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올림픽 종목 중 하나인 수영에서 ‘동양인의 입상’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으로 받아 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런 서양인들에게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수영 자유형 1천5백미터에서 일본 데라다 노부루 선수가 우승한 것은 자그마한 ‘가십’에 불과했다. 그러나 최근 아시아 선수들의 기량은 백인들에게 ‘황화(Yellow Peril)’로 비쳐지기에 충분한 것이다.
1895년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일본은 그해 4월17일 시모노세키에서 청국과 강화조약을 맺었다. 청국이 일본에 연패 당하는 것을 본 미국이 2월부터 중재에 나서 이뤄진 협상이었다.
이 시모노세키 조약 내용 중 하나가 ‘조선은 완전 자주독립국임을 인정한다’ 와 ‘대만 및 팽호열도, 요동반도를 일본에 할양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동북 아시아에서의 세력 불균형을 염려한 독일, 프랑스, 러시아가 이 ‘요동반도 할양’에 ‘딴지’를 걸고 넘어졌고 소위 ‘삼국간섭’으로 일본은 요동반도를 청국에 되 돌려 주고 말았다. 이때 독일 황제 빌헬름2세가 ‘황인종 경계론’ 즉 ‘황화(黃禍):Yellow Peril’를 주장했다. 황인종-당시 일본인, 중국인-의 세력을 방치하면 서양문명을 압도한다는 내용이었다.
3국간섭 당시 미국의 태도도 이와 비슷했다. 청일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은 자력으로 장기전을 감당할 국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일본에게 실탄 10만 발을 지원해줘 청국을 항복케 한 것이 바로 미국이었다. 그런 미국도 '일본의 세력이 확대되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에 서둘러 조약을 중재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1895년에 제기됐던 ‘황인종 경계론’은 당시로 그치지 않고 1차 세계대전 후 까지 계속돼 미국에서는 배일(排日)운동으로 번져 나갔고 호주에서는 '백호주의'를 잉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1930년대를 거쳐 2차대전 종전 직후 까지 ‘황화’론은 백인들에게 잠재의식으로 남아 있었다. 1960년대 들어 아시아, 아프리카 각국이 민족의식에 눈뜨고 세력화 하면서 정치적 의미의 ‘옐로우 페릴’은 상당부분 퇴색됐다고 봐야한다. 그러나 국제 스포츠 무대에서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박태환 선수가 금메달을 딴 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편견을 깨서 기쁘다”고 했다. 이말은 백인만 참여하고 시상대에 오르는 것으로 여겨져 왔던 국제 수영무대에 ‘황화의 벽’이 무너졌음을 선언하는 고별사와 같은 것이다. 양궁은 이미 한국여자 선수가 8년 째 세계를 장악하고 있고 중국의 류샹은 4년전 아테네 올림픽에서 육상 단거리 종목으로 ‘황화’를 잠재운 바 있다 ‘황화론’은 이제 역사의 유물로 남을 모양이다.