敗戰之將不語兵(패전지장불어병)
敗戰之將不語兵(패전지장불어병)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6.0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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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전쟁에서 패한 장수는 병법을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候列傳)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진(秦)나라가 멸망하고 초패왕(楚覇王) 항우(項羽)와 더불어 패권을 다투던 한왕(漢王) 유방(劉邦)은 수하 대장군 한신(韓信)의 계책을 따라 진나라 서쪽지방 관중을 점령하고 난 뒤 군사를 동쪽으로 진격시켜 항우의 군대와 대치하게 되었다. 당시 한나라는 초나라 편에 있던 조(趙)나라를 치기 위해 대장군 한신을 보내어 진격하도록 하였다. 이에 조나라는 성안군 진여를 대장군으로 삼아 맞서게 되었다.

이때 뛰어난 전락가로서 조나라 진여의 참모로 있던 이좌거(李左車)는 한신의 작전을 미리 간파하고 천혜의 지리적 요건을 이용하여 철저한 방비에 힘써 초전에 한신의 군을 궁지로 몰아갔다. 한편으로 그는 대장군 진여에게 한나라 군을 이길 수 있는 계책을 여러 번 건의했으나, 진여는 매번 거절하였다. 마침내 한신은 최후의 수단으로 배수진을 펼쳐 조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이좌거도 포로로 잡았다.

한신은 이좌거를 청하여 스승의 예를 베풀고 앞으로의 작전에 대해 조언을 구하자 그는 “패군지장은 용(勇)을 말하지 말고, 망국지대부는 존립을 도모할 수 없다(敗軍之將 不可以言勇 亡國之大夫 不可以圖存)”고 하면서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된 몸이 어찌 병법을 말하겠습니까?”라는 말로 거절하였다. 그러자 한신은 “만약 조군의 수장이 그대의 간언을 따랐다면 아마 처지가 바뀌었을 것입니다”라며 계속 청한 끝에 마침내 그의 계책을 받아내는 데 성공하였고, 그로 인해 주변 연나라와 제나라를 차례로 복속시켜 한나라 통업의 가반을 마련하게 되었다.

사회가 존재함에 있어 경쟁(競爭)이란 당연지사이다. 경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는 것은 당연한 진리이다. 경쟁에는 엄연한 ‘룰’이 있게 마련이다. 결과의 승패보다 경기 과정에서 어떻게 경쟁했는가가 중요하다. 그래서 부끄러운 승자이기보다 떳떳한 패자가 더 자랑스러울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 정치권에서는 지난번 4·29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명색이 제1일 야당이면서도 국민들의 민심을 얻지 못해 단 한 석의 의석도 확보하지 못한 정당의 대표가 국민들을 향해, 그리고 정부와 경쟁상대의 당을 향하여 ‘국민들의 민심’이니 읍참마속(泣斬馬謖), 육참골단(肉斬骨斷)이니 운운하며 처지에 맞지도 않은 문자를 써가면서 자중지란을 일으킨 바 있다. 이같이 국민들 앞에서 국정을 놓고 경쟁한다는 의미를 벗어나 자신들 집단의 이익만을 쫓아 이전투구(泥田鬪狗)를 일삼는 대결집단의 모습만 보여주고 있으니, 국민들의 불신(不信)은 점점 더 커져만 가고 있다.

논어(論語 안연편(顔淵篇)에 자공(子貢)이 공자에게 정치에 대해 물으니, 공자께서 답하기를 “식량과 군비를 충족시키고, 백성으로 하여금 믿게(信) 하는 것”이라고 답하였다. 자공이 다시 묻기를 “만부득이 해서 그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셋 중에 어느 것을 버려야 합니까?”하고 물으니 공자께서는 “군비를 버려라”고 하였다. 자공이 다시 또 “만부득이 해서 나머지 둘 중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었을 포기해야 합니까?” 하니, “식량을 버려라, 자고로 사람이면 누구나 한번은 죽는다. 그러나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나라가 존립할 수 없다(自告皆有死 民無信不立)”고 하였다.

이는 식량이나 국방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믿음(信義)이라는 단언이다. 믿음을 잃고선 국가가 존립할 수 없다면 사람 사는 사회인들 믿음이 없고서야 유지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람 개인으로 볼 때 신의를 잃으면 사람으로서 인격을 잃는 것이니, 동물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공자의 이 같은 말씀은 신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명리만을 좇는 오늘날 우리 정치현실에 크나큰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이해나 의견의 대립이 생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것을 경쟁으로 승화시키면 그 사회는 더욱더 발전할 수 있지만 경쟁에서 ‘룰’을 무시하고 대결로만 일관하게 된다면 승자도 패자도 없이 모두가 망하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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