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 龍문화 鶴문화의 활성화
통도사 龍문화 鶴문화의 활성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26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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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이다. 국가적으로는 제일 큰 사찰, 불교적으로는 종가집이라 하여 ‘국지대찰불지종가(國之大刹佛之宗家)’라 한다.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이 쓴 글씨가 남아 있다.

또한 각각 다른 성씨로 같은 장소에서 동거함에 반드시 화목해야 한다 하여 ‘이성동거필수화목(異姓同居必須和睦)’이라 했으며, 불교 수행자인 만큼 삭발하고 가사를 둘렀으니 항상 청규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로 ‘방포원정상요청규(方袍圓頂常要淸規)’를 지향하고 있다. 이 글씨는 울산 울주군 두서면 계당리가 고향인 김구하 스님이 쓴 글씨로 돌에 새겨져 있다.

통도사는 근현대 성해 스님을 중심으로 구하 스님, 경봉 스님, 벽안 스님, 월하 스님, 홍법 스님, 청하 스님이 법맥을 이어 왔다. 특히 김구하 스님, 조용명 스님, 김말복 스님, 양대응 스님은 일제시대(일제강점기)에 독립을 위해 노력한 공으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았다.통도사에는 ‘용(龍)문화’와 ‘학(鶴)문화’가 대표적으로 남아있지만 그동안 충분히 활용되지는 못했다.

용 문화의 흔적은 ‘구룡지’이고, 학 문화의 자취는 ‘통도사학춤’이다. 특히 ‘구룡지’는 통도사의 창건연기 설화의 흔적으로서 대웅전 옆에 실존한다. 신라의 승려 자장은 계변성에다 태화사를 창건했다. 창건 동기는 중국 오대산 태화지 신인 설화에서 비롯됐다. 수년 뒤 자장은 양산천의 발원지인 영축산 아래 큰 못을 메워 통도사를 창건하기로 서원을 세워 실천했다. “시퍼런 못을 메워 큰 절을 창건하려는데 아홉 마리나 되는 독용들이 스님의 깊은 뜻을 이해 못하고 버티니 스님이 할 수 없이 버드나무 잎에다 불 ‘화(火)’자를 써서 못에 던지고는 주장자로 이리저리 저으니 못의 물이 점차 끓기 시작했다. 그러자 독용이 한 마리 두 마리 날 살려라 하고 달아났는데 그 중 다섯 마리는 양산 쪽으로 도망치니 지명이 ‘오룡골’이 되었고, 세 마리는 삼동골로 도망치니 지명이 ‘삼동골’이 되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마리는 늙고 병들고 눈마저 보이지 않아 도망치지 못하고 스님께 애원했다. ‘나를 이곳에 있게 살려주면 외도로부터 불법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겠노라’ 하여 지금의 구룡지로 남아있다.”

앞의 이야기는 독실한 불자로서 95세에 돌아가신 할머니로부터 어릴 때 자주 들은 통도사 창건연기 이야기다. 들을 때마다 전개는 일정하지 않았지만 항상 똑같은 결과로 끝을 맺었다. 스님들의 다비장인 연화대 부근에는 독용이 삼동골로 황급히 도망치다 부딪혀 흘린 피가 묻어있다는 ‘용피바위’가 있다. 산문 옆에는 ‘여의주봉’도 있다. 불이문 옆 수각 부근의 작은 구멍은 옛날 못의 숨구멍이다.

‘통도사학춤’은 성보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백장삼 한 벌이 그 자취다. 통도사학춤은 원정관(圓頂冠), 백장삼(白長衫), 홍가사(紅袈裟) 혹은 금란가사(金?袈裟)를 수하고(垂하고=스님들이 ‘입고’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말) 나서 작법(作法=일반적인 ‘춤’과는 의미상 차이가 있음)을 한다. 통도사학춤은 ‘(양산)사찰학춤(1976-2013)’ 혹은 사찰학춤(1976-2013)→통도사학춤(2014∼)으로 명칭이 변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김덕명이 존속(尊屬)으로부터 전수받고 비속(卑屬)인 아들로 계승되는 양산학춤은 통도사학춤에서 파생된 세속적인 민속학춤이다. 통도사학춤의 전승 계보에 의하면 고종 시대 이월호 스님에서 김설암 스님으로, 다시 신경수와 양대응 스님으로 전수됐다고 한다. 일제시대인 1935년경에 공식적으로 도량에서 행사를 못하게 해 일시적으로 중단되었다. 해방 후 초대 통도사 주지와 울산 해남사 주지를 역임한 양대응 스님이 마지막 전승자였다가 ‘불교정화’ 이후 그 맥이 단절되었다. 비구(比丘)와 참선(參禪) 중심의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1970년대만 해도 불교문화를 활용하자거나 관심을 갖자는 말은 입 밖에 꺼내는 것조차 힘든 혁신적인 발언이었다. 오히려 통도사학춤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고 1975년 7월 조사에까지 나선 이는 문화재전문위원 서국영(당시 부산대 영문학과 교수)이었다. 다행히 조사에서 김말복 스님(보광중학교 교장 역임, 독립유공자)이 증언에 응해 큰 역할을 했고 당시 종무소 소임자인 보우 스님도 증언에 함께 나섰다. 사라질 것 같았던 통도사학춤의 부활은 의외로 세속에서 이루어졌다.

1981년 세속에서 통도사학춤을 전수받은 백성 스님(필자…편집자 주)이 통도사로 출가함으로써 현재까지 자연스레 전승돼 오고 있다. 지난 33년간 각종 불교문화행사, 재 의식 등에서 시연한 횟수만도 600회가 넘는다.

통도사에 용(龍)과 학(鶴)의 ‘스토리(story)’는 전해지고 있으나 대중들이 ‘텔링(telling)’으로 활용하는 일은 아직까지 없다. 이제부터라도 수행자들만의 일상과 공간, 그리고 불교의 사상성에서 추출해낸 고유성과 정체성과 독자성에 바탕을 둔, 시대에 적절한 ‘말하기(telling)’를 찾아야 한다. 스토리를 바탕으로 삼은 텔링의 활용은 시대를 앞선 개척자정신과 사회적 리더 역할을 동시에 가진 대자유인 불교수행자의 당연한 몫이라고 생각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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