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팬 증후군’과 중소기업
‘피터팬 증후군’과 중소기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1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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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적으로 성년이 됐지만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 피터팬처럼 한국의 중소기업들도 중견기업이 되기 싫어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최근 경제 뉴스엔 피터팬 증후군이 종종 나온다. 주인공은 물론 중소기업이다. ‘피터팬 증후군’은 심리학자인 댄 카일리 박사가 1983년에 저술한 책 피터팬 증후군 ‘어른이 되지 않는 사람들’에서 처음 등장한다. 초등학교 입학을 거부하는 아이처럼 육체적으로 성숙하여 성년이 되었지만 어른들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여전히 아이로 남기를 바라는 심리를 말한다.

올해부터 매출액이 1천500억 원을 넘는 중소기업은 자동적으로 중견기업으로 분류된다. 중소기업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과거의 매출액, 근로자 수, 자본금 등에서 ‘최근 3년간 평균 매출액’으로 단순화되었기 때문이다.

중기청이 중소기업 기준을 대대적으로 손질하는 것은 세액 공제, 공공조달시장 참여 등 중소기업이 누리는 혜택을 유지하기 위해 성장을 기피하는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에 빠진 업체가 적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피터팬 증후군’을 우리나라 중소기업들도 많이 앓고 있다.

중견기업으로 성장하지 않고 중소기업으로 남아 지원정책의 수혜를 보려는 현상을 중소기업의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발표 자료에 따르면 실제로 중소기업 졸업 기준의 경계선상에 있는 기업 10곳 중 3곳은 중소기업 졸업을 회피하기 위해 분사, 상시근로자 조정 등 인위적인 구조조정을 추진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의 지위를 갖고 있을 경우 얻게 되는 혜택은 160여 가지로, 중소기업 지원정책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중소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고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든든한 조언자의 역할을 하는 팅커벨 같은 정책이다. 하지만 선한 의도로 피터팬을 돕는 팅커벨(소설 ‘피터팬’ 속의 등장인물)이 오히려 훼방꾼도 되는 것처럼, 중소기업 지원정책 역시 오히려 중소기업의 성장을 훼방하는 정책이 되기도 한다.

중소기업이 받는 혜택은 법인세율 차등(대기업 22%, 중소기업은 10%), 특별세액 감면 혜택(20∼30%), 중소기업 대출 의무비율 제도, 공공기관 입찰 우대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중소기업이 성장해서 중견기업이 되는 순간 혜택과 지원이 사라지는 게 수순으로, 공공시장 참여 제한, 사업 조정 등 50개의 관련 법률에서 190여 가지의 규제를 받게 된다. 바로 이 ‘팅커벨 정책’의 다른 면이 중소기업을 ‘피터팬’으로 남게 만드는 것이다.

외국에선 이런 문제점 때문에 경제환경 변화에 맞춰 중소기업의 범위나 기준도 바뀐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근로자 수를 기본 지표로 하되 자본금이 아닌 매출액을 보조 지표로 활용하고 있다.

EU는 종업원 기준으로 10명 미만은 마이크로기업, 10명 이상 50명 미만은 소기업, 50명 이상 250명 미만은 중기업으로 분류한다.

일본도 제조업 부문 중소기업 기준을 ‘종업원 300명 이하, 자본금 30억 엔 이하’로 정해놓고 있지만 도매업 소매업 등에 대해서는 다양한 기준을 병행하고 있다.

‘9988’이란 말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99%를 중소기업이 차지하고 있고, 중소기업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88%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중소기업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려면 먼저 지원 대상이 분명해야 한다. 복잡한 기준 때문에 중소기업 지원이 혼선을 빚는 일도 많기 때문에 업종별·규모별로 중소기업 기준이나 분류를 더 체계화해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한 기업을 중소기업군에서 솎아내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중견기업 범위에 들어갔을 때 타격을 받지 않도록 ‘성장 사다리’를 잘 놓는 것이다. 중소기업들이 정부의 지원정책을 적극 활용하여 성장한 뒤 네버랜드를 떠나고 싶어 하기를 기대한다.

<신영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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