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보다 잿밥’에 대한 단상
‘염불보다 잿밥’에 대한 단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11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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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질보다 현상, 목적보다 사욕에 중심을 두는 것의 대표적 속담이 ‘염불보다 잿밥’이다. 염불과 잿밥이라는 표현에서 언뜻 승려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밥은 ‘실속’을 의미하기 때문에 사실은 다르다. 사례를 통해 접근해보면, 먼저 염불(念佛)은 일반적으로 독송(讀誦)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알고 보면 현재의 생각을 ‘사(思)’, 미래의 생각을 ‘상(想)’이라 할 때 현재와 미래를 아울러 생각하는 것은 ‘념(念’)이다. 그러므로 염불은 의식 속에서의 독송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불(思佛)과 상불(想佛)임을 알 수 있다.

제사는 가정에서 기일(忌日)에 올리는 의례이며, 재(齋)는 불교식 천도 의식이다. 글자로 보면 ‘젯밥’은 제사에 올리는 밥을 말하고 ‘잿밥’은 재에 올리는 밥을 말하는 것 같다. 그러나 젯밥, 잿밥이라는 말은 실제는 승가(僧家), 속가(俗家) 어디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망자에게 올리는 밥을 가정에서는 ‘메’라 부르고 사찰에서는 ‘영반(靈飯)’이라 하기 때문이다.

속가의 ‘제(祭)’는 망자(亡者)의 기일에 여러 가지 제수(祭羞)를 올리고 후손들이 기념하는 행위이다. 반면 불교의 ‘재(齋)’는 영가(靈駕)에게 공양물(供養物)을 올리고 불법을 독송하여 고통을 여의고 즐거움을 얻게 제도하는 천도 의식을 말한다.

밥은 재료에 따라 쌀 한 가지만으로 지으면 쌀밥이라 말한다. 쌀을 중심으로 콩, 팥, 보리, 조, 수수, 감자 등 다른 재료와 적당하게 혼합하여 지은 밥을 콩밥, 팥밥, 보리밥, 조밥, 수수밥, 감자밥이라 부른다. 또한 밥을 싸는 재료에 따라 김밥, 유부초밥, 횟밥이 있는가 하면 용도에 따라 비빔밥, 국밥, 물밥, 맨밥이 있다. 물을 적게 넣은 된밥(고두밥), 많이 넣은 진밥도 있다. 밥을 올리는 대상에 따라 부처는 ‘마지’, 임금은 ‘수라’, 어른은 ‘진지’, 머슴은 ‘입시’, 어린이는 ‘빠빠’라고 다양한 호칭으로 부른다.

우리 삶속에 ‘노는 입에 염불하기’, ‘비 맞은 중’, ‘중 술 취한 것’, ‘염불보다 잿밥’ 등 불교적 속담이 많은 것은 전래 역사가 오래되어 민중의 삶의 바탕에 불교적 문화가 광범위하게 깔려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염불보다 잿밥’의 빈도는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 속담은 언제, 어떤 동기에서 생성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다른 잇속에 마음을 둔다는 사실을 빗대어 한 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속담을 분별없이 불교 수행자를 대상으로 사용한다면 자칫 존격을 폄하하는 표현으로 여겨져 갈등의 소지가 분명히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승가(僧家)에서는 상단에 모셔진 주불과 중단에 모셔진 신장전에 올리는 밥을 ‘마지’라 하고, 죽은 사람을 모신 영단에 올리는 밥은 ‘영반(靈飯)’ 혹은 ‘메’라 부른다. ‘잿밥’이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사용하지 않는다. 현재 승가에서 쌀을 익힌 밥을 지칭하는 단어로는 마지(摩旨), 헌식(獻食), 생반(生飯), 시식(施食), 메, 영반(靈飯), 공양(供養), 가반(加飯), 감반(減飯), 변식(變食), 해반(解飯) 등으로 다양하지만 잿밥이라고 지칭하는 일은 없다. 육법공양물(六法供養物)의 하나인 ‘미(米)공양’으로 나타나며, 지금도 사찰에서는 ‘생마지’라 하여 쌀을 불전에 올린다. 일본에서는 미(米)를 ‘고메(こめ)’라고 부른다. 우리가 제삿밥을 메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하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말은 승가에서는 사용하지도 않아 생소하다. 하지만 ‘부처님께 마지(摩旨)는 올릴 줄 알아야지…’라는 수행자의 말은 ‘행자’ 기간 중 의식을 익혀야 하는 필요성을 강조한 노전 스님으로부터 자주 들은 말이다.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속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할 수는 있으나 논리적으로는 맞지 않다. 수행자가 스스로 자학적(自虐的) 표현을 했을 가능성은 낮다. 비하(卑下)적 표현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잿밥’은 ‘젯밥’의 그릇된 발음으로 생각된다. 구태여 쓴다면 ‘재’ 의식이 끝나고 먹는 밥인 재반(齋飯)으로 쓸 수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공양(供養)’이라고 한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상에 올리는 밥과 국을 ‘메’와 ‘갱(羹)’이라 부른다. 사찰에서 재를 지낼 때 영가에게 올리는 밥과 국은 영반(靈飯)과 갱으로 부른다. 그런데 ‘잿밥’이라는 말은 어디서 나왔는지 그 출처가 불분명하다.

거듭 말하건대 잿밥이라는 말은 젯밥이 와전된 것으로 승가에는 없는 말이다. 승가에서는 밥을 공양 혹은 반이라 부른다. ‘공양(供養)하십시오’ 혹은 ‘가반(加飯)’, ‘감반(減飯)’이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사용한다. 결국 이 말은 한국 승려의 재 의식을 바탕으로 생성된 속담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쓰임새는 ‘본질’보다 ‘현상’에 중심을 둔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만은 분명하다. ‘염불보다 잿밥’이란 말은 선거철이 다가오면 한동안 회자되지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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