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개 넘는 협력업체 줄도산, 반드시 막아야죠”
“1천개 넘는 협력업체 줄도산, 반드시 막아야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06.0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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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싼 인건비·원재료 ‘新 차이나 쇼크'
우리나라 모든 산업 자유로울수 없어
기업 현장목소리 들으며 심각성 느껴

대학 전공은 법학이지만 지금 그는 산업수도 울산에서 정책금융기관 지역사령관 임무를 빈틈없이 해내느라 마음 편한 날이 별로 없다.

송준희 KDB산업은행 울산지점 본부장(52·사진). 처음 통화한 지 한 달 넘어서야 상견례가 이뤄진 것은 ‘급한 불’부터 끄느라 한가할 겨를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살아남는 기업, 정부가 보호해야”

지난해 12월 26일자로 울산에 부임한 송준희 본부장의 첫 마디는 심상찮게 돌아가는 세계 경제에 대한 우려였다.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에는 유가(油價)의 비정상적 흐름에서 비롯된 지금의 글로벌 경제위기는 세계 경제의 판을 새로 짜보겠다는 검은 세력의 준동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는 ‘신(新) 차이나 쇼크’를 지목했다. 값싼 인건비와 원재료를 바탕으로 원가경쟁력에서 우위에 올라선 중국 공산당정부가 세계 시장을 주름잡을 음모를 꾸미고 있으며 우리나라도 모든 산업분야에 걸쳐 그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반도체처럼 리스크가 덜한 품목 정도가 예외일 뿐 첨단부품 분야만 해도 숨 가쁘게 쫓기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라는 점, 그러다 보니 한국 정부의 변함없는 목표 ‘산업 입국(産業立國)’이 풍전등화처럼 불안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울산 와서 보니 신 차이나 쇼크가 얼마나 심각한지 피부로 느낄 수 있더군요.” 사실 그는 울산 오기 전 산업은행 본부에서 울산지역 주요 산업 대부분이 얼마나 심각한 도전해 직면해 있는지 미리 꿰뚫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전문기업인들의 목소리를 현장에서 들어보니 느끼는 체감온도가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석유화학, 중공업, 조선, 자동차, 건설 할 것 없이 주요 산업 분야에 대한 보호를 정부 차원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동안 외연 넓히기에 무게를 두었던 울산의 기업들이 사정이 급변하자 다들 안타까워들 하고 있지요.” 2015년 6월, 지독한 ‘경기 한파’에 자력으로 맞서고 있는 기업들의 고민은 매출을 얼마나 올리고 이익을 얼마나 남길 것인가가 아니라 했다. 치열한 ‘생존(生存)게임’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당장의 고민이요, 발등에 떨어진 불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들이 ‘현상 유지’만이라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바람막이 역할을 해 주는 것이 최상의 방책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도 했다.

그의 말대로 유가가 70∼80% 정도 안정세를 회복해서 세계 경제가 전환점을 돌아 투자가 재개되는 시점에는 ‘살아남는 기업’과 그렇지 못한 ‘퇴출되는 기업’이 뚜렷이 갈릴 것이다. 전망이야 시각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살아남는 기업은 곧바로 ‘시장 독식(獨食)’ 채비에 들어갈 것이다.

“앞으로 1∼2년이 가장 위험할 겁니다. 정부는 수주(受注) 물량이라도 빼앗기지 않도록 기술력을 앞세워 용케 살아남는 기업만큼은 제대로 지켜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어느새 울산 기업들의 대변자가 돼 있었다.

-“공기업 사회책임 외면은 범죄행위”

송준희 본부장에게 최근 몇 달 동안은 그렇게 바쁠 수 없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어떤 때는 끊임없이 밀려드는 방문객과 전화폭탄 탓에 노이로제가 다 걸릴 지경이었다. 그 중심에는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P기업 계열사의 워크아웃 문제가 똬리를 트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진정한 분노’가 무엇인지 체험으로 터득하기도 했다.

“협력업체 수가 자그마치 울산에 340개, P시에는 820개나 되는 중견기업 아닙니까. 자금유동성이 수조 원 대에 이르는 대주주 본사 측이 도와주기는커녕 ‘나 몰라라’ 하면서 꼬리 자르기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으니…”

한 달에 1∼2억원으로 겨우겨우 연명해 가는 이 많은 협력업체들이 줄도산을 당한다면 그러지 않아도 ‘아수라장’이나 다름없는 지역경제에 미치게 될 영향이 불을 보듯 뻔한 것은 자명한 이치다. 그런데도 오불관언의 태도로 팔짱만 끼고 있다니.

그는 사태를 그 지경으로 몰고 간 책임이 말께나 하는 몇몇 모기업 사외이사들의 기업윤리 부재에 있는 것 같았다고 실토한다. 공기업으로서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다. 모기업이 이 모양이니 채권을 행사할 일부 금융기관들의 사전에는 ‘자비’란 단어가 사라지고 없다. 자금 회수의 칼을 빼들고 중견기업 숨통 겨누기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최악의 국면만은 벗어났다. 신청한 대로 워크아웃 수순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송 본부장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도, 분노의 실체를 절감한 것도 모두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피할 수 없었던 일들이었다.

송 본부장은 이러한 일련의 전개 과정이 국익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 기업에게 무얼 믿고 (수출) 오더를 주려고 하겠습니까?” 석유화학설비를 생산하는 울산의 G, D, D, H 기업 등 탄탄한 기술력이 전재산인 유수한 중견기업들도 이런 걱정 때문에 전전긍긍하는 경향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나타난다. 이른바 ‘수주 절벽’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태는 얼마든지 호전될 수도 있다. 워크아웃 추진 과정이 순조로우면 3개월 후에는 희소식이 되어 돌아올 수가 있는 것이다. 송 본부장이 혼신을 다해 백방으로 뛰어다닌 것도 다 그 물막이 공사 때문이 아니었던가.

-‘박제상 마니아’上古史 탐색 남다른 열정

그는 울산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신라 충신 박제상’ 하면 웬만한 울산시민이라면 그의 근처에도 가지 못할 정도다. 박제상(서기 363∼419)이 기록으로 남겼다는 역사서-’부도지(符都誌)’에 흠뻑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가 얼마 전에 엮은 ‘KDB산업은행과 함께 하는 문화이야기’의 머리말을 ‘신라 충신 박제상의 충절의 고향 울산/그분이 꿈꾼 천손(天孫)민족의 역사를 복원합시다!”라는 구호로 시작할 정도다.

“드라마, 음악 등으로 시작된 한류(韓流)열풍이 이제 울산에서 천손민족의 역사가 복원되어 전세계가 하나 되는 ‘역사 한류열풍’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머리말 끄트머리에 적은 이 말을 그는 인터뷰 도중에도 재차 강조했다. 어찌 보면 그는 정통파는 아니지만 ‘재야 사학자’ 범주에 들어간다. 민족적 자긍심이 그를 역사 속으로 불러 세운다.

실제로 그는 2005년부터 상고사(上古史) 교육을 위해 ‘우리역사교육원’을 설립했고, ‘우리역사의 진실’이란 홈페이지(www.coo2.net)까지 운영하고 있다. 요즘은 바빠서 뜸하지만 예전에는 재정경제부나 공무원교육원, 더러는 중고등학교에서 초청강연에 나서기도 했다. ‘명지대 사회교육원 문화콘텐츠과 지도교수’, ‘한국우리민족사연구회 이사’ 직함은 아직도 유효하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 해설’, ‘남제서 백제전 해설’, ‘환단고기의 삼성기, 단군세기 해설’과 앞서 언급한 ‘신라 충신 박제상의 부도지 해설’이 있다.

여하간 송 본부장은 울주군 치술령 아랫마을에 세워진 ‘충렬공 박제상 기념관’과 박제상 부인의 설화를 형상화한 간절곶공원의 ‘세 모녀상’(일명 망부석)에 대한 애착도 대단하다. 박제상의 ‘부도지’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그는 조선조 초기 생육신의 1인인 김시습이 박제상의 ‘징심록’을 읽고 쓴 일종의 독후감 ‘징심록 추기’를 곧잘 인용한다. 징심록의 ‘상교(上敎) 부분에 ‘천손민족의 역사를 간추려 서술했다’는 ‘부도지’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상고사와 우리 민족의 시원에 대한 그의 호기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백양사가 있는 중구 성안동의 ‘숯못생태공원’의 ‘숯못과 동방삭 이야기’ 안내판을 보고 깜짝 놀란다. 징심록 부도지에도 나오는 우리 민족의 조상 격인 ‘마고(麻姑) 할머니’ 전설을 엿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마고’ 할머니와 중국 곤륜산의 여선(女仙) 서왕모, 그리고 ‘삼천갑자 동방삭’ 이 세 분이 동시에 등장하는 전설이 남아있는 곳은 이 숯못이 전국에서 유일할 겁니다.” 그렇다고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할 수는 없는 일. 송준희 본부장은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 듯했지만 다음을 기약하면서서 1시간 반에 걸친 인터뷰를 마감했다. 경북 문경이 안태고향이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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