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어른은 어른
역시 어른은 어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27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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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노인회가 노인 연령 기준을 올리는 문제를 공론화하기로 하면서 노인 복지 재설계가 과제로 떠올랐다. 노인 인구가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게 늘어나는 상황에서 노인 기준 연령의 조정은 고령화 시대에 필요한 과제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인 빈곤율이 48%에 달하는 한국 현실에서 자칫 노인 복지 축소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고민도 필요하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 비율은 13%인데, 향후 10년간 이 연령대 인구가 연간 32만명씩 늘어나 2020년이면 인구 5명 중 1명꼴로 65세 이상이다. 그동안 65세 기준을 건드리기 어려웠던 이유는 노인복지의 출발점을 늦추면 노인층의 저항을 부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대한노인회가 지난달 노인연령을 상향 조정하는 공론화 안건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모두가 공짜만 바라는 시대에 복지혜택 축소 논의를 터준 대한노인회를 보며 ‘역시 어른은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 어르신들의 노인 연령 공론화 제의를 우리 사회가 복지 조정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차제에 부정적 어감의 ‘노인’이란 용어도 미국의 ‘시니어 시티즌(Senior citizen)’ 같은 멋진 말로 바꾸었으면 한다.

사견이지만 나이가 많아도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 열린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면 젊은이고 나이가 적어도 아집이 세고 뭐든 훈수를 하려고 하면 늙은이다.

다만 정부가 정한 노인 기준은 따로 있다. 만 65세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만국 공통의 노인 연령이다. 국민연금, 지하철 공짜 티켓, 홀몸노인 지원 등 노인에게 제공되는 모든 복지의 지급 개시 연령이 65세다.

65세를 노인으로 정한 사람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였다. 그는 세계 최초로 사회보험을 도입하며 연금을 받을 수 있는 기준을 65세로 정했다. 1910년대 독일 남성의 기대수명이 47세였다고 하니 제도는 도입하되 사실상 연금을 주지 않으려는 심산이었던 셈이다. 이 기준을 미국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과 유엔이 받아들이며 세계가 그대로 쓰게 된 것이다. 기대수명이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에 비스마르크 시대의 기준이 통용된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

조선시대 국왕 27명의 평균수명이 46.1세인 것을 보면 영양과 위생상태가 나쁘고 고된 노동을 했던 평민의 수명은 훨씬 낮았을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현 시대에는 자신의 나이에다 0.7을 곱한 것이 사회적 나이라고 주장한다. 예컨대 65세에 0.7을 곱하면 45.5세이니 한창 일할 때이다. 25세에다 0.7을 곱하면 17.5세다. 17세면 부모의 보호를 받아야 할 연령이니 청년백수로 부모 도움을 받아 지내는 요즘 젊은이들의 처지에 꼭 들어맞는다.

한편 전문가들이 세계 주요국의 고령자 신체능력을 측정했더니 현재 70세는 과거 60세와 같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노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연령대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복지부 설문조사에서 노인의 연령 기준이 ‘70세 이상’이라는 응답은 78.3%에 달했다. 과거 사흘씩 치르기도 했던 환갑잔치가 사라지고 70세를 기념하는 고희(故希)연이 늘어난 것도 이런 세태를 반영한다.

환갑이 넘어도 일할 능력이 있고 의욕도 넘치는 사람도 그만큼 많아지고 있다. 그러나 환갑을 넘긴 퇴직자의 구직·창업 벽은 높다. 남자는 60세를 넘기면 경제활동참가율이 49.3%(여자 26.4%)로 뚝 떨어진다. 이같이 ‘환갑이 곧 은퇴’가 되면서 국내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인 48%에 달한다. 올해 55년생부터 시작되는 환갑 쓰나미가 2045년까지 30년간 계속되면 빈곤율은 더 악화될 수밖에 없다. 산업현장에선 노동력 부족에 시달리고 개인은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율배반이 벌어진다는 얘기다.

그러나 ‘환갑은 장수 노인’이란 공식은 조선시대의 유물일 뿐이다. 이제 환갑은 중국은 물론 가까운 일본에서도 더 이상 쓰지 않는 개념이다. 한자문화권 중에서 한국만 ‘환갑 갈라파고스’에 갇혀 있는 셈이다.

과거 환갑은 중장년과 노년을 나누는 경계 지점, 장수의 경계 지점이었다. 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이런 의미는 희미해졌고 남한보다 기대수명이 짧은 북한에서조차 최근 ‘70 환갑’이란 용어가 등장할 정도이다.노인 기준 연령을 조정하기에 앞서 일자리부터 확대되어야 한다.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50대이지만 실제 노동시장에서 퇴직하는 연령은 72세이다. 이젠 은퇴 고령자들에게도 지금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주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신영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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