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찾은 태화루’
‘다시 찾은 태화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17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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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루는 멀리서 볼 때 운치가 있다. ‘세계인의 날 맞이 다문화축제’가 열린 16일 오후는 더욱 그랬다. 축제 마당 태화강 둔치에서 바라본 강 건너 언덕배기의 태화루는 누가 보아도 절경(絶景)이었다. 태화루는 이날따라 강한 흡인력으로 발길을 붙잡았다. 더듬어 보니 이달 들어 세 번째 방문이었다.

경내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시야에 잡히는 시구(詩句) 하나가 있다. “이 절의 누각에 오르면/ 마치 그림 병풍에 기대어 아래로/ 한 장 얼음 삿자리를/ 굽어보는 것 같다.” 권근의 대화루기(大和樓記), 서거정의 태화루중신기(泰和樓重新記)와 함께 누각 현판 글씨로 남은 김극기(金克己, 고려 무신정권 시대의 문인)의 대화루시서(大和樓詩序) 중 일부다.

그래서일까, 태화루 난간 사이로 넘어다본 강 건너 남산의 모양새와 그 아래로 굽어본 태화강 언저리의 풍경이 예사롭지 않다. ‘그림 병풍’까지는 아니라 해도 볼품 하나만은 견줄 대상 찾기가 지난하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낭만의 여유도 회고의 염(念)도 이내 식고 만다. 누각 안팎을 가득 채운 온갖 인공(人工), 인위(人爲)의 부스러기들 때문이다.

높낮이 고른답시고 문지른 뒤 열흘 넘게 손보지 않아 희끗희끗 흉허물로 남은 누각 마룻바닥의 수십 군데 대패질 자국, 제대로 말리지 않아 크레바스처럼 쩍쩍 갈라진 상처투성이의 배흘림기둥, 기둥 아랫도리에 드문드문 물감처럼 흩뿌려진 흰색 좁쌀무늬가 한숨을 짓게 만든다. 누각에 오를 때 챙겨 가라는 ‘신발주머니’는 밀양 영남루, 남원 광한루, 전국 어디서도 못 보았던 성가신 소도구다.

‘멀리서 볼 때 운치가 있다’는 말은 가까이서 보면 그 정반대라는 이야기와도 통한다. 누각 동남쪽 아래마당 한구석에 흉물스레 덮어놓은 초록색 천막용 거적도 그 중 하나다. 걷어내면 드러나는 속살은 비닐봉지도 섞인 비에 젖은 모래더미 일색이다.

짐작컨대, 마당청소 뒤처리 흔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누구하나 거들떠보는 이 없다. 자원봉사자도 문화관광해설사도 어르신도우미도 하나같이 ‘오불관언(吾不關焉)’이다. 태화루 경내 발길 닿는 곳마다 마주치는 청소용구들은 무슨 볼거리랍시고 보란 듯 진열(?)까지 해두는가? 하 답답해서 “관리는 누가?” 하고 던진 질문에 답은 돌아온다. “시에서 안 하고 얼마 전부터 민간이 맡아서 한다던데, 자세히는 모르겠어요.”

볼썽사나운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배흘림기둥에 붙여 놓은 명령 투 팻말 ‘송진접촉 금지’, 전통미(傳統美)도 못 살린 플라스틱제 투호놀이 용구 하며…. 문화예술이나 문화재에 대한 일말의 양식이라도 기대한다면, 귀하는 이내 실망하고 말 것이다.

누각과 대문채 사이에 돈 들여 지어놓은 신식 별채는 또 하나의 ‘연구대상’이다. 고풍(古風)하고는 한참 거리가 있는 ‘데크(복합목재)’ 소재의 계단과 마룻바닥, 그 위에 덧칠한 칙칙한 붉은 안료, 그런 계단 위에 쌓아놓은 싸구려 분위기의 조화(造花) 무더기, 그리고 행사장용 플라스틱 의자에 이르기까지…. 사려 깊지 못한 인공과 인위의 흔적들은 경내 안팎에서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태화루 친화적’이란 말은 꿈속 이야기일 뿐이고, 오르막 진입로에 안내 팻말 하나 없으니 ‘장애인 친화적’이란 말도 꺼낼 수 없다. 닫힌 채 불만 켜진 사무실 출입문의 ‘관계자 출입금지’ 표지도 혐오감만 부추길 뿐이다.

‘다시 찾은 태화루!’ 별채 홍보전시실 입구에 내걸린 문구다. 임진왜란 후 410 몇 년 만에 되찾았다는 뜻인지, 한 번 보고나면 다시 찾게 된다는 의미인지, 소상히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울산의 새로운 랜드 마크(landmark)’ 기대 속에 1년 전 새 모습 드러낸 태화루가 2015년 5월 이 시점만 놓고 볼 때 ‘다시 찾고 싶은 태화루’가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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