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문화마을 껴안은 장생포 ‘한국의 나폴리’로 거듭날 겁니다”
“고래문화마을 껴안은 장생포 ‘한국의 나폴리’로 거듭날 겁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05.05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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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욱 남구청장
2015년 5월! 울산 남구로서는 더없이 설레는 기대의 달이다. 새로운 50년의 도약을 예고하는 울산대교의 개통,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의 탄생을 동시에 체감할 수 있는 복 받은 행사가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취임 1년을 눈앞에 둔 서동욱 울산남구청장(53·사진)의 표정도 설렘으로 가득해 보였다. 어린이날인 5일 오전, 집무실을 지킨 서 구청장의 표정은 한 아름 축하 선물을 받아 쥔 어린이의 얼굴 그대로였다.

“장생포는 남구 부흥·발전의 전진기지”

‘역발상(逆發想)의 귀재’ 서 구청장에게는 한동안 ‘포경(捕鯨=고래잡이)의 전진기지’였던 장생포 마을이 ‘고래도시 부흥의 시금석’이자 ‘남구 발전의 전진기지’, ‘남구 미래의 곳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오는 15일 오후 3시에 갖는 ‘장생포 고래문화마을’ 준공 행사는 그 축포(祝砲)의 역할을 거뜬히 해낼 것이다. 그래서 기대가 크고 축하를 여럿이 같이 나누는 일만 남았다. “준공이 있기까지 관심 쏟아주신 분들, 예산 지원에 애쓰신 정·관계 인사들, 장생포를 비롯한 남구 주민 여러분 등 초청인사가 120명 남짓 될 것 같습니다.”

뱃고동 소리와 함께 먼 마을 사람들까지 몰려들었고, 인심 하나 후했고, 흥청망청하기까지 했던 장생포가 갑자기 내리막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결정적 계기가 있긴 했다.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제포경회의(IWC)의 입김으로 ‘상업포경’이 국제적으로 금지된 일이었다.

그 시점이 1986년이었으니 햇수로 어언 29년이다. “장삿길이 막히고 살길이 막막해지면서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다 보니 지금은 남구에서도 제일 낙후된 지역으로 남고 말았지요. 하지만 지금부터는 역사를 바꿔 써야 합니다. 다시 ‘기회의 땅’으로 불러도 좋습니다.”

서 구청장의 이 말은 실증 자료들이 뒷받침한다. 1970년대 후반만 해도 1만 명을 웃돌던 장생포 인구는 상업포경 금지 이후 공동화, 노령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지금은 2천명이 채 되지 않고 노인인구의 비중도 매우 높다. 건축물의 80%는 지은 지 30년이 넘었을 정도로 오래되고 낡았다.

상업포경 금지로 내리막길 걸어

그러나 내리막길이 있으면 오르막길도 있는 법.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 아닌가. 고래문화마을 조성사업과는 별개로 대통령 직속 지역발전위원회 공모사업인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에 당당히 뽑혀 부흥의 깃발을 흔들 수 있게 됐다.

앞으로 4년간 국비 70억원 등 100억원을 들여 새 단장을 끝내고 나면 부수효과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인구 유출을 막을 수 있고, 주민들의 재정착을 유도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면 정주인구가 불어날 것이고, 지역경제에 주는 도움도 클 것이다. 여기에다 해양수산부 지원에 힘입어 앞바다가 깨끗해지면 천혜의 미항(美港)인 장생포항이 ‘한국의 나폴리’로 거듭날 날도 그리 멀지 않을 것이다.

‘고래 할아버지’란 별명의 김두겸 전임 구청장 재임 시기인 2010년부터 조성하기 시작해 준공을 목전에 둔 ‘전국 유일의 고래 테마공원’ 장생포 고래문화마을에는 볼거리, 즐길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선사(先史)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장생포와 울산 고래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았지요.” 서 구청장의 설명이다.

마을을 들어서면 우선 실물 크기의 고래 조형물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또 70∼80년대 장생포 마을을 재현한 세트장은 영화 세트장을 찾아온 착각마저 들게 한다. 특히 ‘장생포 옛 마을’에는 배를 타고 고래를 잡던 포수 및 선장의 집과 작업공간, 고래해체장과 착유장(搾油場)이 모두 옛 모습대로 되살아나 있다. 또 이곳에는 1912년도에 장생포에 머물면서 ‘한국계 귀신고래’를 발견해 학계에 보고한 미국의 탐험가 ‘로이 채프만 앤드루스(Roy Chapman Andrews, 1884∼1960)’가 묵었다는 하숙집도 자리를 잡고 있다.

“단순히 모양만 흉내 낸 건축물이 아니라 주민이 실제로 살던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고래문화마을은 말 그대로 ‘고래’로 채워져 울산 고래의 역사와 향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또다른 야심작 ‘세계최고 높이 고래등대’

서동욱 구청장이 지난해 지방선거 후보 시절에 내세운 공약 가운데는 ‘150미터 높이의 장생포 고래등대’가 있었다. 이 야심찬 공약은 그의 저서 ‘서(徐)마르크, 세계 최고(最高) 고래등대 세우다, 왜?’에도 비중 있게 그려져 있다. 저서의 부제목은 ‘발상을 바꾸면 사막이 파라다이스로 바뀐다’였다.

서 구청장은 사우디 제다항의 135m 높이의 ‘제다등대’를 떠올린다. 그보다 15m만 더 높이면 그야말로 ‘세계 최고의 고래등대’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 “관광산업의 발전은 타깃(목표)이 있어야 기대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저는 그 타깃으로 세계 최고 높이의 고래등대를 구상해본 것입니다.”

그가 평소에도 누누이 강조하는 지론은 ‘체류형 관광’이다. 그냥 지나쳐 가는 ‘경유형 관광’이 아니라 며칠 동안이라도 묵으면서 돈을 뿌리고 가는 관광만이 장생포와 울산을 알리고 지역경제를 윤택하게 만든다는 소신이다.

하지만 이 프로젝트는 아직 걸음마(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달 안에 ‘기본계획 용역’ 작업이 마무리되면 그 결과는 6개월 후에나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울산대교 공유 동구와 머리 맞댈 생각”

동구도 마찬가지겠지만 남구에 있어서 ‘울산대교’는 단순한 랜드 마크(land mark)가 아니다, 그 이상의 무한한 가치를 지닌 새로운 블루오션(blue ocean)인 것이다.

“남구와 동구를 해상(海上)의 다리로 이어주는 ‘울산의 새로운 연결축’이라는 지리적, 역사적 의미가 대단하지요.” 대교가 개통되면 약 6km 거리의 남구 매암교차로∼동구 화정교차로 구간을 10분 만에 오갈 수 있다. 그리 되면 관광 활성화에도 기폭제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서 구청장은 버린 적이 없다.

“남구의 석유화학단지와 고래문화, 그리고 동구의 조선이라는 산업문화와 대왕암공원이 하나의 끈으로 잘 묶기만 하면 두 자치구가 상생(相生)의 이득을 누릴 수 있고, 장생포 고래문화특구의 기능도 자연히 커질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 권명호 동구청장과도 머리를 맞댈 생각이다. 두 단체장은 수년간 울산시의회 의원 생활도 같이한 동지적 관계가 아닌가.

“스토리텔링 풍부, 관광해설사 둘 수도”

서동욱 구청장의 기억의 잡기장에 장생포는 ‘스토리텔링’ 요소가 풍부한 마을로 기록돼 있다. 남구청에 따르면 근대포경의 중심은 극동(極東)해역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장생포항은 우리나라 동해안 상업포경에 눈독들이던 미국과 러시아, 그리고 일본의 각축장이었고 근대 상업포경의 전진기지이기도 했다.

또 해방 직후인 1946년에는 장생포에 ‘조선포경회사’가 설립됐고, 우리나라 첫 고래잡이의 발판은 장생포에 터전을 잡은 이 회사가 제공했다.

장생포라면 장생포초등학교의 옛 길목의 KEP(한국엔지니어링플랜트) 자리에 터를 잡은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비’를 빼놓을 수 없다. 대한민국 경제부흥의 주춧돌이었기에 그 의미가 각별하다는 점도 잘 알고 있다.

“장생포는 근대포경의 역사를 잘 간직하고 있고 산업입국의 초석 역할을 했다는 긍지도 대단한, 아주 특별한 곳입니다. 이러한 유서 깊은 장생포, ‘고래문화특구’로서의 장생포를 잘 가꾸어 나간다면 포경의 역사와 문화가 되살아나는 ‘고래도시 울산’을 대표하는 새롭고 이색적인 테마관광지로 얼마든지 우뚝 설 수 있을 것입니다.”

서동욱 남구청장의 야심차고 희망적인 포부는 150m 높이의 ‘세계 최고 고래등대’의 스카이라운지까지 닿아있는 것으로 보였다. 관광산업의 도약을 위해 그는 필요하다면 남구만의 문화관광해설사를 따로 양성할 생각도 갖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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