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팝꽃과 뻐꾸기
이팝꽃과 뻐꾸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19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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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같은 송홧가루가 몇 번의 봄비에 아스팔트 가장자리에 노란 띠를 만들었다. 여기저기 장끼의 울음소리로 한동안 춘정(春情)에 취했더니 까투리의 지극한 포란(抱卵)과 더불어 4월은 저 멀리 손사래 치며 떠났다.

멀리 보이는 산과 가까이 다가오는 산이 날로 푸르름을 더해가는 여름의 문턱이다. 여름에 피는 이팝꽃과 여름에 우는 뻐꾸기는 입하(立夏)를 알리는 화신이며 전령사이다. 이팝이 흐드러지게 피고 뻐꾸기가 이 산 저 산 옮겨 다니며 울 때면 비로소 여름이 실감나 내버려두었던 민소매 옷을 챙기게 된다. 눈부신 이팝꽃과 청아한 뻐꾸기의 울음으로 시작되는 5월의 아침은 화장기 없는 민낯의 프레시맨(freshman)같이 풋풋하다.

이팝나무는 방언으로 ‘쌀밥나무’라고 부르는데 꽃술이 마치 쌀밥을 흩어놓은 듯한 데서 연유한다. 전라도와 경상도에 주로 분포하는 낙엽활엽교목으로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며 천연기념물 제23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팝나무의 어원(語源)설은 분분하지만 꽃이 쌀밥 모양 같은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아마도 식자가 ‘니반(禾尼飯)’으로 적고 ‘이밥’으로 읽다가 다시 ‘이팝’으로 부르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시절 부유한 삶을 ‘소고기국에 이밥 배불리 먹는 것’이라고 한 데서도 짐작할 수 있다. 울산과 경계를 같이하고 있는 가까운 양산의 시목(市木)이 바로 이팝나무다. 쌀을 닮은 이팝꽃은 망자의 저승길 식량으로 준비하기도 했다. 가난한 집안에서 초상이 나면 이팝꽃을 말려두었다가 죽은 사람의 입속에 넣어주는 반함(飯含)으로 사용했다. 부유한 집안의 전함(錢含), 옥함(玉含)에 비하면 초라하겠지만 입속에 가득 찬 이팝꽃은 쌀이 되고 밥이 되어 멀고먼 저승길에서 망자가 한 톨씩 씹어 먹는 비상식량이었던 셈이다.

살아서도 밥 못 먹어 배고픈 것은 서러움 중에서도 으뜸이다. ‘보릿고개’, ‘가난이 창문 열고 들어오면 사랑은 대문 박차고 나간다’는 속담이 이를 대변한다. ‘목구멍이 포도청’, ‘공양미 삼백 석’, ‘사흘 굶어 담 넘지 않는 자 없다’, ‘걸립(乞粒)’, ‘동쪽 집에서 잠자고 서쪽 집에서 밥 먹는다(東家宿西家食)’와 같은 사례에서 공통적인 것은 밥이다. 죽은 사람도 배고픔은 섧다. 상식(上食), 메, 고시레, 생반(生飯), 헌식(獻食), 물밥, 미공양(米供養) 등의 표현도 모두 밥과 연관 지을 수 있다.

5월에 접어들면서 온 산이 뻐꾸기 울음소리로 시끄럽다. 뻐꾸기는 여름철새로 번식하러 우리나라를 찾는다. 울음은 번식기를 알리는 신호이자 암컷의 환심을 사려는 세레나데이다. 암컷은 울음소리가 큰 수컷을 선택하여 사랑을 한다. 이러한 조류 생태는 본능적으로 건강한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하는 생존전략적 진화에서 기인한다.

뻐꾸기가 우는 계절은 뱁새가 긴장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뻐꾸기는 자기 알을 다른 새에게 맡겨 부화시키게 하는 대표적인 탁란조(托卵鳥)로서 주로 뱁새둥지에다 알을 낳는다. 뻐꾸기는 두견이과에 속하며 세계적으로 139종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뻐꾸기, 벙어리뻐꾸기, 검은등뻐꾸기 등 6종이 관찰된다.

보통 낮에 우는 뻐꾸기의 울음소리는 ‘뻐꾹 뻐꾹’으로 들리지만 간혹 밤에 울기도 하는 검은등뻐꾸기의 울음소리는 귀 기울여 들어보면 ‘멍멍멍멍 멍멍멍멍’ 혹은 ‘카카카코 카카카코’로 들려 독특하다. 이 소리는 듣는 사람의 감정이입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들릴 수 있다. 스님들은 ‘머리 깎고 빡빡 깎고’, 비만인들은 ‘그만 먹어 그만 먹어’, 일부러 남 웃기기 좋아하는 골계인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홀딱 벗고 홀딱 벗고’로 들린다고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이렇듯 원하는 네 글자로 느긋한 박장대소의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뻐꾸기의 울음소리다. 이것도 뻐꾸기가 주는 계절의 선물이다.

살면서 배고픈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다. 뻐꾸기는 이미 경험했다. 맑은 날의 먹음직스럽던 이팝꽃은 비가 오면 비에 젖어 물밥이 된다. 물밥을 내려다보고 뻐꾹새는 배고파 죽은 누이동생이 안타까워 ‘불여귀(不如歸)’로 운다. 불여귀는 때로 귀촉도로도 들린다. 뻐꾸기는 죽어서도 훈장으로 환생하여 밤낮으로 게으름을 경책한다. 오늘은 이 고을 내일은 저 동네로 목이 쉬도록 ‘포곡 포곡(布穀: 곡식 심어라)’이라고 가르친다. 농부들은 ‘뻐꾹 뻐꾹’하는 뻐꾸기 울음소리도 ‘포곡 포곡’의 의미로 바꾸어 듣는다. 포곡새가 울면 부지런하게 농사일에 매달려야 한다. 대를 이어 세습되는 풍습이다.

‘봄에 밭 갈아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수확할 것이 없어 후회한다.’ 이는 주자(朱子)가 열 가지 후회를 설파한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의 잠언(箴言)이다. 뻐꾸기는 울음으로 게으른 농부에게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이렇듯 이팝나무와 뻐꾸기는 민중의 삶과 친숙하고 밥과 죽음과 연관성이 있다. 4월이 가듯 5월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다. 이팝꽃이 떨어지고 뻐꾸기가 울기를 멈추면 뱁새는 막 깨어난 뻐꾸기 어린 새끼의 육아에 바쁘다. 어린 새가 서툰 날갯짓으로 둥지를 떠날 때쯤이면 활화산 속 붉은 마그마의 여인 같은 장미의 계절이 다가온다. 또 어떤 꽃과 새가 인간의 삶 가까이에서 의미를 부여할까. 그 꽃과 새가 궁금해진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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