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초리 들 어른을 찾습니다
회초리 들 어른을 찾습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25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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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은 고향에 ‘마을의 날’ 행사가 있었다.

수십 년 전 홍수로 떠내려간 마을 표지석을 다시 세우고 제막식을 했는데 그날을 기념으로 마을의 날을 제정했다.

올해로 11년째다. 당시 소요되는 비용은 열악한 마을 재정으로는 충당하기 불가능했지만 다행이 주민과 출향인들이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보내와 당초 계획보다도 훨씬 멋진 표지석을 세울 수 있었고 비용도 남아 마을기금으로 보태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이로 인해 마을에는 그동안 있어왔던 이웃끼리의 크고 작은 반목과 갈등구조가 사라졌고 단합과 화목이 제자리를 찾았으며 이웃 간의 정이 돈독해졌을 뿐 아니라, 출향인들에게는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큰 계기가 되었다.

매년 마을의 날이 가까워오면 마치 잔칫집 분위기다. 중년층에서는 소를 잡고 장만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고, 아녀자들은 장을 보고 음식을 장만하느라 팔을 걷어붙인다. 청년층이 천막을 치고 상을 나르는 사이 노년층에서는 청소와 채소를 다듬는 일을 맡는다.

행사 당일에는 대처에서 출향인들이 하나 둘 돌아오면 푸짐한 음식과 함께 한바탕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고 이어 전 주민이 참가하는 윷놀이가 펼쳐지면 잔치는 절정에 이른다. 행사의 주최는 마을 이장과 부녀회지만 그 중심에는 노인회가 있다. 사소하고 경미한 사안도 늘 노인회 어르신들과 미리 상의하고 중지를 모은다.

그리고 어르신들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고 받아들인다, 다소 번거롭고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좀 더 수고롭더라도 어르신들을 존중하고 그분들의 자존심과 존재감을 각인시켜주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때문에 어르신들은 그 어느 층보다도 마을 일에 적극적이다. 개울 정화 작업이나 마을길 잡초 제거 작업 등 부역에도 절대 빠지지 않는다. 때로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을 때는 과감히 꾸짖고 당사자를 설득하고 화해시키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사안에 따라서는 회초리 드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분들이 대접 받는 이유다. 많이들 돌아가시고 건강도 안 좋지만 그분들은 마을의 구심점이요, 산 증인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억지로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도 마을을 원만하게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그분들의 지혜와 경륜이 필요하다.

따라서 마을에 그런 어른이 있고 없고는 큰 차이가 있다. 어른이 없거나, 어른답지 못한 사람이 어른 행세를 하는 마을은 한마디로 어수선하고 늘 시끄럽다.

반면 제대로 된 어른이 있는 마을은 위와 아래가 분명하고 모든 일이 순조롭고 분위기가 화목하다. 집안도 마찬가지다.

근래 울산예총(한국문화예술단체총연합회 울산시지회) 산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불미스러운 문제들을 언론을 통해 지켜보면서 문인의 한 사람으로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지난 2월 초 울산예총 지회장 선거에 앞서 도덕성 문제로 인한 후보자 자격을 놓고 날 세운 공방을 펼치더니 결국 전직 회장이 현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법적 고발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심지어 직전 회장단에서는 ‘울산시 보조금 부풀리기’ 의혹으로 경찰 내사를 받는 등 온갖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지난 선거 당시 특정 후보를 지지한 일부 단위지회장들은 여론몰이까지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로 주장하고 있는 사안의 유·무죄를 떠나 법정다툼으로 비화되고 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를 두고 쓴소리를 하거나 따끔한 충고를 하는 지역 문화예술계 어른이 없다는 것이다. 사적·공적 모임이나 행사에서 자의타의로 고문이니 원로이니 하는 분들 다들 어디 계시며, 지금 사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대접만 받으려 말고 대접 값을 해야 한다.

진정 지역 문화예술과 이에 종사하는 후배들을 아낀다면 두려워(?) 말고 회초리 드는 일을 서슴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문화예술인들은 스스로 각성하고, 문화의 지방화 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현실적 상황에 있어 문화예술에 토대를 둔 지역 활성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문화가 곧 경제이며 시대변화와 직결된다.

때문에 우리 지역경제의 미래가 시대변화에 뒤처지지 않도록 우리 지역이 가진 문화적 요소를 어떻게 경제적 가치로 승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할 때이다.

<김종렬 시인 / ‘물시불 주막’ 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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