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와 준석이
제사와 준석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14 21: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게는 ‘제사’ 하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이 제사축문이다. 초등학교 일학년 때인가 보다. 학교 교장선생님이시던 아버님이 나를 사랑방으로 부르신다. 달려가 보니 제사축문을 내어 놓으시면서 읽어보라 하신다. 아는 글자라고는 서너 자도 안 되어서 멀뚱멀뚱 눈만 굴리고 꿇어 앉아있었다.

“이 녀석아, 너는 이제 학생이야. 학생이 제사축문 하나 못 읽는대서야 말이 되겠냐. 오늘밤 제사축문은 네가 읽는 거다. 애비가 가르쳐 줄 테니 따라 읽어라.”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시작한 축문 공부가 초롱불 켤 때까지 계속되었고, 나는 글자 뜻도 모른 채 외우기 시작했다. 두서너 시간 고생한 끝에 나는 축문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됐다. 그만하면 됐다. 가서 눈 좀 붙이거라. 이따 제사 때가 되면 깨워주마.”

쏟아지는 잠을 쫓으랴, 제사 축문 공부하랴 애를 쓰던 나는 아버님의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골방으로 가서 쓰러져 잤다. 한참 신나게 자는데 병수 아저씨가 나를 깨운다.

“야, 판희야, 얼른 일어나라. 제사 지내야지. 냉큼 일어나서 세수하고 오너라. 아까부터 형님이 너 찾고 계신다.“

부리나케 고양이세수를 하고 와서 제사상 밑에 놓아둔 축문을 꺼내서 다시 본다. 아이구 맙소사. 자기 전까지만 해도 술술 읽을 수 있었던 제사축문이 갑자기 막히는 것이 아닌가. 이거 낭패 아닌가. 아버님한테 물어보러 갔다간 불호령이 떨어질 텐데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 그래, 마음씨 좋은 병수 아저씨나 냉정 할아버님한테 물어보자. 그분들은 나를 혼내주지 않을 거야.

도둑고양이같이 살금살금 병수 아저씨한테 다가가서 통사정을 해본다. 마음씨 좋은 병수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신다.

“예끼, 이놈아. 잠자다 잊어먹었구나. 그거 세서원역(歲序遠易)이야.” “아이구, 아저씨 고맙습니다, 아버님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알았다, 알았어. 비밀로 해주마!”

축문을 읽는 내내 내 등에서는 식은땀이 흘렀고 내 손은 마구 떨렸다. 어쨌거나 간신히 축문 읽기를 무난히 끝낼 수 있었다. 제사가 끝난 후 술잔치가 벌어졌을 때 동네 어르신들이 한 말씀 하신다.

“아, 자제분이 참 똑똑하시구려. 아직 열 살도 안돼 보이는데 축문을 다 읽다니.” “원 별 말씀을. 아직 어려서 잘못합니다만, 축문 읽을 정도는 됩니다.” 하시면서 은근히 아들 자랑을 하신다. 그렇다. 아들 자랑 하시고 싶은 아버님의 작은 욕심 때문에 나는 제사 때만 되면 신동의 신화를 지키기 위해서 살얼음판을 걷게 되는 묘기를 해야만 했다.

어제 우리 집에서 제사를 지내는 중에 세 살배기 손자인 준석이 녀석이 제사상 위에 차려져 있는 포도를 달라고 울며 떼를 쓰는 소동이 벌어졌다. 최고참이신 작은 형님이 포도 한 송이를 떼어 주셔서 간신히 소동이 가라앉았다. 며느리가 준석이 달래느라 몹시 힘들어하고 있었는데 속절없이 나는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웃음을 참느라 애를 먹었다. 65년 전 내 모습이 생각나서다.

내가 네 살 때 어머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 쌍둥이 동생을 낳으신 후 산욕열이 도져서 약 한 첩 써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셨다고 한다. 어머님 상여가 나가기 전날 밤에 지내는 제사에서 모두를 슬프게 하는 뜻밖의 해프닝이 벌어졌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제사가 한참 진행 중에 술 따르던 제관의 도포자락에 결려서 상 위에 차려져 있던 밤 그릇이 넘어지면서 알밤들이 제사상 아래로 우르르 떨어졌다. 멀리서 제사를 신기하게 구경하던 네 살배기 어린이였던 내가 이 떨어진 밤들을 주우려고 제사상 밑으로 달려갔다. 주운 알밤들을 두 손에 잡고 나오면서 전리품을 챙긴 승전장군처럼 얼굴에는 환한 미소를 띠고 두 손은 높이 쳐들고 손뼉치고 나오는 내 모습을 바라보면서 모두들 대성통곡을 했단다. 우리 어머님의 심정을 헤아린 참석자들은 나를 붙잡고 다시 한 번 대성통곡을 했단다. 아직 떠나지 않은 어머님의 영혼이 철없는 어린 아들의 이런 모습을 지켜보고 계셨다면 그 심정이 얼마나 아팠을까.

어머님 제사 때만 되면 이 웃지 못 할 해프닝을 이야기하며 대학생이 된 나를 대견해 했고 돌아가신 어머님을 몹시도 그리워했다. 세 살배기 준석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이 ‘포도 땡깡’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겠다. 그때 준석이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몹시 궁금해진다. 어서 준석이가 컸으면 좋겠다.

류관희 약사 전 재울강원도민회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