올린 폼페이 특별전은 6월 말까지 계속 이어진다.

“국립 중앙박물관에서는 100일 동안 20만명을 유치했을 겁니다. 우리 울산에서는 비록 60일간이지만 5만 명은 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는데…” 그만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이 됐다는 이야기다. 10일 현재 겨우 2만 명을 넘어선 정도라고 했다. 인도 뭄바이의 옛 도시 이름 봄베이와 헷갈리기도 했던 폼페이를 처음 접한 것은 교복 차림의 학생 시절로 기억된다. 그때 단체관람으로 본 헐리웃 영화는 ‘재난 블록버스터’라고도 하는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이었다. 하지만 남부 이탈리아 나폴리 해안의 아름다운 도시 폼페이의 최후의 날에 대한 기억이 지금은 화산재에 가려진 탓인지 가물거리기만 할 뿐이다. 그러나 두 차례의 특별전 관람은 영화보다 더 생생한 감흥을 안겨다 주었다. 한 공기관의 단체장은 ‘폼페이에도 재난훈련이 있었더라면…’이란 기고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서기 79년 8월 24일 정오 무렵, 도시를 감싸 안은 듯 우뚝 솟아 있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고, 뜨거운 열풍과 화산재가 순식간에 폼페이를 집어 삼켰다. 그날 폼페이 시민들 누구도 재난을 예상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가 최후의 날을 맞았을 것이다.”

전시공간으로 들어가 보면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과 가축들의 처참한 모습을 실제로 만날 수 있다. 화산재의 열기를 피해 바닷가로 피신했다가 모래톱 위에서 화석의 모양새로 굳어버린 폼페이의 남녀노소도 무더기로 만날 수 있다. 문화부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쭈그린 채 손으로 입과 코를 막고 있는 남자, 옷으로 얼굴을 감싼 채 엎드려 죽은 여인, 집 안에 묶여 있다가 고통스럽게 죽어간 개의 모습…”

두 블록으로 나누어진 전시공간의 한 구석은 커튼으로 가려져 호기심을 자아낸다. 폼페이 주민들의 자유분방한 성적 취향을 훔쳐볼 수 있는 ‘음화’들만 따로 모아놓은 공간인 탓이다. 그래서인지 ‘15세 미만 어린이는 출입 금지’라는 팻말이 걸려 있고, ‘자원봉사자 언니’는 행여 아이들이 훔쳐볼세라 조바심 짙은 표정으로 보초(?)를 선다. ‘정지된 시간, 멈춰버린 도시’ 폼페이는 이대로 훌쩍 울산을 뜨고 말 것인지. 길게 늘어서 있어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던 아이들의 해맑은 표정을 더 이상 볼 수는 없는 것인지. 메르스 문제로 한국을 방문한 WHO 평가단의 후쿠다 사무차장리 학교 휴업 중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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